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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각에도 텔레그램 메신저가 울린다. 같이 활동하는 동료들과 함께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울리는 메시지들이다. '카카오톡' '텔레그램' '네이버 라인' 등의 서비스가 나오기 이전에는 인터넷이 아닌 스마트폰으로는 단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우 편리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메신저에 접속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이 빠른 사회에서는 지역과 공간을 뛰어넘어 단체 대화방에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단체 대화방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업무와 관련된 것이다. 물론 가끔 농담, 수다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도 자주 오고 가는데 이러한 대화는 평일이든, 휴일이든 대중없이 오간다. 이렇다 보니 늘 단체 대화방을 염두에 두며 일상을 보내야 한다. 자칫하면 중요한 대화를 놓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을 제때 내리거나, 다음 회의 시간을 정하는 대화에 늦게 답하는 바람에 그날 이동 동선이나 시간이 완전히 꼬이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가급적 평일 낮에만 대화방에 글을 올리고,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지 마음먹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평일이든 주말이든 편리한 단체 대화방에서 대화를 건다.

그래서 결국 특단의 대책으로 밤 11시 이후엔 글을 올리지 말자거나, 상대방을 비방/비난하지 말자, 중요한 이야기는 만나서하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하자 이렇게 약속한다. 그러나 긴급한 상황이 되거나, 특정인에 의해 약속은 늘 깨지기 마련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한국만에 문제는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기기로 인해 근무 시간 외에 단체 대화방, 휴대폰 메시지, 메일,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업무를 지시받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노동 시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업무와 여가를 구별하는 게 모호해졌다. 일하는 장소와 공간의 구분 역시 모호해졌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문제가 시급해졌다. 한국의 경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표한 '노동자의 경계 없는 노동시간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노동자들 10명 중 7명이, 업무시간 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기기를 활용해서 업무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노동자의 경계 없는 노동시간 보고서 중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노동자의 경계 없는 노동시간 보고서 중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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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내용은 업무 관련 메일을 받거나 보내는 것을 기본으로, 스마트기기로 현장을 확인하는 업무까지 다양했다. 또, 이러한 노동시간 증가는 노동자의 휴가와 여가만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보편적인 근로 형태에서 사업주 입장에서는, 연장 근로에 대해 시간 외 수당, 야간 근무 수당, 휴일 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으므로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 노동자는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의 안전보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설문에 응답한 노동자 40%가 스마트 기기 사용에 따라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고, 스마트기기 사용으로 인해 여가 중 수면 시간이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OECD 국가 중 수면 시간이 가장 적은 국가인데, 이제는 일을 마치고 나서도 스마트기기로 일하느라 꿈꿀 시간도 없이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이런 와중에 1월 프랑스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부터 프랑스는 회사가 직원에게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도록 했다. 프랑스는 2016년 초, 일과 휴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노동자를 늘 일하게 만드는 사회 문화를 방지하기 위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노동개혁법안으로 발의했었다. 그 결과 법이 통과되어 올해부터 50인 이상 노동자가 일하는 업체는 의무적으로 정해진 근무시간 외에 노동자에게 연락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노동자들과 협의해야 한다.

한편, 여전히 퇴근 후 메일, 메신저 등을 통해 하는 노동이 법적으로 근로시간에 포함될 수 있는지, 퇴근 후 연락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을 굳이 국가가 나서서 법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상하 관계가 뚜렷한 직장에서 업무 시간 외에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설령 상하 관계가 아닌 동료와의 업무 연락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에겐 지시하는 사람이 누구건,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업무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부담은 그 자체로 업무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이 비록 사업주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노사가 협의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만, 전 사회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는 데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법안 촉구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와 함께 노사가 합의를 통해 현장에서 이미 업무시간 외 업무 관련 이메일을 차단하거나, 휴가 기간에 전송되는 이메일을 자동 삭제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작년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일명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발의되었고, 이미 한 통신업체가 밤 10시 이후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도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 이 논의가 더 활발해지는 한편,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회 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재현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 연재하였습니다 .



태그:#카카오톡, #노동시간, #연결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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