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19 11:00최종 업데이트 17.06.07 11:56
2017년 1월 9일, 꿈틀 비행기 7호를 타고 덴마크로 갈 때만 하더라도, 거기서 어릴 적 내 안으로 들어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제 막바지 교직 생활에 다다르는 나이에 들어서서 일상에 지쳐 식어버린 나의 꿈이 희미해질 무렵이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강연을 듣고서 막연하게나마 마지막 남은 불씨를 피워보려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덴마크행 비행기 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불쑥, 내 안으로 들어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월 15일, 덴마크 방문 엿새째 되던 날이었다.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일요일 오전 9시 40분에 나는 열 명의 일행과 함께 루이지애나 미술관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우리가 끊은 티켓은 'Billet Louisiana'로 기차와 미술관 포함해서 200크로네이다.


코펜하겐에서 열차를 타고 훔레벡(Humlebak)역까지, 그리고 걸어서 루이지애나 미술관까지. 가는 중간에 샛길로 빠져 미술관 도착까지는 한 시간이 걸렸다. 날은 맑고 바람은 없는데 바닥은 살짝 굵은 소금을 뿌린 듯 얼음이 깔려있었다. 미술관이 열리기 전이라 바닷가로 나가서 멀리 스웨덴 국경선을 바라다보았다. 아련하게 수평선 근처로 희끗희끗 떠오르는 스웨덴을 보노라니 어릴 적, 제주 바다가 생각났다. 위에서 바라다봐도 평온하게 느껴지는 바다...

루이지애나 미술관 1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 김정여


언덕 아래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서 바닷가에 닿으니 바다 냄새가 살짝 코끝을 스쳤다. 코펜하겐 항구의 인어공주 동상에서도, 니하운 운하를 타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바다 냄새... 가장자리로 몰려온 미역줄기가 바닥을 덮고 있었다. 그런데도 바다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담고서 고요하게 잔물결만 흔들거릴 뿐이다. 적막한 평화만 흘렀다. 동글동글하고 순한 검은 돌들로 만들어진 징검다리가 끊어진 그곳에서 멀리, 저 멀리 국경 너머를 바라보며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떨었다.
  
내가 살던 곳과는 참 다른 바다다. 바람 소리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덤비는, 검고 투박한 바윗덩어리가 널려 있는 바닷가가 내가 살던 제주의 '바당'이다. 언니들과 리어카에 배추를 실어 담고 거친 바람을 맞으며 끌고 가서는, 찢어질 듯 차가운 물속에서 소금 절이기 위해 건져 올리던 겨울 김장의 추억이 함께 하던 바다가 제주, 나의 바다다.

어쩌다 여름에 바닷물 속에서 수영하다가 사람들의 한을 씻어 내려보내던 무당의 붉은 깃발과 함께 쉽게 먹을 수 없던 곤밥(하얀 쌀밥)과 빨간 사과, 고기 같은 것들을 실은 작은 볏짚 배를 보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그 한에 실린 귀신이 내게 빨려 들어올까 무서워서 얼른 도망쳐 바윗덩어리로 올라서곤 했던 그 바다. 그럼에도 그리운, 바람코쟁이 제주 바다...

루이지애나 미술관2 미술관 내부의 설치 미술 ⓒ 김정여


미술관이 열리고 흩어져 구경하다 창문 너머로 멀리 스웨덴 국경이 바라다보이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모여 점심을 먹었다. 쇼핑할 사람들은 먼저 돌아가기로 하고 저녁 식사가 있기 전까지 머물고 싶은 사람만 남아 각자 구경하다가 네 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내가 맞닥뜨린 현대미술의 작품으로는 엔디워홀의 재클린 케네디, 뉴만의 흑백 그림, 아스거 욘(Asger John)의 추상화,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 칼더의 모빌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나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압도한 것은 루이스 보서(Louis Bourgeous)의 작품들이었다.
     
노년의 키 작고 깡마른 여자가 소녀처럼 머리를 묶고서는 병풍 같은 벽들 안에 갇혀서 엉성하게 춤추는 듯한 사진이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가면 그녀의 작품, 감옥(the Cells I~ IV)이 나온다.'in and out'에서 그녀는 금속과 유리, 플라스틱, 천 등을 이용하여 고통과 기쁨 사이의 불확실한 영역을 묘사하고 있었다. 고통 뒤에 따른 기쁨인가? 쾌락에 따른 고통인가?

거미 루이스 보서의 작품, 거미 ⓒ 김정여


그녀는 자신의 어릴 적 삶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끊임없이 좌절과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는 생각이 깊고 총명하며 근면함과 엄격함을 갖춘 여성이었는데 그녀에게는 삶의 두려움과 좌절, 갈등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강철로 만든 커다랗고 억센 다리, 철조망과 천 조각을 잇대어 만든 몸뚱어리, 알주머니와 다리 아래에 위치한 텅 빈 의자로 나타낸 '거미'라는 작품에서 어머니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내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불편함이 함께 떠올랐다. 바로 옆, 바다가 보이는 넓은 유리창이 둘러쳐진 휴게실에 나와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와는 정반대의 좌절을 가진 그녀.

우리 어머니는 초등학력도 갖추지 못한 시골 아낙으로 다섯 딸과 막내아들을 혼자 키워내야 했다. 6.25 전쟁을 치른 후에 초등 교사를 하던 아버지가 그 많은 자식을 공부시키려면 월급으론 턱도 없다며 무작정 일본으로 밀항한 탓에 편지 외에는 맘대로 연락할 수 없었다. 그 시절에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여자 혼자서 올망졸망한 자식들만 데라고 사느라 늘 한숨과 기도로만 지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시며 넋두리처럼 혼자서 한탄을 하시곤 했는데 늘 그것을 보고 자라던 나는 언제부턴가 어머니의 근심이 곧 나의 걱정이 되었다. 너무나 어려서 어머니의 바람막이가 되어 줄 수 없었던 나는 그것이 곧 좌절이고 슬픔이었는데, 루이스는 부유함이 철철 넘치는 듯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유복하게 좋은 옷을 입고 경제적 걱정 없이 잘 살 것 같은 모습으로 사진에 나타났건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던 것일까? 잘하라는 어머니의 간섭이 그렇게 무서웠던 것인가?

너무나 무능력하고 착하기만 해서 이웃 아낙들이 무시해도, 사람 좋게 대하기만 했던 어머니,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조리한 사람을 보면, 분노가 치밀었고 가능한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해야겠다는 오기를 절로 갖게 했던, 마치 어머니의 투사와 같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어머니 자체가 거대한 감옥 같은, 강철 같은 튼튼한 그 많은 발들로 자신을 옭아매려 했던 '거미'라고 느꼈단 말인가?

짭짤하고 비릿한 냄새가 넘치던 내 고향 신창 바닷가에서 바라다 보이는 수평선 너머 그 어느 곳에서도 육지라곤 보이지 않아, 답답함만 물밀 듯 가슴에 차오르던 그 때, 나는 친구들과 바닷가의 더러운 갯벌에서 게와 보말을 빈 통조림 깡통에 담아 바닷물을 넣고 끓여서 간식 대신 먹고 놀곤 했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 전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무서워서 어머니께 달려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곤 했었다. 온종일 소 꼴 먹이고 밭일, 집안일에 지친 어머니는 아주 힘들면, 가볍게 나를 밀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아주었다. 나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안도감을 느꼈었다.

미술관4 미술관 휴게실에서 바라본 바다 ⓒ 김정여


루이지애나 미술관 휴게실에는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잉가 드라그젯(Ingar Draget)의'녹색 뜀틀(powerless Structure)'이 있다. 이들은 어쩌면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았는지, 저 뜀틀의 반동을 이용해서 절벽 아래 바다로 다이빙하면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이곳 휴게실에 한참을 앉아 있자니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으나 가족끼리가 가장 많이 찾아온다. 그들도 나와 같이 멀리 국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곳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다.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노부부가 기대어 멀리 함께 바라보다가 천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부축해주기도 한다. 이들에게도 가족은 함께 보살피고 살아가는, 삶의 힘을 얻는 원천이며 행복의 토대인 것이다.
       
그런데,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곳에 앉아 있는 나는 왜 자꾸 슬픔에 기울면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한 구절을 속으로 읊고 있는 것일까?

... 등대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삶을 많이 살아버려서인가? 아니면 바라다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이 항구에 등대가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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