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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의 할아버지가 흰 국화를 들었다. 그는 작은 키에 후줄근한 점퍼를 입었다. 얼핏 보면 길거리 지나가는 노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비가 내리는 세월호 1주기 날, 그는 광화문에 들러 분향소를 찾았고 유가족을 만났다. 분향소 맞은편, 자칭 보수단체들이 "세월호 특별법 반대", "세월호 인양? 너희 돈으로 해라!"라고 외쳤다. 그들은 본인을 어버이라고 말했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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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들 막상 내 나이만큼도 되지도 않는 놈들이 저래요. 칠십몇 살, 막 가고 뻔뻔해져서.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농경시대의 꿈같은 소리입니다. 늙으면 뻔뻔해집니다."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채현국은 이른바 '개념 할배'로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평범한 노인처럼 보이는 할배는 무엇이 특이해서 우리를 열광하게 했을까? 그것은 희망이었다. 채현국 할배는 우리에게 "이렇게 늙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줬다. '어버이'나 '엄마'라고 칭하며 거리에 나오는 집단을 보며 '늙으면 저렇게 되는건가', '저렇게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 그들을 향해 할배가 날리는 말들은 우리를 속 시원하게 했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 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20, 25, 27쪽)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뉴스타파>에서 채현국 할배를 보고 그에 관해 더 알고 싶어 책을 찾아봤다. <쓴맛이 사는 맛>(구술 채현국‧기록 정운현, 비아북, 2015)은 채현국의 말을 정운현이 기록한 책이다. 할배가 직접 쓴 책은 없었다. 그를 다룬 책 2권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피플파워, 2015)와 <쓴맛이 사는 맛> 모두 채현국의 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이 썼다.

"나는 비틀비틀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또 비겁하게도 살아왔다. 어디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뭘 이룬 게 있다면 그건 나 혼자서 한 게 아니다. 내 주변에 마치 자신이 몸뚱이인 것처럼 행세한 사람이 더러 있었는데 그건 오만이다. 혹시라도 나를 영웅처럼 묘사하는 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50~51쪽)

 <쓴맛이 사는 맛>, 채현국, 정운현, 비아북, 2015
 <쓴맛이 사는 맛>, 채현국, 정운현, 비아북, 2015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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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는 책 쓰는 것은 뻔뻔한 일이라며 자서전이나 평전 쓰기를 거부했다. <한겨레>나 <뉴스타파>에서도 "나를 독지가나 영웅처럼 묘사하지 말라"고 약속한 뒤 겨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채현국 할배는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말한다. 한때 자신이 경영하던 흥국탄광은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10위권 안에 있을 만큼 부유했던 그는 왜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말했을까. 1935년, 채현국은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해외 망명 생활을 해 어린 시절 채현국은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한번은 사흘을 내리 굶어 쓰러진 적도 있었다.

그는 전쟁을 겪었고, 그의 친형은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 자살했다. 대학에 졸업해 KBS의 전신인 중앙방송국에 취직했다. 상부에서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방송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독재정권에 복종할 수 없었다. 3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뒀다. 방송국을 관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강원도 흥국탄광을 찾았다. 당시 흥국탄광은 부도 위기였다. 채현국은 친구를 찾아다니며 돈을 꿨다. 위기를 넘긴 흥국탄광은 전성기를 맞았다.

"돈에 중독이면 낫지, 어느새 신앙이 된다"

채현국은 돌연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접는다. 흥국탄광부터 시작한 흥국조선, 흥국해운, 흥국화학 등 24개 사업을 모두 정리한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남은 돈은 광부들이 몇 년 치 더 일할 것을 계산해 퇴직금으로 모두 나눠줬다.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42쪽)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는 딸아이가 태어나자 자신의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기부한다고 한다. 아프고 부족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 웃을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세상은 주커버그의 바람처럼 더 행복해질 것이다.

돈을 쥐면 끝까지 놓지 않다가 죽어서야 자식에게 물려주는 기업들과는 딴판이다. 몇십 년 동안 상속세 없이 경영권을 넘기려고 장기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 국민들이 늙었을 때를 대비해 모아둔 돈을 서슴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기업과는 다른 모습이다.

흥국탄광을 운영할 당시 할배의 경영은 특이했다. 직원 급여는 다른 직종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김진갑(흥국탄광 근무)씨는 당시 광부 봉급이 공무원의 6배였다고 했다. 한 달 봉급을 가지고 동네 변두리 땅을 최소 10평 이상씩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원 복지도 파격이었다. 광부와 그 가족들은 모두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가들이 도망 다니다 갈 데가 없을 때, 할배는 그들을 숨겨줬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집을 한 채씩 사주기도 했다.

"남이 아플 때 내가 그들을 못 꺼내주면 여기 아픈 사람 있다고 소리는 질러줘야 하지 않습니까. 함께 못하더라도 호루라기는 불어라 이거야. 그 사람들은 맞아 죽는 데로 가는 사람들인데 그 정도도 못하면, 내가 부끄러워서 못 살죠."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26살인 나는 노인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 최대한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뜨기 바쁘다. 대개 그들에게는 자신이 경험한 게 옳고, 한 소리하기 위해 앉은 것이지 들으려는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현국 할배라면 다르다. 할배와는 온종일도 떠들고 놀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가진 고민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한바탕 혼나도 기분 좋을 것 같다. 채현국 할배처럼 늙고 싶다. 채현국 할배라면 나도 늙고 싶다.

"방황은 곤혹스럽고, 때론 두렵다. 그러나 기피하지 마라. 긍정적으로 마주하라. 자신이 쭈그러들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자기 시대가 가장 괴로운 법이다. 세상은 늘 좀 삐딱한 사람, 엉뚱한 사람, 골 아픈 사람이 개척해왔다. 젊은이가 약아빠져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용기 있는 사람은 나온다. 방황을 겁내지 마라. 방황을 겁내면 늙어서 추해지기 쉽다. 어른들 말을 잘 안 들어도 된다. 어른들의 정의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112쪽)

덧붙이는 글 |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과 도서 <쓴맛이 사는 맛>를 참조했습니다.



쓴맛이 사는 맛 -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정운현 지음, 비아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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