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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윤엄마, 은화엄마 만난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은화엄마, 다윤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지난 17일 오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팽목항을 다녀갔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 중 한 사람인 난, 그의 방문이 눈물겹게 고맙고 반갑지 않았다. 다만 몸 아래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구역질이 마구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거부감은 단순히 그의 방문이 늦어서가 아니었다. 1000일이 훨씬 지나버린 현 시점까지 그가 세월호 참사에 보여준 태도 때문이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던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있었음에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간절하고 처절하게 외쳤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해서, 그리고 피해자 인권 보호와 관련해서 단 한 마디의 논평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추모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 새삼스럽게 팽목항을 찾는다고 하니, 반가울 수가 있었을까.

반 전 총장은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애써 못 본 척 했고, 모르는 척 했다. 그랬던 사람이 귀국과 동시에 대통령 선거의 표를 의식하여, 원통하게 죽어간 아이들을 이용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으니, 어찌 분노와 실망감이 일지 않겠는가.

이 뿐만 아니다. 그가 방문 당시 팽목항에서 보여 주었던 언행은 "왜 팽목항을 방문했는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들었다.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정부가 세월호 침몰 때 좀 더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했었더라면 많은 생명을 더 구했을 텐데... 제가 무슨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를 인양하도록 노력한다고 하니 미력하나마 옆에서 인양이 조속한 시일 내에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여러분들의 고통을 제가 아무리 같이 하려고 해도 여러분만큼 못 느낄 것, 아무리 애통한 말씀을 드려도 제가 충분히 위로를 드릴 수 없는 한계를 알고 있고, 다른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노력하겠다."
"오늘이 세월호가 침몰된 지 1008일째 되는 날로 안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고 인양 업체도 결정됐는데 기술적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인양하겠다는 방침이 분명하고 예산까지 배정돼 있는 상황이니 정부를 믿으셔도 된다." - <머니투데이> 1월 18일자 기사 참고

위 언론 보도 내용을 토대로 봤을 때, 반 전 총장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정부가 저지른 만행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참모들이 팽목항을 가자고 하니 무작정 따라 나섰던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써준 원고를 잘 외워 미수습자 가족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정치인들의 팽목항 방문, 난 반대한다

물론 팽목항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건 반기문 전 총장이 처음은 아니다. 난 마음에도 없이 팽목항 방문을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라고 생각한다.

앞서 김 전 대표는 "세월호에 발목 잡혀 한국경제가 풍전등화에 놓였다.(2014.8.25.)", "국회가 세월호에 묶여 있는 동안 경제 활성화의 새싹이 시들 수 있다.(2014.8.27.)", "배후조종세력이 유족들에게 잘못된 논리를 입력한다.(2014.8.29.)"라는 등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탄압했다.

그 뿐이었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창현이 아빠 이남석씨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써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을 했을 때도 매몰차게 자동차 문을 닫고 외면했던 이가 김 전 대표다. 그랬던 그가 표를 구걸해야 할 순간이 오자 어떻게 했는가. 어떤 비겁한 태도를 보여 주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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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청투어'하고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해 8월 5일 오후 창원고용복지센터를 방문해 김진원 센터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2년 전 세월호 사고를 생각하면서 두근두근하고 저민 가슴을 안고 왔다. 우리 사회에 아직 썩어빠진 부분이 해결 안됐는데 아무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큰 피해를 입은 것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인이 되는 심정이다."

김 전 대표가 4.13 총선을 불과 열흘 남짓 앞둔 지난해 4월 1일 오후 6시 30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홈플러스 사거리에서 열린 김명연 의원 후보 지원 유세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는 4개월 뒤인 8월 또 다시 팽목항을 방문해 "다시는 이 땅에 없어야 할 비극이자 아픔을 우리 국민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계신데 이게 왜 국론 분열과 정쟁의 원인이 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하루빨리 배가 인양돼 바다에 남은 아홉 분이 가족 품에 돌아가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분들의 분향소 및 팽목항 방문은 달갑지 않으며, 죄송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방문은 삼가실 것을 부탁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넋을 추모하고 싶거든 거짓은 집에 던져두고 순수한 영혼만 다녀가길 권한다.

미수습자 가족의 절박한 상황, 이용해선 안 된다

팽목항은 아직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홉 분의 가족들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기다림의 끝을 기다리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곳이다. 조속한 선체인양을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절박한 처지를 정치인들은 결코 이용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추모를 하고 싶어서 팽목항을 방문한 것이라면 수행원들을 멀리하고 기자들 몰래 방문하시라. 만약, 표를 의식하여 요란하게 방문하는 것이라면 애매한 입장은 과감히 버리고 큰 정치인답게 자신이 품고 있는 참사와 관련한 해답을 가지고 피해자 가족을 만나고, 아이들 영정 앞에 설 것을 권한다.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세월호 참사 당시 어떻게 대응했을 것이며, 참사와 관련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어떻게 할 것이며, 특별법 제정과 인양에 대한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함은 물론이고, 향후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해 자신이 설계해 놓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것을 권한다.

팽목항, 안산분향소, 광화문 분향소가 내 땅은 아니니 사이비 정치인들이 제 발로 그곳으로 걸어오는 것을 나의 힘으로는 막을 길이 없다. 하지만 거짓된 얼굴과 음흉한 마음으로, 오직 자신의 이익과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그곳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아이들의 영정 앞에 서서 립 서비스 하는 것을 나는 용서도 용납도 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나에게 충분한 고통과 상처를 주었다. 지금부터라도 그들이 정신 차리고 진정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팽목항을 방문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