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탁 지휘자 이용탁씨는 충청남도 논산에서 남자 사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딸이 없어 막내인 이용탁씨에게 예쁜 여자 옷을 입혀 키웠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종사촌 형님의 초대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를 보고 난 후 국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종대 전 부산대학교 교수에게 피리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 이용탁 지휘자 이용탁씨는 충청남도 논산에서 남자 사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딸이 없어 막내인 이용탁씨에게 예쁜 여자 옷을 입혀 키웠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종사촌 형님의 초대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를 보고 난 후 국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종대 전 부산대학교 교수에게 피리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 이용탁


"우리가 노래방에서 반주를 따라 노래를 부르면 노래하기도 쉽고 듣는 사람도 노래가 더 아름답고 좋게 느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창극을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미리 악보도 만들고 편곡을 하여 정형화 시켜서 브랜드로 만든 사람이, 그것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 이용탁 지휘자 입니다. 처음에는 욕도 많이 얻어 먹었어요. 국악단에 무슨 서양악기가 들어가고 그러느냐고. 그런데 지금은 이 분이 시도했던 것을 다 따라해요. 국악을 사랑하고 국악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용탁씨의 그런 개척정신, 도전정신을 본받아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유대용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원 교수) 

시대가 변하면 환경도, 음악도 변한다. 우리의 창극과 음악을 어떻게 현대화시켜 나갈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대중화 시킬지 고민하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한국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용탁 국립극장 관현악단 부지휘자를 1월 6일 국립국장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6년도에 이용탁 지휘자가 국립창극단의 음악감독으로 창극 '청淸'을 만들 때였다. 이전에도 창극에 관현악을 도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극의 서곡, 다음에 무용음악, 중간에 합창부분들을 국악관현악이 맡아서 하고 나머지는 소리꾼들이 악보 없이 기량껏 노래를 하면 연주자들이 그 소리를 쫓아가는 수성隨聲반주 형태의 극 진행이었다. 

"창극이 계속 재현 되어야 하는데, 뒤져봐도 자료가 없어요. 축적된 자료들이 있어야 그걸 보고 고민을 하고 극을 더 발전시킬 수가 있는데 우리 창극이나 판소리는 자료들이 없어요. 서양의 오페라나 뮤지컬은 작품들이 남아 있는데 우리는 자료가 없으니 전前 작품들을 똑같이 재현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국립창극단 유영대 예술감독님과 시도한 것이 창극 전곡全曲을 악보화 시킨 거예요. 그래야 사람이 바뀌어도 작품들을 재현할 수가 있잖아요. 이전처럼 하면 답이 안 나와요. 그래서 고생스럽지만 제가 처음으로 창극 전곡을 관현악으로 악보화 시켰어요."

 그는 중앙대학교 4학년 시절 서양 작곡가에 다니던 1년 선배인 김회경씨에게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뒤 실내악단을 창단하여 활동을 하였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박은성 지휘자에게 지휘공부를 사사받았다. 국립창극단에 들어가 수석피리를 역임하다가 중앙대 국악관현악단의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는 중앙대학교 4학년 시절 서양 작곡가에 다니던 1년 선배인 김회경씨에게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뒤 실내악단을 창단하여 활동을 하였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박은성 지휘자에게 지휘공부를 사사받았다. 국립창극단에 들어가 수석피리를 역임하다가 중앙대 국악관현악단의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 이용탁


창극 전곡을 악보화 해서 국악관현악 연주로 극 전체를 이끌어 가다 보니 수성반주에 익숙한 소리꾼들과 마찰이 생겼다.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국악관현악 연주에 맞춰 창극 전체에 걸쳐 노래를 불렀던 적이 없었으므로 새롭게 바뀐 진행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불만을 드러냈다. 

"소리하는 분들이 이전의 수성반주진행에 익숙해서 그런지 관현악 연주를 따라 노래를 하게 되니까 자신들의 영역을 빼았겼다고 오해를 하셨나 봐요. 소리를 받쳐주는 음악이 풍성하면 소리꾼들이 감정을 더 이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변화된 환경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소리 하는 분들과 갈등이 많았어요. 국악에 왜 서양악기가 들어오냐, 합창단이 웬 말이냐 등.... 저는 다양한 감정들을 극적으로 표현해야 되는데 국악기는 한정되어 있고, 부족한 부분들을 서양악기를 통해 표현한 것 뿐인데... 그런 마찰이 심해지면서 소리하시는 분들과 관계도 악화되고, 저도 공연을 때려치려고도 했었죠.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어요."

내부의 반발과 갈등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관객들과 언론의 호평이 잇따랐다. 좀 더 일찍 이런 방식으로 창극을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의 소리도 커졌다.  

"야, 이용탁이가 우리 판소리 잡아먹고 망가뜨렸다. 큰일 났다. 어떻게 해야 되냐. 우리 전통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막 이렇게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어떡하면 판소리를 조금 더 부각시켜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고 아름답게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해서 그렇게 한 것 뿐인데... 저도 막 미칠 일이죠. 곡을 쓰고 편곡한다고 쉬지도 못하고 힘들었는데... 그런 갈등속에서 공연을 진행했는데, 관객들 반응이 좋은 거예요. 관객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너무 좋다고, 왜 진작에 이렇게 안 했느냐고 관람객들이 그런 소리를 하니 소리꾼들도 헷갈리기 시작한 거죠. 가만 있어봐, 내가 생각했을 때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관람한 사람들이 자신이 데리고 온 손님들이 다들 좋다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냐고..."

재현 가능한 창극의 시발점은 '청' “작품을 쓸 때 유영대 예술감독님과 생각한 게 뭐냐면 그 전에 있던 창극음악들은 수성반주를 했기 때문에 재현이 안 되잖아요. 악보가 없으니 똑같이 할수 없잖아요. 이거는 안된다. 후대에도 남겨야 되고, 몇 백년이 지나도 서양의 오페라 같은 것들이 지금도 연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전부 악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악보를 만들어야 된다 하고서 유영대 감독님하고 나하고 그 작업을 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 만들어진 게 창극 ‘청’ 이죠. 그 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적벽가, 수궁가 중 흥부전만 빼놓고 모두 악보화 했어요."

▲ 재현 가능한 창극의 시발점은 '청' “작품을 쓸 때 유영대 예술감독님과 생각한 게 뭐냐면 그 전에 있던 창극음악들은 수성반주를 했기 때문에 재현이 안 되잖아요. 악보가 없으니 똑같이 할수 없잖아요. 이거는 안된다. 후대에도 남겨야 되고, 몇 백년이 지나도 서양의 오페라 같은 것들이 지금도 연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전부 악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악보를 만들어야 된다 하고서 유영대 감독님하고 나하고 그 작업을 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 만들어진 게 창극 ‘청’ 이죠. 그 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적벽가, 수궁가 중 흥부전만 빼놓고 모두 악보화 했어요." ⓒ 이용탁


국립극장에서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지정한 창극 '청'의 반응이 좋아 매해 5월에 공연을 올렸다. 창극단 식구들도 이때부터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그 뒤로 모든 작품들을 악보화 시켰고, 창극진행도 관현악 반주를 따라 소리를 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작품이 좋고 안 좋고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재현이 가능하도록 악보, 무대연출, 디자인 노트 등 모든 것들을 자료로 만들어 남겼죠. 평가는 후대에 맡겨야 되겠지만 모든 것을 자료화 해서 언제든 재현할 수 있는 작품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그 의미를 둘 수 있겠죠."

2014년에 그는 충청도 단양에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만든 창작오페라 '바보. 울보'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전곡을 작곡했다. 서양 성악가들과 판소리 하는 사람들을 섞어서 배역을 배치했고, 한국적 선율의 바탕으로 한 '코리아 오페라' 작품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제가 창극단에서 전곡을 악보화 해서 관현악으로 연주한 것도 처음이고, 판소리와 성악을 섞어 배역을 배치한 '코리아 오페라' 전곡을 작곡해서 만든 것도 처음이었죠. 제가 처음 코리아 오페라를 시도한 건 뭐냐면 서양 성악가들만 가지고 우리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성악가들과 우리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같이 섞어서 한국적 오페라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래서 평강공주가 판소리하는 여자면 바보 온달은 테너, 평강공주 아버지가 판소리하는 사람이면 어머니는 소프라노. 이런 식으로 배역에 판소리와 성악을 섞어 놓았죠. 도창은 판소리하는 선생님을 모셔다가 전체적인 해석을 해주면서 노래를 하게 했고, 성악가들에게 한국적인 창법을 가르쳐 오페라에 투입했어요. 선율은 한국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작곡을 했죠. 판소리와 성악이 잘 믹싱이 되서 한국적인 감성을 담은 멋진 오페라 작품이 나오면 우리 시장도 좀 넓어지고, 외국인들에게도 서양에 없는 우리만의 감성을 담은 코리아 오페라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지휘자의 길은 힘들다 “지휘자나 작곡자는 실수하거나 실력이 없다고 소문이 나면 바로 아웃이에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는 피리를 불다가 지휘로 전공을 바꾼 것을 조금 후회할 때도 있어요. 내가  고생스럽게 왜 이 길을 선택했나. 피리 연주를 계속 했으면 돈도 벌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대학교 교수로도 갈 수 있었을 테고. 근데 이것을 포기 못하는 게 뭐냐면 내가 한 50% 정도만 했으면 포기했을 텐데, 한 80%는 온 것 같아요. 80%를 포기하려니 내가 20%를 더 채우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 지휘자의 길은 힘들다 “지휘자나 작곡자는 실수하거나 실력이 없다고 소문이 나면 바로 아웃이에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는 피리를 불다가 지휘로 전공을 바꾼 것을 조금 후회할 때도 있어요. 내가 고생스럽게 왜 이 길을 선택했나. 피리 연주를 계속 했으면 돈도 벌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대학교 교수로도 갈 수 있었을 테고. 근데 이것을 포기 못하는 게 뭐냐면 내가 한 50% 정도만 했으면 포기했을 텐데, 한 80%는 온 것 같아요. 80%를 포기하려니 내가 20%를 더 채우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 이용탁


이용탁 지휘자는 중앙대학교 한국음악학과에서 피리를 전공했고 동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이어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휘는 한양대학교 지휘과 교수를 역임한 박은성 교수와 중앙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박범훈 교수에게 사사받았다. 또한 이태리 포르멜로(Formello) 시립음악원(ViViAmol'Arte) Accademia Musicale 오케스트라 지휘전공으로 디플로마를 받았고, 헝가리 International Barto'k Seminar's Conducting Course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수료했다. 서양음악과 국악에 두루 밝은 그에게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악 관현악단의 차이점에 대해 물어 보았다.

"국악기가 서양악기에 비해 종류와 숫자가 적어요. 베이스를 담당하는 국악기는 '아쟁' 밖에 없지만 서양악기는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도 있고 인원수도 많아요. 국악기만으로 오케스트라 관현악을 하면 화성에 문제가 많이 생겨요. 서양 오케스트라 같은 경우에는 목관악기도 있지만 금관악기로 된 것들이 많고, 100명 정도 규모의 오케스트라들이 연주를 하면서 마이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기본적인 것을 조금 제외하고는 거의 라이브로 진짜 음을 느낄 수 있는데, 국악기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소리가 작아서 음향과 밸런스에 문제가 생겨요. 목소리도 직접 육성을 듣는 게 좋은 것처럼 마이크를 대고 연주를 하면 뭔가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죠. 그래서 국악기 숫자가 적고 음량이 작기 때문에 곡에 따라서 필요한 부분들을 서양악기로 채워주는 거죠. 국악기들이 개량이 되어 종류와 숫자가 많아지고 좀 더 좋아질 때까지는 서양악기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 더 풍성한 국악세계를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죠."

헝가리와 이태리에서 지휘공부를 하고 그는 지휘를 한양대학교 지휘과교수를 역임한 박은성교수와 중앙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박범훈교수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또한 이태리 포르멜로(Formello) 시립음악원(ViViAmol'Arte)Accademia Musicale 오케스트라 지휘전공으로 diploma를 받았고, 헝가리International Barto'k Seminar's Conducting Course에서 오케스트라지휘를 수료하였다.

▲ 헝가리와 이태리에서 지휘공부를 하고 그는 지휘를 한양대학교 지휘과교수를 역임한 박은성교수와 중앙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박범훈교수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또한 이태리 포르멜로(Formello) 시립음악원(ViViAmol'Arte)Accademia Musicale 오케스트라 지휘전공으로 diploma를 받았고, 헝가리International Barto'k Seminar's Conducting Course에서 오케스트라지휘를 수료하였다. ⓒ 이용탁


그는 국가브랜드 창극인 '청'을 비롯해 '수궁가' '몽유도원도' '대가야의혼 가얏고' '바보·울보' '황진이' '심청전' '15,16세 처녀' '산불' '춘향전'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해 수 많은 곡들을 작곡하였다. 그에게 서양악기와 국악기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서양 악기의 장점은 음정을 맞추기가 용이하지만 국악기는 음정 맞추기가 조금 어려워요. 국악기는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줄을 튕겨 음을 만들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음정을 잘 맞출 수 있죠. 서양악기의 장점은 정확한 음정들을 손쉽게 맞출 수 있는 악기 구조로 되어 있고, 우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그런 차이점이 있죠. 서양악기는 종류가 많고 생긴 것도 좀 예쁘고, 음정이 정확하고 대체로 아름답고 깨끗한 음색이 나오죠. 반면에 우리 국악기 음색은 좀 탁하지만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고, 감정표현의 폭이 넓고 깊은 편이죠. 이게 국악기의 장점이죠. 서양악기는 굉장히 웅장하고 사운드가 좋고 깨끗함이 있는데 감정표현은 국악기에 비해 약하죠. 국악기는 큰 사운드는 안 나오지만 감정을 표현할 때는 좋으니 저는 이런 장점들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국악기의 소리가 작아서 국악관현악을 연주할 때 마이크를 사용하여 음량의 크기와 밸런스를 조절해 왔기 때문에 관객들은 국악기 고유의 자연스러운 음질을 듣기 어려웠다. 국립국악원은 이러한 국악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공연장인 우면당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음향 공연장으로 개조하였고, 새해부터 실험공연을 시작한다. 

"사실 기대도 많이 하고 있어요. 좀 우려가 되는 것은 그렇게 했을 때 국악기 중 타악기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국악의 타악기들은 장단의 개념이 있어 계속 리듬에 맞춰서 쳐줘야 곡이 되고 놀이도 되지만 서양의 팀파니 등 타악기들은 그런 게 없거든요. 그 장단이 필요할 때 딱 치고 없어지면 되거든요. 국악 타악기는 치는 사람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야 되는데 타악이 다른 악기소리를 다 잡아먹기 때문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조용하게 쳐야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음향으로 공연을 하게 되면 타악기의 소리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이 드는 거죠. 어찌됐건 그런 것은 앞으로 곡을 쓰는 작곡자들과 연주자들이 고민해서 풀어가야 되고, 이런 공연장이 생긴다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악의 대중화를 향해서 “관객들이 맘대로 골라 볼 수 있게끔 다양한 음악들이 있으면 좋겠죠. 전통적인 노래도 있고, 퓨전적인 음악도 있고. 이거 하나만 가지고 좋으니 보라고 그러면 관객들이 힘들다는 거죠. 그래서 다양성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나와 주면 좋은 일이죠.”

▲ 국악의 대중화를 향해서 “관객들이 맘대로 골라 볼 수 있게끔 다양한 음악들이 있으면 좋겠죠. 전통적인 노래도 있고, 퓨전적인 음악도 있고. 이거 하나만 가지고 좋으니 보라고 그러면 관객들이 힘들다는 거죠. 그래서 다양성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나와 주면 좋은 일이죠.” ⓒ 이용탁


매년 전국 대학교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수백명씩 배출되고, 해외에서 국악공연이 호평을 받는 등 내외적 조건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좋아진 부분들도 많이 있지만 국악 대중화의 발걸음은 아직 더딘 상황이다.

"국악대중화가 느린 이유가 레퍼토리 부재 때문이죠. 오랫 동안 전통적인 국악을 전공하신 분들은 자신의 음악이 가벼워질까봐 퓨전음악 등 새로운 시도를 잘 안 하려고 그래요. 클래식 전공자들이 대중음악을 잘 안 하듯이 그런 것 같아요. 좋은 기량을 가진 음악인들이 비중은 전통쪽에 두더라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면 레퍼토리가 다양해지죠. 예를 들면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이 퓨전음악을 한다면 깊이가 없고 예술성이 부족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안 하잖아요.

조수미 같은 분이 팝페라나 대중음악을 부르니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국악계도 인식을 바꿀 필요성이 있는 거죠. 정상급에 있는 분들이 장르를 가리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댜양한 음악을 시도해주면 국악계의 분위기가 확 바뀌죠. 무게 있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에 도전하면 사람들이 더 존경스럽게 보잖아요. 그리고 학교나 실생활에서 가야금이나 장구 등 국악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되요. 그럴려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국악에 대한 인식과 체험을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고, 학교에서 국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를 잡아야 국악 대중화도 앞당겨지고, 국악의 미래도 밝아질거라 생각합니다." 

국악은 나의 인생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연주를 보면서 너무 멋있다고 그럴까. 어릴 적에 조그만 공연이 아니고 규모가 큰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을 본 게 저한테는 굉장히 충격이었죠. 소리도 너무 예쁘고. 어렸을 때라 그런가 봐요. 처음을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서 싫고 좋음이 결정되는데 그 때 제가 좋은 것을 봤기 때문에 국악이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끝까지 국악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 국악은 나의 인생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연주를 보면서 너무 멋있다고 그럴까. 어릴 적에 조그만 공연이 아니고 규모가 큰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을 본 게 저한테는 굉장히 충격이었죠. 소리도 너무 예쁘고. 어렸을 때라 그런가 봐요. 처음을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서 싫고 좋음이 결정되는데 그 때 제가 좋은 것을 봤기 때문에 국악이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끝까지 국악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 이용탁


이용탁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악을 시작하여 국악동요제 '우리들의 꿈' 입상, 국악협회 주최 국악 젊은 작곡가 창작공연 '농촌의 삶' 작곡상 수상, 국립극장 공로 표창장, 국악협회 주최 국악작곡축제 '3개의 현악기를 위한 현絃' 작곡상 수상, 문화부장관상 공로표창, 제14회 국립극장창작공모 국악관현악 해금협주곡 '독백' 당선, 국악방송 '이달의 작곡가'로 선정,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장관상 을 수상하는 등 국악발전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 왔다. 그가 생각하는 국악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 소리는 기계적인 음이 아니고 바람소리나 물소리처럼 자연스럽죠.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선율은 된장이나 김치처럼 깊은 맛과 울림도 있고 맛깔스럽기도 하죠. 그래서 국악을 들으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끌리잖아요. 해금, 아쟁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오고, 장구나 꽹과리 소리 들으면 그냥 몸이 들썩거리죠. 우리 몸이 우리 소리에 그냥 반응을 하는 거죠. 서양은 음정에 맞게 연주하면 악기소리가 아주 깨끗하게 들리는데 우리 국악은 그렇지 않아요. 이게 아이러니인데, 악보대로 연주를 하면 국악은 참맛이 잘 안나요. 요즘말로 하면 애드리브를 쳐야 제맛이 나요. 한마디로 연주자나 소리꾼들의 개인적 기량에 따라 맛에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되죠. 그게 어떻게 보면 국악의 단점이면서 국악의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1965년도에 국악 관현악단이 처음 만들어질 때 서양 오케스트라를 모방만 했다는 지적도 있고, 국악 관현악단이 양적 성장은 많이 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큰 발전이 없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서양의 방법을 쫓았다기 보다는 그런 형식을 빌려서 한 것인데, 음향학적으로 어디에 어떤 악기가 앉았을 때 소리가 어떻게 어울리고 소리가 새나가는지 이런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될 그런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소리를 커버할 수 있는 현악기가 몇 개가 되어야 되는지, 어디에서 어떤 악기를 불었을 때 전달이 더 잘되는지 등 심도 깊은 연구를 계속 해야 되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음향의 공연장이 있어야 되는데, 이번에 국립국악원에서 우면당을 자연음향 공연장으로 개조해서 실험공연을 진행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이 배우러 오는 코리아 오페라를 만들고 싶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로 코리아 오페라를 하고, 외국성악가들이 우리 오페라를 배우러 올 수 있는 그런 좋은 작품을 하나 만들고 싶은 게 저의 꿈이죠. 서양의 대표적인 오페라나 뮤지컬 하면 뭐다고 딱 떠오르 듯이 우리도 창극, 코리아 오페라 그러면 딱 떠오르는 그런 대표적인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거죠.”

▲ 외국인들이 배우러 오는 코리아 오페라를 만들고 싶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로 코리아 오페라를 하고, 외국성악가들이 우리 오페라를 배우러 올 수 있는 그런 좋은 작품을 하나 만들고 싶은 게 저의 꿈이죠. 서양의 대표적인 오페라나 뮤지컬 하면 뭐다고 딱 떠오르 듯이 우리도 창극, 코리아 오페라 그러면 딱 떠오르는 그런 대표적인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거죠.” ⓒ 조우성


초심 잃지 말고, 때 묻히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노력하면서 때를 기다리다 보면 정상에 설 수 있다고 가르침을 내려 준 이용탁씨의 첫 스승인 이종대 전 부산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예술을 하려면 예술이 우선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인간성이 먼저 갖추어 진 후에 그 위에 예술을 입혀야 그 예술이 더 훌륭한 예술이 됩니다. 좀 한다고 깝죽대면서 딴 짓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인간성이 꽝인 것 같으면 그거는 인정을 못 받아요. 오래 못 갑니다. 그러니까 예술인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인간이 먼저 되어야 되는 거죠. 이용탁 지휘자는 국악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고, 새로운 레퍼토리와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앞장 서서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는 부드럽고 겸손하면서도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외유내강의 품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이용탁 작곡가겸 지휘자가 국악발전을 위해 큰 일을 많이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용탁 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창극 청 유영대 교수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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