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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커팅 하는 한준수 부시장, 박정희 시의회의장, 장금도 명인, 신명숙 교수(왼쪽부터)
 케이크커팅 하는 한준수 부시장, 박정희 시의회의장, 장금도 명인, 신명숙 교수(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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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민살풀이춤 전승자 장금도(1928~) 명인이 올해 구순을 맞는다. (관련 기사 <"기생되기 얼매나 어려웠다고, 그런디도 천시허고...">) 장 명인은 1939년 군산 소화권번에 입소, 회초리를 맞아가며 예의범절과 가무(歌舞)를 익힌 이 시대 마지막 '생짜기생' 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군산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장금도 명인의 구순연(오찬)이 열렸다. 이날 연회는 한준수 군산시 부시장, 김봉곤 문화예술과장, 박정희 군산시의회 의장, 이복 시의원, 이진원 군산문화원장, 황대욱 군산예총 회장, 이진우 <매거진군산> 대표, 문정현 아리울역사문화연구회(사) 대표, 연극배우 강나루 씨 등이 참석해 장 명인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

장금도 명인의 며느리(아들은 월남전 참전용사로 고엽제 후유증을 앓다가 2008년 고인이 됨) 손녀, 제주도에 사는 장 명인의 동생, 인천에 사는 조카 등 가족도 참석해서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날 오찬은 신명숙 대진대학교 무용학부 교수(학부장)가 마련했다. 신 교수와 장 명인은 18년째 '사제의 연'을 맺어오고 있다. 신 교수는 "30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하시던 선생님이 작년 7월 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선정된 것에 감사드리고 선생님의 구순을 기념하기 위해 조촐하게나마 오늘의 자리를 준비했다"고 인사했다.

이노우에 교수, "조선 기생은 신여성"

2016년 한 해 동안 군산에서는 장금도 명인 관련 행사가 봄·가을 두 차례 열렸다. 특히 <마지막 예기 장금도의 춤 재발견>이란 주제로 치러진 3월 26일 행사는 장금도 명인의 일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사진전시회와 즉석 토론회를 곁들여 의미를 더했다. 장미공연장은 계단까지 빈자리가 없이 만원을 이뤘고, 사진전은 전시 기간을 15일 연장 전시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전시장에 걸린 군산소화권번 예기들 단체사진(1939년)
 전시장에 걸린 군산소화권번 예기들 단체사진(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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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명산동에 남아 있는 유곽 내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이노우에 교수
 군산시 명산동에 남아 있는 유곽 내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이노우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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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국제대학 이노우에 가즈에(井上和枝) 교수는 "조선 기생의 사회적 위치와 권번과 기생에 대한 논문 자료를 준비하던 2016년 2월 <오마이뉴스>에서 장금도 생애 관련 기사를 읽고 글을 쓴 기자를 만나기 위해 군산에 왔다"며 일제강점기 군산의 예기들 활동과 권번 문화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이노우에 교수는 "기생 잡지 <장한>(1927년 1월 창간)을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 기생의 사회적 위치와 자기 변혁 등을 연구하면서 조선 기생은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독립운동에도 참여하고,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나타내는 기생도 존재했음을 알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기생은 신여성임과 동시에 근대조선의 현대사를 말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고 평가했다. 

군산을 다녀간 후 기자와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던 이노우에 교수는 5월 초에도 1박 2일 일정으로 군산을 다시 방문했다. 그는 첫날 장금도 명인 사진전시장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군산학' 강의를 수강하였다. 이튿날에는 기자의 안내로 옛 소화권번 자리, 명월관, 명산동 유곽 단지, 동국사 등을 돌아봤다. 

"세상과 화해의 살풀이판을 열어드리고 싶었다"

1960년대 중반 속리산에서 친목계원들과(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얼굴을 가린 사람이 장금도 명인)
 1960년대 중반 속리산에서 친목계원들과(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얼굴을 가린 사람이 장금도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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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산시의회 의장은 "1960~1980년대 장금도 선생님과 저의 어머니는 친목계 회원으로 형님·아우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작년 3월 하순 손님과 미즈커피(장금도 사진전시장)에 갔다가 50여년 전 속리산 법주사에서 찍은 친목계 회원들 단체 사진이 전시된 것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며 '목욕탕집 딸'로 불리던 자신의 여고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극단 <둥당애> 연출가로도 활동하는 강나루(44) 씨는 "장금도 선생님은 오래 전부터 꼭 한번 찾아뵙고 싶었으나 거주지를 몰라 아쉬워하던 차에 구순연회에 초대받고 감격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그동안 잘못 알려진 기생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눈물과 한(恨)으로 점철된 기생 장금도 명무의 일생을 연극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포즈를 취한 강나루씨와 장금도 명인
 포즈를 취한 강나루씨와 장금도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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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사람들은 남다른 콤플렉스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도시라서 그런 것 같다. 군산에서 태어난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군산의 근대역사에 대한 공연(근대역사박물관 상설공연, 3·5 독립만세운동 등)을 준비하면서 저항의 역사가 더 생생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또한 예외가 아니다.

권번 출신 기생들은 공연예술의 명맥을 이어온 분들임에도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본다. 나는 타지에서 활동할 때 장금도 명무를 알았다. 그분은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었음에도 가족을 위해 숨어 지내는 게 안타까웠다. 시대의 희생양이 된 장 선생님 일생을 2012년부터 연극으로 만들고 싶었고, 냉대했던 세상과 화해의 살풀이판을 열어드리고 싶었다. 민살풀이는 국내 유일의 전통춤으로 군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지정받도록 관심 가져야"

장금도 명인이 관객들의 권유로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다.(2016년 3월 26일)
 장금도 명인이 관객들의 권유로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다.(2016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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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대표는 "작년 3월 군산 장미공연장 공연 때 장금도 명인의 춤사위를 처음 봤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권유로 허리가 할미꽃처럼 굽은 할머니가 신발까지 벗고 유연하게 열정적으로 춤추는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는데, 오늘도 가슴이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장 선생님은 '군산의 보물'로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관심과 사랑으로 기억해야 할 소중한 지역 무형문화재"라고 말했다.

이진원 군산문화원장과 황대욱 군산예총 회장은 "예술의 전당과 국립극장 <명무전> 등 다양한 중앙무대에 초대됐고, 프랑스·일본 등 해외 초청공연도 다녀온 장금도 선생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며 "군산을 민살풀이와 권번 부채춤의 본고장으로 만든 장금도 선생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편 군산시는 2016년 7월 장금도 명인을 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선정하고, 9월에는 민살풀이춤 관련 구술조사 및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김봉곤 군산시 문화예술과장은 "과업(구술조사 및 자료 수집) 목적은 민살풀이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학술 및 고증자료 등을 수집하고, 민살풀이춤 보유자인 장금도 선생의 구술조사 및 사진, 동영상 자료 등을 취합하여 우리 지역 향토문화유산인 민살풀이춤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함으로 '자료집'은 2017년 봄쯤 완성될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금도 명인, #구순연회, #민살풀이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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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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