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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골목 마지막 주민인 최은아·이길자씨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보낸 감사편지.
 옥바라지골목 마지막 주민인 최은아·이길자씨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보낸 감사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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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저희 때문에 힘드셨죠?"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옥바라지골목 개발 반대투쟁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주민 2명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주인공은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 총무를 맡았던 최은아씨(49)와 투쟁본부 역할을 했던 구본장여관의 주인 이길자씨(64).

이들은 18일 박 시장에게 전달된 편지에서 "정들었던 옥바라지골목을 떠나 새로운 동네에 정착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며 "시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저(최씨)는 이사를 하여 잘 지내고 있고, 이길자씨는 얼마 전 개업을 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예쁜 편지지에 한 자 한 자 볼펜으로 눌러쓴 편지에서 이들은 "저희가 만나면 시장님 얘기를 꼭 한다"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우리로 인해 고통받은 것, 약속 지키려 노력한 것 다 알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우리가) 일 보러 가시던 시장님께 갑자기 나타나서 '시장님, 저희 좀 도와주세요' 하니까 가던 길 멈추고 따뜻하게 먼저 손잡아 주셨던 것 그리고 우리 얘기 잘 들어 주셨던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이들은 지난해 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조계사에 들어가던 박 시장을 막무가내로 붙잡고 제발 한 번 만나달라고 사정했던 적 있다.

두 번째는 "구본장 강제집행 때 옥바라지골목에 오셨던 것, 그리고 그 때 속상한 저희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던 것"을 꼽았다. 이들은 "그 후 시장님이 옥바라지골목으로 인해 마음고생 많이 하셨다는 것, 그리고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는 것 저희가 다 알고 있다"며 "저희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지난해 5월 17일 오전 철거용역과 대책위가 대치하고 있던 옥바라지골목 현장을 깜짝 방문해서 "지금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이 공사는 없다, 내가 손해배상 당해도 좋다"고 말한 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세 번째는 "면담 때 시장님께서 저희에게 사과의 말씀 먼저 하셨던 것이 인상 깊었다"며 "용기가 있는 분이기 때문에 사과를 잘 하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여주신 진실한 마음과 의리를 잊지 않겠다, 항상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옥바라지골목 보존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시장님, 옥바라지골목이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저희는 정말 옥바라지골목에 계속 살고 싶었어요. 그 여름 무더위와 싸우며 옥바라지골목을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5월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바라지골목 철거현장에 나타나 담당 공무원에게 공사중단을 지시하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 주민 최은아씨와 이길자씨(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들)가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5월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바라지골목 철거현장에 나타나 담당 공무원에게 공사중단을 지시하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 주민 최은아씨와 이길자씨(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들)가 지켜보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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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을 보호하려는 박 시장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

이 편지를 직접 쓴 최은아씨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투쟁을 접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뒤 지난 일을 생각해보니, 박 시장님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박 시장님이 아니었다면 무자비한 용역깡패들에게 무참히 쫓겨나 거리에 나앉았을지 누가 아냐"고 말했다.

또 구본장여관 주인 이길자씨 역시 "처음부터 옥바라지골목에 그냥 사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이사를 가고 옥바라지골목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것 같아 아직도 아쉽다"면서도 "그렇지만 철거민을 보호하려는 박 시장의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생각에 늦게나마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편지를 받아 읽고 "시장으로 가장 보람된 순간이며, 지난 고난의 시간을 시원하게 만들어준 사이다 같은 편지"라며 "더 분발해 시민 눈높이에서 듣고 행동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옥바라지골목이 포함된 무악2지구 재개발사업은 이주를 거부하는 일부 주민들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대책위가 해당 지역이 인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나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하던 여관 밀집지역라며 개발을 반대하고 나서 장기간 교착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나 조합측의 공사 강행으로 옥바라지골목의 철거가 거의 완료된 데다, 오랜 투쟁으로 인해 심신이 극도로 지친 주민들은 지난해 8월말 조합과 합의한 뒤 이주하고 말았다.

서울시는 합의 직후 옥바라지골목 자리에 옥바라지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고 인근 역사적 장소들을 연계해 역사탐방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달 초에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제철거를 예방하기 위해 이해당사자 간 충분한 사전협의가 이뤄지도록 조례개정을 통해 '사전협의체' 제도 법제화를 완료했다.

지난해 5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옥바라지골목 보존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길자씨와 최은아씨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옥바라지골목 보존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길자씨와 최은아씨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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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최은아, 이길자씨가 박 시장에게 보낸 편지 전문.

박원순 시장님께.

시장님 안녕하셨어요.
옥바라지골목 주민 최은아입니다.

정들었던 옥바라지골목을 떠나 새로운 동네에 정착한 지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시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저는 이사를 하여 잘 지내고 있고, 또 한 명의 옥바라지골목 마지막 주민이었던 이길자님은 얼마 전 개업을 하고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저희가 만나면 시장님 얘기를 꼭 합니다.
그 중 첫번째는 우리가 일 보러 가시던 시장님께 갑자기 나타나서 "시장님, 저희 좀 도와주세요" 하니까 가던 길 멈추고 따뜻하게 먼저 손잡아 주셨던 것 그리고 우리 얘기 잘 들어 주셨던 것이에요. 참 고마웠습니다.

두번째는 구본장 강제집행 때 옥바라지골목에 오셨던 것 그리고 그 때 속상한 저희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던 것이에요. 그 후 시장님이 옥바라지골목으로 인해 마음고생 많이 하셨다는 것, 그리고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는 것 저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세번째는 사과를 잘 하는 시장님이라는 것이에요.
면담 때 시장님께서 저희에게 사과의 말씀 먼저 하셨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용기가 있는 분이기 때문에 사과를 잘 하신다고 생각해요.
박원순 시장님이 보여주신 진실한 마음과 의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박원순 시장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시장님, 그리고 옥바라지골목이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저희는 정말 옥바라지골목에 계속 살고 싶었어요. 그 여름 무더위와 싸우며 옥바라지골목을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옥바라지골목 주민 이길자, 최은아 드림



태그:#옥바라지골목, #박원순, #이길자, #최은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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