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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2016년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태백광노(太白狂奴).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이 있는 나라의 사람으로 망국을 슬퍼하며 미쳐 돌아다니는 노예'.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우리나라 근대 역사가 박은식 선생의 필명이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수치심이 얼마나 절절했으면 필명을 태백광노라고 지었을까. 절절한 애국지사들의 마음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일제시대는 외면하려 하여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강제가 존재하지 않았나. 지금은 그래도 헌법이 보장된 민주주의 시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나의 안일함과 게으름에 핑계를 삼는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2017년을 살고 있는 나 역시 실은 이 조국과 땅을 빼앗긴 백성이라는 것을. 사익을 추구하는 대통령과 간신들에게 국정을 빼앗겼고, 이들을 따르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밀양을, 구럼비를, 한강을, 금강을, 낙동강을 그리고 영산강을 빼앗기지 않았나. 땅만 빼앗겼나. 내 친구, 형제들은 자본주의의 맹공 속에 꿈을 빼앗기고, 시간을 빼앗기고 인간다운 삶을 빼앗긴 채 안정적인 삶의 노예가 되지 않았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내 아이를 기르기 위해 생계전선의 최전선에 내몰린 부모들의 부재 속에 아이들은 핸드폰과 게임에 내몰려 삶과 시간을 헌납하거나, 학벌과 외모가 계급을 결정하는 피라미드 속에서 아귀다툼을 하며 결국 모두를 집어삼키는 괴물로 자라가고 있지 않은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통탄스런 고백은 그의 고백만이 아니다. 사악한 무리들에게 나라와 친구와 자식을 빼앗긴 설움의 백성이 바로 나고 바로 우리다.

<한국통사>에 담긴 아름다운 강산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푸는 내 마음.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 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 노래 가사 중

   아름다운 강산을 신명나게 부르는 참가자들
 아름다운 강산을 신명나게 부르는 참가자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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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교육문화연구학교 열네 번째 시간 참가자들은 모둠별로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 1편 발제를 나누고 토론을 이어갔다. 모둠별 발제를 시작하기 전 신중현씨의 <아름다운 강산>을 함깨 불렀다. "빰빰빰 빠바바 빠밤 빠밤 빰빰빰 빠바바바바" 어깨가 들썩 거리는 신나는 가락과 곡조로 공부하는 공간은 덩실거렸다.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씨가 박정희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난 후 바로 발표한 곡이다. 신중현 씨는 노래를 만들지 않으면 다친다는 서슬퍼런 정권의 협박을 받았음에도 그 말에 굴하지 않고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했다. 물론 이 노래는 유신정권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신중현 씨의 아들 신대철 씨는 지난 12월 보수단체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집회에서 이용했다는 것을 듣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신이 제대로 연주하겠으니 촛불집회 집행부에서 자신을 섭외하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작년 마지막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신대철 씨와 전인권 밴드가 함께 연주한 아름다운 강산을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강산은 왜 '江山' 인가? 우리가 살아온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정권, 권력이 있기 전에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사 중, '우리는 이 땅 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이 땅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혹은 그 이전) 이래로 고려, 조선, 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온 터전이다. 박정희 등, 권력이나 정권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억겁의 세월이 물려 준 자연, 이곳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살아갈 것이며 또 죽어갈 것이다. 잠시 왔다가 가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름다운 조국'이나 '한국'이 아닌 '강산'이다." -신대철 씨 페이스북 내용 중

1972년 신중현 씨가 잠시 왔다가 가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했다면, 박은식 선생은 1915년 이방 땅 중국에서 일제에 빼앗긴 우리 민족이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국통사>를 기록했다.

   <한국통사> 표지
 <한국통사> 표지
ⓒ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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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역사라 하여 <한국통'(痛)'사>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통사 서언에는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망하더라도 역사는 망할 수 없다 했다. 나라라는 것은 형체만을 말하는 것이고 역사는 바로 신명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형체는 이미 훼손되고 말았으나, 신명만큼은 고고히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이 통사는 바로 이런 뜻에서 쓰는 것이다. 신명이 존재하여 없어지지 않으면 형체는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래서 이를 편찬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나라를 빼앗겼으나 언어와 역사인 신명이 존재한다면 땅과 같은 물리적 토대인 형체는 되살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지어진 한국통사. 신중현 씨와 같은 마음이였을까? 박은식 선생은 압제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록한 역사서 제일 첫 장을 이 땅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한국통사> 1편은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산과 바다, 강을 지나 중요한 남과 북의 정치구역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박은식 선생은 어떤 이유로 책에 나열된 지역과 구역을 기록하셨는지, 그 지역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설명이나 아름다운 풍경 정도에 대한 감탄 이외에 선생의 의도를 담은 기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빠른 시간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는 화가의 마음처럼 중요한 지리들을 하나하나 책에 담는다.

   참가자들이 모둠에서 나눴던 내용과 자신의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모둠에서 나눴던 내용과 자신의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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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에서 지리는 어떤 의미인가. 박은식 선생이 기록하진 않았지만 책을 통해 들려오는 박은식 선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마음을 들어 본다. 모둠별로 이야기 된 발제와 토론을 전체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며 참가자들은 박은식 선생이 말씀하시는 '빼앗긴 땅에 대한 애틋한 마음', '빼앗긴 우리 국토를 다시 보며 그 아픔의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세세히 기록하여, 결국에는 도래할 승리의 새 역사를 소망하는 마음'을 들려주었다.

땅을 빼앗겼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송두리째 짓밟힌 것

"꼭 저렇게 까지 해야 해?"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기 시작했으나 아직 경복궁역 앞에 차벽이 세워져 길이 막혀 있던 11월 말쯤의 어느 날, 촛불집회 중계를 보다 전경들을 압박하며 청와대 쪽으로 향하려는 시위대를 보고 아내에게 던진 말이다. 사람들이 엉터리 언론에 의해 폭력 시위 운운하는 여론에 휘말릴까 조심하며 평화적으로 시위하자는 의견이 SNS에 많이 올라오던 때였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차벽 주위를 막고 있는 전경을 과격하게 압박하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났다. 그 앞에서 밤새워 대치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전략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 뻔한 경찰 차벽 앞으로 몰려가 전경을 압박하며 늦은 시간까지 왜 버티고 있을까. 설사 전경이 밀려 시위대가 앞으로 나갈 수 있더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영상 속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통사>를 읽으며 우리의 지리에 대한 박은식 선생의 마음을 알고 나니 새롭게 해석되었다. 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최봉실 대표(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는 땅을 빼앗겼다는 것을 "현재성을 빼앗겼다"는 말로 설명했다.

"'내가 산다는 것'은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나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바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이 한 사람의 물적 토대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땅을 빼앗겼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나의 삶을 빼앗겼다는 것이며 결국 나의 현재성을 빼앗겼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을 빼앗겼다는 것은 이 현재성을 빼앗겼다는 것이고 결국 이것은 이 땅에서 태어난 나, 나의 삶, 나의 존재가 송두리째 짓밟힌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땅이 한 사람의 물적토대가 됨을 설명하는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
 땅이 한 사람의 물적토대가 됨을 설명하는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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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들이 나아가고자 했던 경복궁역 앞 차벽은 단순히 전경들에 의해 막힌 길목이 아니었다. 부정한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고 훼손당한 우리의 국토다. 물리적으로 한 걸음 더 확보하겠다는 그들의 행위는 불의한 권력에 의해 압제당하는 우리의 현실을 깨부수고 말겠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늦은 밤까지 차벽을 흔들고 전경들을 밀어 붙이는 사람들의 행위는 '차벽을 밀면 차벽이 무너질까?', '앞으로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계산된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나의 현재성을 강탈한 이들을 향한 본능적인 저항이며 삶을 강탈한 이들을 향한 분노의 함성이다.

촛불 집회 때 탁 트인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행진할 때 느꼈던 해방감은 단순히 평소에는 걸을 수 없었던 도로를 걸어서 일어나는 여흥이 아니다. 촛불의 힘이 모여 이루어낸 혁명의 공간을 마주한 감격이고, 되찾은 땅에서 누리는 평화의 마음이다. 억울하게 빼앗겼던 나의 삶이 회복되어 누리는 치유의 순간이다.

해방 광장의 감격을 맛보았지만 적의 형세는 무너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강고하게 성벽을 구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싸움은 길기만 하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 정의의 칼날에 수없이 심판대에 올랐으나 그때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온 이들. 아무리 노력해도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정한 권력 앞에 우리는 좌절하게 된다. 이때 스멀스멀 숙명론이 고개를 쳐든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다고 변하는 게 있을까?

나는 안양에 위치한 대안학교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서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11월 초 금요일 농사 수업 시간 텃밭을 다녀오는 길, 다음 날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를 이야기하며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JTBC에서 태블릿 피씨와 관련된 내용이 보도된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무력하게 있을 수 없다며 점점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기였다. 변화하는 시국과 함께 서로 광장에 갈거냐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 한 친구는 담담하게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다고 변하는 게 있을까? 난 광장에 안 갈거야."

최봉실 대표는 주어진 운명을 변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해서 변화의 실천을 행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숙명론이라고 했다. 지금 자신의 삶이 끊임없는 변혁의 산물임에도 숙명론은 모든 변화의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촛불의 수가 점점 늘어나도,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도. 거짓이 밝혀지고 진실이 드러나는 현실에도 결국 정의와 공의의 대한민국 재건은 실패할 것이라는 강력한 회의주의와 패배주의는 숙명론에 기반하고 있다.

"수많은 변화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음에도, 결국에는 실패할 것이라는 회의적 태도는 아예 어떤 변화의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설사 걸음을 내딛었다 하더라도 현실적 장벽 앞에 '봐라, 안 될 줄 알았다'라며 모든 변화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변하는 게 있을까?" 이 한마디는 어린 친구의 혼잣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수많은 이들이 뛰어넘어야 할 삶의 장벽 앞에 모두 무릎 꿇고 순응한다. 처음부터 익숙한 것, 잘 하는 것이 어디에 있었을까. 어린 시절 몸을 뒤집기 위해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여 뒤집기에 성공했던 몸의 기억은 사라지고, 익숙한 것, 내가 잘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방패 삼아, 새로운 배움도 새로운 관계도 마주하게 될 작은 실패가 두려워 외면하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사람들은 숙명론을 마치 물 흐르듯,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실제로 자연과 우주의 질서는 말 그대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한 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사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은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 발 딛고 서 있는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끝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최 대표는 숙명론은 엄밀히 따지면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의 질서에 끝까지 지독하게 맞서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수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 엄청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며 숙명론에 기대어 변화하지 않는 삶의 현실을 비판했다.

"우리 손에는 들여다보고만 있으면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갓난쟁이부터 다 큰 어른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변화에 무감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이 시대의 상징적인 문화현상입니다. 진보한 기술을 덧입은 스마트폰을 계속해서 갈아치우는 것이 마치 한 개인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수 있으나 이것은 결국 자신을 성찰하여 일구는 삶의 근원적인 변화를 막고, 당장의 즐거움과 안락에 취해 자기 자신을 고집스럽게 머물러 있게 하는 행태가 집단적으로 조성되는 현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숙명론의 결말은 결국 짜여진 사회에 순응하며 노예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숙명론과 섭리론에 대해 설명하는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
 숙명론과 섭리론에 대해 설명하는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
ⓒ 새들생명울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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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을까. 최봉실 대표는 노예에서 해방되어 주인이 되는 새 역사를 선택하는 것이 '섭리론'이라고 했다. 섭리론도, 숙명론도 운명을 믿는 것은 똑같지만 숙명론이 변화가 불가능한 운명을 말한다면 섭리론은 변화가 가능한 운명을 믿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를 두고 말한다.

"숙명론이 나를 노예화시키는 운명을 의미한다면 섭리론은 끊임없이 삶을 창조해 나가는 주인으로서 나를 살게 만드는 운명을 말합니다. 이는 나 혼자 주인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생명적 존재와 함께,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빼앗지 않고 친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주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섭리론입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승리의 역사를 함께 일구어 갔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떠올리니 막막함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버린 이 땅에 과연 생명의 봄은 찾아오는가? 그러나 생명의 봄은 기어코 오고야 만다. 12월 국정조사가 한창이던 때에 "과연 변할까?"라며 반문했던 친구에게 변화하는 역사적 현장의 소식을 전했다. 이 친구는 이야기를 듣고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맞아요, 선생님. 역사는 변할 수 있어요"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박은식 선생이 기록했던 이 땅의 지리를 회복하는 것도, 신중현 씨가 노래한 아름다운 강산을 일구어 가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결국에는 안 될 거야"라는 숙명론이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잠식해 들어오려 할 때 스스로 마음을 지키며 서로의 마음을 지켜주는 동지로, 벗으로 사는 우리가 있는 한 새 역사의 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와 함께 나는 반드시 빼앗긴 땅을 되찾고 말 것이다!

너의 마음은 내 마음,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 마음, 너와 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사랑은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다 모두 다 끝없이 다정해.
-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 노래 마지막 가사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319)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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