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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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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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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일출도 보고 마음도 새롭게 할 겸 기차를 타고 강원도 정동진에 갔다.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이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 덕분에 덜 지겨웠다. 대통령·장관·고위 공무원 등 한국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목도하면서 '성공'이라는 말에 큰 회의를 느끼게 되는 요즘. 놀면 놀수록 성공한다니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는 이야기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2011년(개정판) 저자는 '경제도 나쁜데 웬 노는 타령이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단다. 더욱 놀라운 건, 2005년 초판이 출간됐을 때도 같은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단다. 이쯤 되면 '경제도 어려운데...'는 실은 한국사회의 일중독증을 보여주는 것이지 싶다.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노는 이야기나 한다고 혀를 차는 이들의 걱정을 따라 하다가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리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논다는 건 나태나 무위도식한다는 말은 아니다. 놀다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는 뜻이다.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조력이 필요한데, 창조는 재미에서 온다는 것이다. 근면 성실은 우리가 세계 최고다. 근데 재미가 없으니까 더 이상 발전이 없다. - 본문 가운데

저자는 우리나라의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삶의 재미가 없는 집단 심리학적 질병, 즉 '놀면 불안해지는 병'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라는 이야기다. 인내하며 견디는 방식으로 21세기를 잘 살아 나갈 수 없단다.

구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업무시간의 20%를 딴짓하기' 프로그램은 왜 구글이 21세기를 선도하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심리학적으로 창의성과 재미는 동의어', '놀아야 창의성이 생긴다'는 저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열심히'만 하는 조직의 미래는 모방과 따라쟁이(copycat)라는 거다. 박근혜 정권에서 주창한 '창조경제'가 실패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길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얘기가 통용되곤 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 열심히 일을 한 후 퇴근해 직장 동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그 시간도 업무라고 생각하라니...떠올려보면 어릴 적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못 이루게 했던 소풍날도 마찬가지였다. 소풍 전날 담임 선생님은 말했다. "소풍은 수업의 연장이다."

잘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는 그래서 '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히려 '놀다'라는 단어에 부정적 이미지마저 덧씌워 놓았다. 대표적인 표현에 '놀고 있네!'가 있다. 그래서일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해야 즐겁게 잘 놀 수 있을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다. 기껏해야 술자리, 인터넷 게임이나 노래방이다. 15년 동안 오로지 골프에만 열중해 최고의 골프여왕으로 등극한 박세리 선수가 부진에 빠진 후 아버지에게 항의했다는 말은 한국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골프에 지쳤다. 이제 골프에서 잠시 빠져 나오고 싶다. 나는 골프 말고 다른 일상생활을 즐기고 싶다. 다른 건 다 가르쳐놓고 왜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즐겁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강변에서 만난 자전거 덕후. 자신만의 자전거를 만드는게 취미다.
 강변에서 만난 자전거 덕후. 자신만의 자전거를 만드는게 취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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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자아를 확인하라...나이가 들수록 내 존재는 나의 지난 직함이 아니라, 내가 즐기는 취미를 통해 확인된다. 이런 사람들은 가족이 다 떠난 후 '빈둥지 증후군'을 느끼거나 다 늙어 '바다를 찾겠다'고 떠나는 한심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 본문 가운데 

지금 삶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해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혹시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거야!'는 얘기일까 싶었는데 속단이었다.

행복과 재미는 참고 기다려서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어떤 것이 아니다. 행복과 재미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저자는 그렇게 '사소한' 재미를 특히 강조한다. 나 또한 자전거를 즐겨 타면서 느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행복으로 가는 작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마니아나 '오타쿠(혹은 덕후)'가 아니어도 좋다. '난 자전거 라이딩에 미쳤어', '난 슈베르트 음악에 빠졌어', '난 낚시광이야', '등산만 하면 신이 나' 이런 것들이 있어야 삶을 기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단다. 책속에 소개된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가운데에도 '사소한 일에 절대 감동하지 않는다'가 꼽힌다.

노는 것을 개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점도 색달랐다. 놀랍게도 몇몇 나라에선 국민들의 여가와 놀이를 위한 부처가 다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김정운 (지은이) | 21세기북스 | 2011-09-16



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2011)


태그:#김정운, #노는만큼성공한다, #마니아,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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