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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역사는 위고 말처럼 시테 섬에서 시작된다. 시테 섬 일대를 이르는 파리의 고대 지명은 '루테티아(Lutetia)'였다. 라틴어로 '진흙'을 뜻하는데
파리 센강 위에 시테 섬. 노틀담 성당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에펠탑에서 쏘아 올리는 레이저 빔의 불빛이 보인다.
 파리 센강 위에 시테 섬. 노틀담 성당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에펠탑에서 쏘아 올리는 레이저 빔의 불빛이 보인다.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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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가르는 센 강 한가운데에는 '시테(Cite)'라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센 강을 기준으로 강의 남쪽을 좌안(左岸, rive gauche)이라 하고, 북쪽을 우안(右岸, rive droite)이라 하는데, 이 세 지역은 각기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우리에겐 <노트르담의 곱추>로 더 익숙한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파리의 이 독특한 도시 구조를 몇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파리는, 누구나 알다시피, 하나의 요람과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시테라는 옛 섬 안에서 태어났다.(...) 15세기까지도 아직 파리는 제각기 다른 모습과 특수성, 풍속, 습관, 특권, 그리고 역사를 지닌 서로 판이하게 구별되는 세 개의 도시, 즉 시테와 대학과 장안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테는 섬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가장 작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다른 두 도시의 어머니 격으로, 이런 비유가 허용된다면, 마치 두 명의 아름다운 큰 딸 사이에 끼인 조그만 노파처럼, 두 도시 사이에 꼭 끼여 있었다."

파리 시청
 파리 시청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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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가 말하는 '대학'은 센 강의 좌안, '장안'은 센 강의 북쪽 우안을 뜻한다. 그가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시테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해 성당이 많았고, 장안에는 루브르 궁과 시청을 비롯해 저택이 많았으며, 대학에는 소르본을 비롯한 학교가 많았다. 자연스레 시테 섬은 주교의 소관, 센 강 우안은 행정 장관의 소관, 좌안은 대학 총장의 소관이었다. 이 세 지역은 각각 특수한 성격을 지닌 독립된 부분이면서도, 전체가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도시이기도 했다. 

파리의 역사는 위고 말처럼 시테 섬에서 시작된다. 시테 섬 일대를 이르는 파리의 고대 지명은 '루테티아(Lutetia)'였다. 라틴어로 '진흙'을 뜻하는데 이 지역이 습지대였음을 의미한다. 원래 시테 섬 일대에 정착해 살던 부족은 켈트 족의 하나인 파리시이(Parisii) 부족이었다. 이들은 센 강변에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였다. 파리 곳곳의 유적지 안내 표지판들이 배의 노를 세워 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파리. 노를 세워 놓은 모양으로 된 유적지 안내 표지판
 파리. 노를 세워 놓은 모양으로 된 유적지 안내 표지판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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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1년 갈리아(Gallia)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파리시이 족이 살던 시테 섬 일대에 도시를 건립하게 된다. 파리가 본격적인 수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천 년도 넘는 세월이 흐른 뒤다. 3백여 년 지속된 이 카페 왕조(987-1328) 시기에 파리에는 거대한 성곽과 요새가 세워지고,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중세 도시의 면모를 갖추면서 유럽 신학과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이 때 건조된 것이다.

이후 영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 16세기 종교전쟁의 격동기를 거쳐 앙리 4세(Henri IV, 1553-1610)에 의해 부르봉 왕조(Dynastie de Bourbon, 1589-1792)가 세워진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무너지기까지 200년도 넘게 지속된 부르봉 왕조 시기에 프랑스는 왕권이 강화되고, 파리는 수도로서의 위상이 높아지고 확장된다. 특히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의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은 절대왕정의 정점과 몰락의 전조를 보여준다.

파리 노틀담 대성당
 파리 노틀담 대성당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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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7월 14일 분노한 시민들의 습격으로 혈흔이 낭자했을 바스티유(Bastille) 감옥, 마리 앙투아네트(Josèphe Jeanne Marie Antoinette, 1755-1793)가 화려했던 생을 마감하며 공포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콩시에르쥬리(La Conciergerie), 왕의 목을 자른 국민의 혈기가 가득한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프랑스 대혁명의 흔적은 파리를 혁명의 도시라 불리게 하는 상징이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의 안타깝고 허망한 삶의 끝을 보여주는 쓸쓸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 후로도 근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프랑스는 수많은 민중봉기와 혁명을 겪고, 공화정과 왕정과 제정을 넘나들며 혼란의 시대를 지나게 된다. 끊임없이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부숴가는 사이 파리는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파리 노틀담 대성당
 파리 노틀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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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시테 섬 일대와 센 강변을 거닐었다. 노트르담 성당에선 마침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성당 안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절로 벅차오른다. 천 년의 세월을 같은 자리에서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지켜본 성당이 아닌가. 알 수 없는 자신의 운명과 불안한 삶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서 무릎을 꿇었을까.

문득, 200여 년 전 이곳에서 거행되었던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의 황제 대관식 장면이 떠오른다. 루브르와 베르사유에 남아 있는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대작으로 기억되는 그 장면. 스스로 자신의 머리 위에 황제의 관을 올리고, 아내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우던 그 호기롭고도 도발적인 그 장면. 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을 인파를 상상해 본다. 천하를 호령하고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도 십 년 후엔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려야 했으니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걸려 있는, 노틀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그림. 다비드의 이 거대한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도 걸려 있다. 두 그림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일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흥미롭다.
 베르사유 궁전에 걸려 있는, 노틀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그림. 다비드의 이 거대한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도 걸려 있다. 두 그림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일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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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 좌안으로 걸어 내려가니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하고 있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보인다. 자유와 낭만이 도시를 채운다. 생 루이 섬 골목골목의 저택들을 좀 더 둘러보다가 퐁네프까지 걸었다. 낙엽이 미친 듯이 떨어져 뒤덮고 있는 거리를 걷다 보니, 화려한 불빛이 눈에 부신 파리 시청이 저만치 보인다. 시청사의 과한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런 도시의 이런 공간, 저런 시청에서 하는 일이라면 산더미 같은 서류에 하루 종일 도장 찍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도 견딜만 하겠다 싶은 생각이 잠시 든다.

강 건너편에 콩시에르쥬리가 보인다.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스산하다. 저 육중하고 캄캄한 방을 거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 많은 이들은 이 도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지금 이 도시는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으면서 마치 세상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우쭐한 한심한 인간들을 토닥이며 센 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른다. 에펠탑은 저만치서 레이저를 쏘아대고, 도시는 오늘도 어제처럼 출렁인다.

파리 센강변. 콩시에르쥬리
 파리 센강변. 콩시에르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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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파리 여행, #노틀담 대성당, #시테 섬,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루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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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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