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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마와 침술 위주로 이루어진 커리큘럼. 맹학교에 입학하면 비장애인과 공존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진로는 하나로 정해진다.
장애인 편의시설 현황을 드러낸 실태보고서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몸이 벌레로 변해 있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이와 같은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비슷한 사유실험 하나를 제안해보겠다.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를 시끄럽게 깨우던 자명종이 보이지 않으니 몇 시인지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아무리 비벼보아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희뿌옇게 빛깔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각장애인 조현대씨가 쓴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시각장애인 조현대씨가 쓴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 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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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조현대씨가 쓴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라는 책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나갈 때 어떤 각오가 필요한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어려움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을 보지 못하는 당신은 활자가 아닌 점자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해당 책은 장애인 편의시설의 현황을 드러내는 '실태보고서'다. 책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일러주는 '길라잡이' 역할까지 한다. 이는 책 저자의 활동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현대씨는 10년에 걸쳐 여러 기관에서 장애인 편의시설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했다. 시각장애인인 당사자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불편함을 느꼈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자료조사에 매달렸다.

덕분에 그는 공공기관, 대중교통, 은행, 병원 등 개선이 필요한 편의시설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덧붙인다.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야할지 조언하는 지점은 놀랍다.

책은 사회제도 비판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쇼핑, 문화예술 등을 포함하는 여가생활을 다루었다. 인간관계를 둘러싼 이성 간 사랑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비장애인이 잘 모르는 시각장애인의 세계를 소개해 서로가 공존하는 것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 소외일지도 모른다

저자 조현대
1966년 경북 예천 출생. 5세에 백내장을 앓고 실명. 서울 맹아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교육학 공부. 1999년 시각장애인연합회로부터 요청을 받아 장애인 편의시설 조사 시작. 2002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통해 도서관 영화관 등 문화시설 조사. 2008년 강남구청에서 6개월 간 장애인 편의시설 조사. 2009년 구로구청에서 8개월 동안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 참여.
저자의 주장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맹학교 폐지'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는 명분으로 비장애인과 분리교육하는 현장. 사회로 나갈 통로를 마련해준다는 명분으로 안마와 침술 위주로 이루어진 커리큘럼. 맹학교에 입학하면 비장애인과 공존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진로는 하나로 정해진다.

점자교육 이외에는 한글 교육도 하지 않아 문서를 작성할 때 어려움이 발생한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 소외일지도 모른다는 비판이 날카롭다. 이에 저자는 맹학교를 줄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이 어울릴 수 있는 통합교육을 주장한다.

당신은 왜 내가 프란츠 카프카의 사유실험을 이야기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수많은 설정 중에 왜 하필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가상조건을 적용했는지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각장애인이 겪는 이 불편을 '역지사지'의 태도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제도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식전환도 제자리에 머물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아닌데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나 돈 벌고 밥 먹기도 바쁜 세상인데 장애인 배려는 사치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체 장애인 중 약 90%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원인모를 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내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니라면 가족이나 지인이 장애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책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 개념을 꺼낸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지 모른다고 가정해보면 복지의 당위성을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을 결정짓는 요소는 인간의 선의나 노력을 벗어난 차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향한 관심은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는 사회는 비장애인도 살기 좋은 세상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 조현대씨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의 행복'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연 기자는 시각장애인 조현대씨의 활동보조를 하고 있으며 책 집필을 돕고 있다.



태그:#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장애인, #복지, #조현대, #맹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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