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대선주자의 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에게는 대체로 혹독한 검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재산과 납세, 병역, 전과 등은 '기본'이고, 친인척과 측근 비리 의혹 등도 단골로 등장하는 검증대상이다.

특히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병역문제'는 대통령의 자격을 평가하는 아주 민감한 잣대다. 그런 점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 병역문제에 관한 한 큰 결점은 없어 보인다. 본인은 물론이고 장남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모범"이라던 '해병대 군복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7일 오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난 뒤 기자들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7일 오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난 뒤 기자들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반 전 총장은 서울대 외교학과에 재학중이던 1965년 4월 22일 입대해 1967년 10월 7일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학군장교(ROTC) 후보생이었던 그는 장교로 임관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무고시를 준비하느라 훈련 등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거나 학군단에서 자퇴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 전 총장의 아들인 우현(44)씨도 1997년 3월 3일 입대해 1999년 5월 2일 제대했다. '26개월간'의 현역 복무기간을 정상적으로 마친 것이다. 당시 부친인 반 전 총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맡고 있었다. 외교안보수석은 명목상으로 차관급이지만 실제 영향력에서 차관을 넘어선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직후인 지난 2006년 11월 13일 <대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제 아들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일 때 해병대를 다녀오겠다고 자원해서 해병대를 보냈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반 전 총장의 6촌형인 반기종씨도 언론에 "그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라고 말만 하면 아들을 편한 곳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도 반 장관은 외아들을 해병대에 보냈다"라고 전했다. "공직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게다가 전영숙씨는 지난 2007년 펴낸 저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키워라>(여성신문사)에서 "그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반우현씨를 일부러 해병대에 보냈다"라고 썼다. 이어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던 그의 위치에서 조금만 힘을 쓰면 편한 보직으로 보낼 수 있었을텐데 그는 반대로 아들을 해병대로 보냈던 것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자원해서"와 "일부러"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반 전 총장이나 반기종씨가 언론에 전했던 이야기와 거의 같은 내용이다.

이후 '반기문 장남 해병대 군복무'가 인터넷 등에서 사실처럼 돌아다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반 전 총장에게는 외아들까지 '귀신 잡는 해병대'에 보냈다는 '애국적 신화'가 만들어졌다. 대선출마 가능성이 커지자 그 애국적 신화는 더욱 커져 갔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장남은 '해병대'가 아닌 '특전사'에서 군복무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좀 흥미로운 반전이 이루어졌다(관련기사 : [오마이팩트] 반 전 총장의 장남, 해병대에서 근무하지 않았다).

해병대와 특전사를 헛갈릴 수 있나?

흥미로운 반전은 반 전 총장이 아들의 특전사 군복무 사실을 모르고 해병대에 보냈다고 말했을까이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접한 한 누리꾼은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추측했다. 고위공직자 아들들이 부친의 '빽'으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편한 보직을 받아 군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은 군기가 가장 세다는 해병대를 보냈다고 강조하기 위해 거짓말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006년 11월 13일 신수용 <대전일보> 편집국장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아들이 해병대를 자원해서 해병대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병대는 특전사와 달리 사병들을 자원받은 뒤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친다.

1980년대 특전사 장교로 근무했다는 A씨는 "특전사 자원입대는 부사관(하사관)에게만 해당된다"라며 "사병들은 일반적으로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중 차출해 공수교육과 특수전교육을 받은 후 특전사에 배치한다, 일반 사병의 경우 처음부터 특전사에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A씨는 "다만 2007년부터 일반 병사들도 모병에 의해 처음부터 특전사를 지원한 상태에서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거나 훈련소에서 차출해서 특전사로 배치시키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따라서 반 전 총장의 아들이 1997년도에 특전사를 자원해서 갔다는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특전사 장교 출신인 B씨는 "해병대와 특전사(공수부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라며 "(반 전 총장 장남이 군복무한) 1997년-1999년에 공수부대원들은 검은 베레모를 착용했고, 해병대는 개구리 무늬의 팔각모를 썼다"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이 해병대와 특전사를 헛갈려서 얘기할 만한 요소가 적다는 얘기다.  

다만 당시 반 전 총장을 인터뷰한 신수용 전 편집국장은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고위공직자 자제들이 군대를 안보내는 일이 많아서 (반 전 총장의 아들은) 병역을 마쳤음을 강조한 것이다"라며 "해병대인지 특전사인지는 내가 잘못 메모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투임무를 맡는 작전팀에 사병은 없다"

반 전 총장의 장남 우현씨의 군번은 '97760*****'이다. 앞자리 숫자 '97'은 그가 입영한 연도(1997년)를 가리키고, 그 다음 숫자인 '76'은 논산훈련소(육군)를 나타내는 고유번호다. 그러니까 반 전 총장의 장남은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가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뒤 특전사로 최종 배치됐음을 알 수 있다.

일반인들은 특전사든 해병대든 '군기가 센' 곳, 즉 군복무하기 힘든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특전사나 해병대에서 군복무했다고 하면 "뺑이 좀 쳤겠구나"라고 말하곤 한다. '뺑이치다'는 군대에서 쓰는 은어로 '힘든 일로 고생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반 사병의 경우 특전사와 해병대의 군복무 강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1990년대 특전사에서 장교로 군복무한 C씨는 "특전사 사병으로 갔다 왔다고 하면 엄청 많이 고생한 것으로 아는데, 특전사를 아는 사람들은 '놀다 왔네'라고 농담할 정도로 특전사가 빡센 곳은 아니다"라며 "특전사는 편제 자체가 하사관 체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C씨는 "물론 특전사 사병이라도 1년에 4번 낙하산을 타야 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다"라며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특전사 사병들은 군수, 인사, 정보, 취사병, 부대관리병 등으로 일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5개 중대로 구성되는 지역대 본부의 행정병으로 간 사병들이 (특전사 보직 가운데) 가장 꼬인 경우지만 그렇다고 중대 하사관들처럼 힘들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특전사 출신인 D씨도 "현재 특전사의 작전팀은 부사관 11명(하사~상사)과 장교 2명(소.중위~대위)으로 구성되어 있다"라며 "사병은 지역대, 대대, 여단 본부의 행정부서(행정병, 통역병 등)와 지원부서(운전병, 취사병, 의무병 등)에만 보직되며 전투임무를 맡는 작전팀에는 없다"라고 전했다.

D씨는 "1989년까지는 작전팀에 사병이 2명씩 있었다"라며 "그러나 작전팀에 편성된 사병들의 체력과 전투기술 전문성이 부사관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져 그해(1989년) 작전팀에서 병사가 제외되고 부사관 11명, 장교 2명으로 편성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특전사 소속 병의 역할은 행정, 당번, 운전, 수송 등 지원병 역할이다"라고 덧붙였다.

"통역병으로 근무했다면 특혜 의혹 제기될 수 있어"

앞서 언급한 C씨는 "반면 해병대는 (특전사처럼 하사관 체제가 아닌) 사병 체제다"라며 "특전사에서는 사병들보다는 하사관이나 장교가 더 고생한다, 하사관이나 장교가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C씨는 "해병대가 침투훈련, 상륙작전 등 특수전을 수행하긴 하지만 편제는 일반 보병대대와 같다고 보면 된다"라며 "해병대에서는 사병들이 전투임무를 수행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C씨는 반 전 총장의 장남이 특전사 최고의 보직으로 통하는 '통역병'으로 근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특전사는 미국과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곳이어서 통역장교와 통역병이 있는데 통역병은 아무나 가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반 전 총장 장남이 통역병으로 근무했을 수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아버지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기 때문에 특혜 근무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반 전 총장 쪽은 "반우현씨는 육군에 지원해 특전사에서 복무했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왜 반 전 총장이 "아들이 해병대를 자원해서 해병대를 보냈다"라고 말했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장남이 정상적인 군복무를 마쳤기 때문에 크게 시비를 걸 사안은 아니지만 반 전 총장의 발언에서 '잘못된 정보'(해병대 군복무)가 퍼졌다는 점에서 그의 해명이 꼭 필요해 보인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분석) 고정미(아트디렉터)


태그:#반기문, #반우현, #해병대, #특전사
댓글5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2017 대통령선거 후보 검증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