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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2분의 시간.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2분의 시간.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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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대 인근 대학동 고시촌에서 하숙을 하는 20대 후반 청년이다. 이곳에는 고시생, 서울대생, 회사원, 나 같은 취업 준비생 등이 많이 산다. 우리 하숙집은 주말에 밥을 주지 않는다. 이런 날 나는 주로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단골 메뉴는 GS25에서 파는 '혜자 도시락'이다. 혜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2분 남짓은 미묘한 시간이다.

이것저것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아무 생각이 없을 때는 평소에 덧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의 존재가 문득 떠올라 불안함이 느껴진다. 2분은 짧지만 시간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적막 속에서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와 같다.

그 호수를 들여다보면 피자스쿨에서 고구마 피자를 사 먹고 싶은데 몇천 원을 아끼려고 전자레인지에 혜자 도시락을 돌리는 내 초라한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도 어느 한 군데 둥지를 못 튼 무기력한 청년이 서 있다. 그렇다고 고작 고구마 피자 때문에 우는 건 꼴불견이다. 눈물은 마음속으로 삼킨다. 삼킨 눈물이 잔잔했던 호수에 떨어져 물결이 퍼져가는 것만 같다.

혜자 도시락을 들고 언덕을 타박타박 올라오다 보면 우울함의 물결은 더욱 요동친다. 마치 나 자신이 세상 쓸모없는 '잉여인간'인 것처럼 자괴감도 든다. 서른 살이 가까워질수록 빈번해지는 이 청승맞는 경험들로 인해 부쩍 '문송함(문과라서 죄송함)'을 느낀다. 하지만 혜자 도시락은 죄가 없다. 혜자 도시락은 그저 가성비 좋은 간편식일 뿐이니까.

편의점 음식은 빈곤의 상징이 아니다

<경향신문 > 2016년 10월 5일자 1면.
 <경향신문 > 2016년 10월 5일자 1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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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즐겨 읽는 일간지 1면에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올라왔다. 연출이었다. 뉴스 댓글 창에는 '진짜 같다' '참신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해당 언론은 "제목과 기사, 사진을 가린 한 끼 먹거리는 기성세대의 형식적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청년 문제보다 더 중한 게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다"며 "이 시대 고달픈 청년들의 상징"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달아놨다.

"지금 당장 주위를 돌아봐라. 편의점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면서 비닐봉지 한 개 분 정도의 내일을 준비하는 동료나 친구, 이웃이나 친척이 얼마나 많은지" (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중)

그 이웃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막상 나의 주식들을 콕 집어 "고달픈 청년의 상징"이라 말해주니 기분이 이상했다. 청년 문제와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편의점의 주 이용층이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을 2030, 회사원·학생인 것도 맞다. 다만 굳이 내 단골 식당과 음식들을 불쌍한 사람들이 가는 곳, 먹는 음식인 양 규정하지 않아도 해당 이슈들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은 절대적 빈곤을 상당 부분 벗어난 나라다. 내가 고구마 피자가 없지, 혜자 도시락이 없는 건 아니며 당장 굶어 죽지도 않는다.

최근 첫 방송을 시작한 <편의점을 털어라>(tvN)라는 예능 프로는 편의점 음식들을 창의적으로 뒤섞어 퓨전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프로에는 '마크 정식'이라는 레시피가 등장해 청년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마크'는 아이돌 그룹 갓세븐(GOT7) 멤버 이름이다. 편의점 퓨전 음식 기획은 마크 이전에도 유튜브나 아프리카 TV의 먹방 인기 BJ들이 꾸준히 선보여온 콘텐츠다.

이 콘텐츠를 주로 즐기는 것은 물론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편의점 퓨전 요리는 비용이 고작 몇천 원 정도가 들 뿐이며 즐거움을 준다. 먹방 BJ와 시청자들은 유용한 레시피를 공유하고 음식의 가성비를 따지고 관련 기업에 대한 품평을 남겨 압박하는 등 소비자 주도적 문화 형성에도 한몫한다. '편의점 음식=청년 빈곤의 상징'처럼 단순한 도식으로 청년 음식 문화를 파악하면 안 되는 이유다.

문제의 본질은 혜자 도시락이 아닌 '불안정한 미래'

잘 먹었습니다. (혜자도시락 아님)
 잘 먹었습니다. (혜자도시락 아님)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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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편의점 음식=청년 빈곤의 상징'이라는 편견이 아직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이유는, 편의점 간편식들이 '정상 식사'의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여서일 것이다. 3, 4인의 중산층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는, 혹은 친구끼리나 직장 동료끼리 모여 회식을 하는 그런 '정상 식사'들 말이다. 이러한 '정상 식사'의 기준에서는 편의점 간편식들은 안쓰러운 청년들이나 먹는 '비정상'의 음식이 된다.

그러나 편의점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상이다. 늘어난 편의점 수만큼이나 편의점 음식들을 먹는 청년이 늘어난 이상 기존의 '정상 식사'의 지위 역시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만큼이나 편의점 인생들이 많은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 국내에 출간됐다. 이 책에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모태솔로에, 편의점 알바만 18년째인 게이코가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은 게이크로를 '비정상'으로 본다. 그러나 그녀에게 편의점은 오히려 그녀를 '정상적'으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편의점 업무는 단순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남 눈치 볼 것도 없이 소소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 이러한 삶은 얼핏 서글프고 지루할 것 같지만 게이코에게는 지극히 '편의적'이다. 손님 쪽도 '편의적'이긴 마찬가지다.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충분히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정신은 안정감을 느끼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 안정감을 위협하는 진짜 문제는 편의점이나 혜자 도시락 자체가 아니다. 바로 혜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릴 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간'이 던지는 물음이다. 인생은 짧고 유한한데 이 사회는 편의점과 같은 단순한 매뉴얼보다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매뉴얼들에 충실할 것을 채근한다.

실제 우리들은 대학은? 취업은? 결혼은? 같은 강박적인 추궁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행복과 멀어져 간다. 사회는 이러한 '정상 매뉴얼'에 적합한 적자만을 생존시키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놓고 정착할 공간 하나 얻지 못한 채 사회와 이어진 실오라기 하나 간신히 부여잡고 잉여 인간이 되지 않고자 발버둥 칠 뿐이다.

책 <편의점 인간> 겉표지
 책 <편의점 인간> 겉표지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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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게이코는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 일일이 저항하고 설명하기를 포기하는 대신 자의식을 바짝 낮춰 '보통 인간(편의점 인간)'으로 살아가는 차선책을 택했다. 나는 여기서 쾌락의 총량을 늘리려고 애쓰는 대신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에피쿠로스식 행복주의와 유사한 인생 철학을 발견한다. 주류 음식 문화의 시선으로 볼 때 편의점 음식은 무언가 결핍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편의점과 편의점 음식은 그저 기본적인 식사를 제공하는 데 충실할 뿐이다.

아무리 저급해 보이는 음식일지라도 '기본'은 갖췄고, 가격도 싸다. 그러므로 '먹방'처럼 새로운 문화가 파생될 수 있다. 먹방 청년들은 편의점 음식을 뒤섞은 퓨전 요리를 창조해 결핍의 틈을 메우고 모니터 앞에 모여들며 열광한다. 먹방의 1승은 기존의 주류 문화가 이미 현대인에게 행복을 주지 못 하고 있다는,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매뉴얼에 따랐을 때 미래가 불안하다는 징후일 수 있다. '편의점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

올해 스물아홉, 내년이면 서른.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시간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내게 20대의 마지막 선택을 재촉한다. 어떤 선택이든 돈이 없을망정 가오가 없고 싶지는 않다. 혜자 도시락은 죄가 없다.


태그:#편의점 인간, #편의점, #경향신문, #혜자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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