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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나(Ghana) 출신의 한 중년 여성이 가게에 와서 대뜸 "두 유 해브 빙 박?" 하고 묻는 것이다. 수박, 호박, 두레박은 알아도 빙 박은 처음이라 대체 그게 뭐냐 물었더니 마침 옆에 서 있던 한 캐나다인 여성이 설명해주었다. 오래전에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에선 아직도 영국식 영어가 쓰이는데, 영국과 캐나다에서 '쓰레기 봉투'를 '빈 백(Bin bag)'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쓰레기통'이 미국식 표현으로 'Trash can'인 반면 유럽 쪽에선 'Dust bin'이라서 '빈 백'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종량제 봉투 팔자고 가나 역사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다.

작년 언젠가 또 다른 아프리카 출신의 한 중년 남성이 가게에서 직원들을 붙잡고 '감비지 빼빠'를 묻고 다니는데, 대체 그게 뭔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오리무중이었다가 한참 만에야 그가 찾는 것이 'Garbage paper(쓰레기 봉투)'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구나 해외에서 거주하게 되면 그곳에 정착하기까지 새로 배우고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다. 내가 볼 때 한국살이를 처음 시작하는 외국인들에게 있어 첫 관문이 바로 '종량제 봉투'가 아닐까 싶다. 5리터부터 100리터까지 나뉘어 있는 일반용과, 1리터부터 10리터까지 나뉘어 있는 음식물용 봉투를 용도에 맞게 구분해서 사는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일인 듯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일반용 종량제 봉투를 사러 온 외국인들에게 몇 리터 짜리를 찾는지, 혹은 원하는 용량이 뭐냐고 물으면 대게 '멘붕'스런 표정을 짓는데, 그럴 때마다 일일이 종량제 봉투의 종류와 용량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종종 애를 먹는다. 한국인 배우자나 연인 혹은 주변에 친한 한국인이라도 있으면 미리 물어보고 적어오는 경우는 그래도 수월하지만, 그야말로 백지상태로 와서 무작정 쓰레기 봉투 '빅 사이즈' 달라고 할 때마다 또 시작이구나 싶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사실 한국어 좀 한다는 외국인들에게 있어서도 '쓰.레.기.봉.투' 혹은 '종.량.제.봉.투'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발음 난위도 상급인지라, 간혹 '시레기 봉투'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농담삼아 '시래기 국 먹어봤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5사이즈 주세요"... 외국인도 '절레절레'하는 종량제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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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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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은 종량제 봉투를 대게 '(General) Trash/Garbage bag' 또는 'Food Trash bag'이라고 하거나, 'White/Blue bag', 'Yellow bag'으로 부른다. 그런데 '리터'라는 단위만큼은 한국인과 외국인 양쪽에게 있어 평생 익숙해지기 힘든 장애물인 것같다. 하물며 한국인들조차 아직도 종량제 봉투 20킬로, 20밀리라고 하거나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음식물 봉투 '5 사이즈' 달라고 하는 웃지 못할 경우들이 많은데 외국인들은 오죽할까? 간혹 당당하게 와서 Trash bag 20갤런 혹은 20파운드를 찾는 외국인들 때문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한 젊은 외국인 여성에게 한국에서 쓰레기봉투 사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실 외국인들은 종량제 봉투 외에도 까다로운 분리수거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가 많고 분리수거용 투명 봉투를 따로 구매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무척 혼란스러워한다. 따라서 주민센터 등에서 배포하는 분리수거 안내 스티커에 최소한 영어 안내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올해에도 어김없이 종량제 봉투의 가격은 오르고 말았다. 이 빡센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분리수거를 더욱 철저히 해서 종량제 봉투를 조금만 사는 것뿐인 것같다.


태그:#종량제, #쓰레기봉투, #이태원,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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