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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씨.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값을 주고  커피를 수입하고 있다.
 이영애 씨.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값을 주고 커피를 수입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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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바닥과 천장 사이. 주방까지 모든 공간은 훤히 공개돼 있다. 기다란 한쪽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온 공간에 퍼졌다.

곳곳에 걸린 글귀는 마음마저 편안하게 했다. 벽에 새긴 '더불어 삶', 'STOP GLOBAL WARMING'(지구 온난화 그만) 등은 카페가 추구하는 철학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했다.

대전 노은동에 있는 카페 '종'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1동) 실내 풍경이다. 이영애씨가 지난 2015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지구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팔고 있다. 비싸기로 소문난 루왁 커피는 아니다. 일반적인 커피 품종 중 가장 비싸다는 얘기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커피콩은 향긋한 꽃향기에 초콜릿 맛이 우러나는 버번 종이다. 물론 아라비카 종이다. 커피는 크게 향미와 질이 좀 떨어지는 로부스타종과 아라비카종으로 나뉜다. 아라비카종은 로부스타종에 비해 생육 조건이 까다롭고 병충해에 취약해 키우기가 까다롭다.

"다른 공정무역 커피보다 1.5배 더 주고 수입"

평범한 아라비카종인데 왜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것일까?

"제가 취급하는 커피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재배한 공정무역 커피입니다. 산지 생산 농민들에게 제값을 주고 사들인 커피죠. 일반 커피 수입상들이 커피 생두를 기준으로 킬로그램당 4불 정도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공정무역을 하는 시민단체 등에서 사들이는 가격은 6불 정도입니다. 저는 그보다 많은 8불 정도를 주고 사옵니다."

다른 공정무역 커피보다도 1.5배를 더 주고 사들인다는 얘기다.

"농작물 중 담배와 커피에 특히 농약 사용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비옥한 토지에서 잘 자라는 만큼 화학비료도 많이 쓰죠. 이 커피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커피입니다. 해발 1800~1900m 고지대에서 재배해요. 에콰도르 대회에서도 1위를 차지했어요."

유기농이라고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유기농 커피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 생산과 유통 과정을 보면 경제 불평등을 그대로 설명해 주고 있어요. 실제 생산 농가는 다국적 기업들에 킬로그램당 1달러도 안 되는 헐값에 내주거든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그래서 우리는) 다국적 기업의 농가 착취형 방식을 거부합니다. 커피 생산 농가와 직거래로 소규모 농가에 적정한 소득을 보존해 주는 공정무역 방식을 고집하죠. 커피 생두를 살 때 시가보다 높은 수준의 최저 가격을 보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소비자에게는 거품을 뺀 가격으로 공급합니다. 이윤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삶이 목적이니까요."

공정무역을 통해 삼림 재배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종'
 공정무역을 통해 삼림 재배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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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유기농+ 삼림 재배 커피... "숲 훼손 하지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는다. '공정무역'을 하는 시민 단체들보다도 굳이 높은 가격을 주는 연유다.

"밭에서 재배하는 일반 유기농 커피가 아니에요, 남미 에콰도르에 있는 고도가 높은 산골 마을 자연 숲에서 재배하는 삼림 커피예요. 나무를 베지 않고 다양한 다른 나무 사이에 커피나무를 심어요. 화학비료 대신 부엽토를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자연 재배합니다. GMO 묘목이 아닌 자체 재배한 묘목을 사용합니다. 다른 유기농 커피나 공정무역 커피보다 더 많은 가격을 주는 이유예요. 나방도 농약이 아닌 자연적인 방법으로 퇴치하고 있어요."

인삼이 논이나 밭에서 인위적으로 기른 것이라면 장뇌삼은 산삼 씨를 산에 심어서 자연 상태에서 키운 삼이다. 장뇌삼 방식으로 커피나무를 키우는 것이다.

그와 직거래를 하는 에콰도르 농민들은 22가구(4개 마을)다. 삼림 커피를 키우는 농민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전통방법으로 커피를 키우는 마을 찾아다녔죠. 에콰도르 전역을 돌아다녔어요. 참 많은 사람을 만났죠. 공정무역을 하는 여러 곳도 찾아갔지만 제가 생각하는 '땅과 자연질서를 지키는 농사법'은 아니더군요.

그러다 한 선교사를 만나게 됐어요. 처음엔 이 선교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독일의 환경단체가 이 마을에 들어가 밑바탕을 만들었다고 해요. 봉사자들이 이 마을에서 삼림 재배 기술을 전수했죠. 지금도 자연 방법으로 나방을 줄이는 방법을 일러줘 수확량을 늘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재배방식이 특히 까다로워서 조금이라도 더 주려고 하는 거죠. 그래야 농부들이 자연질서에 따르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잖아요."

생두값 외에도 운임과 관세 등 원두를 수입하기까지는 만만찮은 비용이 지출된다. 그런데도 국내 판매가격은 일반 다른 커피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두를 로스팅해 판매하는데 200그램당 1만 4000원이다.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3500원에 판매한다. 게다가 텀블러로 커피를 사가는 고객에게는 500원을 할인해 준다.

널찍한 카페에는 질 좋은 삼림 재배 커피에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이 고루 갖춰져 있다.
 널찍한 카페에는 질 좋은 삼림 재배 커피에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이 고루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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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팔아야 하나... 마케팅 홍보 잘 못 해 고민..."


- 일 년에 커피 생두를 얼마나 사나요?
"에콰도르 마을에서 생산하는 커피가 한 해에 약 8톤 정도예요. 생산하는 커피는 모두 사들이고 있어요."

- 판매는 다 되나요?
"제가 마케팅 홍보를 잘 못 해요. 그동안에는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찾아와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올해부터는 판매처를 더 확보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커피 생산에 영향을 주는 나방을 자연 방법으로 획기적으로 줄였거든요. 생두 생산량이 그만큼 늘어난 거죠."

카페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런치(아침 식사와 점심을 대신하여 그 시간 사이에 먹는 식사)를 맛볼 수 있다.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유기농이다. 유전자 조작 재료나 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캐나다에 2년 있으면서 토마토를 다져서 전통 방법으로 스타게티 소스를 만드는 노하우를 배웠어요. 저희 카페에 오시면 맛볼 수 있어요."

카페는 세미나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다양한 모임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그는 또 인근 주민을 중심으로 환경단체 '온 삶'(온전한 삶, 회원 약 350명)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오는 3월부터 이곳에서 환경, 여성 등을 주제로 한 10강짜리 강좌도 준비 중이다.

'온 삶'에서는 천연 비누와 세제, 손수건을 만들어 보급하거나 동지에 팥죽 만들어 먹기, 다 같이 김장하기, 일회용품 안 쓰기 등 일상에서 다음 세대가 살아갈 땅을 의식하며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대전에서 삼림커피를 공급하고 있는 이영애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대전에서 삼림커피를 공급하고 있는 이영애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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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어떻게 생활에 대입할까? 고민..."


- 카페 운영하면서 손해는 안 보나요?
"2인 1조로 4명이 일하는데 제 아들은 무급으로 돕고 있어요. 오시는 손님에게 몸에 좋고 쉴 수 있는 따뜻함을 대접하려고 애쓰는데 그런 마음이 통했나 봐요. 큰 이익도 없지만, 손해도 없어요."

- '지속 가능한 삶'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결혼해서 남편 직장 문제로 일본 홋카이도에서 몇 년 동안 살게 됐어요. 그때 일본인 주부들과 만나 낭비하지 않고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삶을 배우게 됐어요. 제가 기독교인인데 성경 말씀을 어떻게 생활에 대입할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 환경단체(온 삶)를 만든 이유는요?
"일본인들은 친절하지만, 한국인만이 가진 인정은 느낄 수 없었어요. 정은 한국만의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아직도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버리는 삶에 치우쳐 있어요. 정과 함께 친환경적인 삶까지 나누고 싶었어요."

그에게 새해 소망, 아니 이후 삶의 목표를 물었다.

"에콰도르 커피 재배 농민들에게 자연 재배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드리고 싶어요, 저는 90살까지 이 일을 잘했으면 좋겠어요. 주변 시민들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돌이키는 한 해가 됐으면 해요. 올해요? 국내 자영업자들이 함께 움직여서 에콰도르에서 산골 농민들이 자연에서 키운 커피를 공동으로 수입해 소비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커피 콩
 커피 콩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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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카페 내 소모임 방 벽에는 남미 키퓨아 부족의 구전 동화가 적혀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숲에 큰불이 났다. 새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벌새가 산불을 끄기 위해 작은 입에 물을 물어다 불난 곳에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벌새를 보고 덩치가 큰 비둘기, 까마귀 등 다른 동물들은 '그런다고 불을 끌 수 있겠냐'며 비웃었다. 하지만 작은 벌새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불 끄는 일을 계속했다.

이씨의 소망을 들으며 ' 벌새'와 이씨의 얼굴이 자꾸만 클로즈업됐다.

덧붙이는 글 | 1



태그:#벌새, #공정무역 커피, #카페 종, #유기농, #삼림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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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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