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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과 소통 나선 반기문, "청년인턴 확대 필요"
반기문, 청년들 취업난 호소에 "노력하라"

위 내용이 각각 담긴 <파이낸셜뉴스>와 <한겨레>의 기사를 본 건, 지난 14일 저녁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3일 오후 서울 사당동의 한 김치찌개 집에서 청년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여러 의견을 나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김치찌개 음식점에서 대학생·워킹맘·창업자 등 청년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김치찌개 음식점에서 대학생·워킹맘·창업자 등 청년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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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14일 저녁, 취업준비생(아래 취준생)인 나는 역시 취준생인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한 친구가 열을 올리며 내게 기사를 보여줬다. 곧이어 나와 나머지 친구들 또한 그의 분노에 합류했다. 치열한 스펙 경쟁, 좁아져만 가는 취업문, 야근·휴일 근무가 일상인 청년인턴 등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청년인턴 확대' '노력하라'는 발언은 즉각적으로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SNS상에서도 많은 취준생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게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왜 반 전 총장은 위와 같은 발언들을 했을까? 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친구들과 공유한 분노는 위 발언들만을 보고 표출한 감정이었다. 반 전 총장이 청년들과 나눈 대화의 맥락은 사뭇 달랐다.

반기문은 청년취업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우리나라가 9~10% 실업률에, 체감상 20%의 실업률을 느끼고 있다며, 청년 실업문제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채용과정에서 스펙을 중시하는 현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의 발전 가능성을 봐야 하는데 정해진 학벌·경력 이런 것들을 우선으로 보고 그것이 채용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인재를 미리 양성해서 자기들(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개발시켜 채용하는 것은 어떤가"라며 "인성과 능력, 가능성을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2~3년 동안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채용하는 방법을 확대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밝혔다. 청년인턴 확대 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또한 반 전 총장은 자신의 유엔 근무 시절 경험과 가족 이야기를 들며 "겸허한 자세로 자신의 실력을 쌓고 나름대로 노력하겠다고 하면 분명 기회는 온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크게 갖고 현실적 감각을 가지며 조화해 나가라. 차근차근 해나가라"라고 덧붙였다. 위 과정에서 나온 "노력하라"는 말은, 맥락상 취업난 해소, 창업 지원 등을 호소한 청년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청년 취업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해결 의지도 있어 보였다. 반면에, 그가 말한 "청년인턴"과 "노력"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의 조언과 달리 현실적 감각과 조화되지 않은 해결책인 것이다.

현실 속 '청년인턴'과 '노력'

지난해 실업자가 100만 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 사진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
 지난해 실업자가 100만 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 사진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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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취준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 '청년인턴'의 모습은 어떤가? 청년인턴은 청년착취의 대명사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일상이다. 업무를 잘 못한다며 폭언에 시달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성추행을 당한 사례도 나온다.

하지만 월급은 100만 원 남짓, 이마저도 100만 원도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청년유니온 정준영 정책국장에 따르면, 일부 사용자는 아직도 월 30만~40만 원을 지급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112개 패션디자이너 브랜드를 상대로 조사한 '브랜드 고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인턴의 최저임금을 준수한다고 답한 업체가 48%에 그쳤다.

그럼에도 청년들의 인턴 지원은 끊이질 않는다. '바늘구멍'같은 취업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인턴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스펙 경쟁을 비판하며 제안한 '청년인턴'은 사실상 스펙 경쟁의 일종이자, 열정페이라는 착취의 상징이다. 반 전 총장의 '청년인턴' 개념은 현실 속에서 착취, 스펙 경쟁의 확대의 의미를 가진다.

'노력'은 어떤가? 노력은 취업 등의 원하는 결과를 쟁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처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다. 노력 없이 오는 변화는 없다.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지 마라'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격언이다.

하지만 청년 취업 등 현재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이 과연 청년 개인의 노력 부족의 탓이라고 할 수 있나? <한겨레21>과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만 19~34살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년 의식조사'에서 19%의 청년들만이 "열심히 일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청년들의 입에서 나온 반응이다. 이는 역대 최악의 수치인 9.8%의 청년실업률, 좁아져만 가는 취업문, 수저계급론 그리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상황 등에 기인한다.

더 이상 청년 문제, 특히 취업은 청년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꼰대들은 청년들에게 더 노력하라며, 문제를 사회의 탓이 아닌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이를 청년들은 '노오력'이라 부른다. 반 전 총장의 '노력' 개념은 현실 속에서 '노오력'과 다를 바가 없다.

반기문, 먼저 이상과 현실적 감각의 조화를 이루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은 지난 14일 오전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행치마을에 도착해 환영나온 사람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은 지난 14일 오전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행치마을에 도착해 환영나온 사람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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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 총장은 부조리한 스펙 경쟁을 비판하고 청년들을 위로하는 의도에서 '청년인턴'과 '노력'을 말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청년인턴'과 '노력'의 개념은 지극히 이상적인 개념이다. 현실에서 '청년인턴'은 착취의 상징이자, 스펙 경쟁 그 자체이다. '노력'은 청년 문제, 특히 취업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만 돌리는 '노오력'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발언들의 의도는 이상과 달리 현실 속에서는 달리 다가온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한국에서 '청년인턴'과 '노력'이 어떤 의미인지 곱씹지 않았다. 청년들, 취준생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분노했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지만, 반 전 총장은 청년 취업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어 보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가 청년들에게 들려줬던 조언과 달리, 그의 발언은 이상과 현실적 감각이 조화돼 있지 않았다.

정확한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사실상 조기대선이 치러질 것은 분명하다. 본격적인 대선정국에 들어가면, 반 전 총장은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앞으로 제시할 해결책은 그의 말마따나 이상과 현실적 감각이 조화된 방향으로 구성돼 있길 바란다. 그의 의도대로 말이다.


태그:#반기문, #청년인턴, #노력, #현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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