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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15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세 번이나 못 알아들은 말... "경축합니다"

 고려호텔 식당 중앙에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리는 문구가 걸려 있다.
 고려호텔 식당 중앙에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리는 문구가 걸려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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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 가니 문앞에서 직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공손히 인사한다.

"OO합니다."
"네?"
"OO합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경축합니다."
"네? 뭘…?"
"당 창건 70돌을 경축합니다."
"아~, 네, 경축합니다."

세 번이나 못 알아들었다. 당 창건 명절날을 축하한다는 인사다. 대단하다. 북한 동포들에게 당 창건일은 정말 큰 명절인 모양이다. 인사마저 이런 식으로 하다니…. 우리가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고려호텔 식당에서 유럽인 관광객과 함께 아침식사를.
 고려호텔 식당에서 유럽인 관광객과 함께 아침식사를.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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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서니 빈 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한 테이블이 비어 있지만 두 사람이 앉기엔 너무 넓다. 양해를 구하고 옆 테이블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합석했다. 식사는 한식과 양식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다. 남편과 나는 밥과 쑥된장국, 계란프라이, 명태조림, 김치, 두부부침, 부루(상추)샐러드, 도라지 나물 그리고 생오이와 고추장을 담아왔다.

남편과 내가 우리 음식을 먹으며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외국인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어느 나라에 사는 코리안이냐'고 묻는다. 눈치가 상당히 빠르다. 미국서 사는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쉽게 비자를 받았느냐"라고 질문한다.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의 오늘 일정은 퍼레이드(열병식) 구경을 하고 저녁엔 음악회에 가는 것이란다. 대부분 70대로 보이는 유럽 할머니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노후를 즐기는 여행객들이다.

식사를 마친 후 경미를 만나기 위해 로비에 가니 한 기자가 나를 알아보고 명함을 건넨다. 한국말이 하도 유창해 나는 그가 한국에서 온 기자인 줄 착각했다. 명함을 보니 <교도통신>의 일본인 기자다. 나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지난번 서울에서 있었던 '종북몰이' 때문이겠지. 내 명함을 부탁하지만 나는 명함이 없다. 대신 종이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경미를 만나 외신기자들의 모임장소인 양각도 호텔로 향한다.

"미안해, 제임스"

 <로이터>의 제임스 피어슨 기자와 함께.
 <로이터>의 제임스 피어슨 기자와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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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도 호텔 로비에 외신기자들이 모여든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열병식이 열리는 김일성 광장으로 이동한단다. 기자 완장을 찬 한 서양인이 다가와 영국식 발음의 영어로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신은미. <로이터> 통신의 서울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James Pearson) 입니다."
"어머, 제임스, 안녕하세요. 여기서 만나다니…."

나는 제임스 피어슨 기자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와 2014년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북한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북한에서 찍어 온 사진들을 자기 책에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자신은 최근 북한의 변화하는 모습에 많은 관심이 있다면서 내가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 특히 여성들의 패션, 여성들이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 등의 사진들을 책에 수록하고 싶다고 했다. 런던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으며, 북한 유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생활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나는 당신이 어떤 내용의 책을 쓰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사진들의 사용을 허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서방의 기자들이 쓴 책이나 기사들은 대부분 북한에 대해 악마화된 이미지를 부각하며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내 조국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북한의 사진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진 사용을 허락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임스 피어슨 기자는 "충분히 이해한다"라면서 내 사진들과 관련된 부분의 원고를 보내줄 테니 읽어본 뒤 결정할 수 있는지 재고해달라는 답장을 보냈다. 나는 또다시 거절했다. 원고 전체를 읽어보기 전에는 그가 집필하고 있는 책의 의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북한을 악마화하거나 희화화할지도 모르는 책 속에 내 사진들이 수록되는 걸 원치 않았다.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내게는 북한 사회에 대한 학자들의 글이나 기자들의 기사 그리고 한국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겨났다. 특히 한국 기자들의 북한 관련 기사 중에는 소설이나 만화 같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대부분이 그렇다.

그나마 탈북자들의 증언 중 사실에 가까운 것들이 간혹 있지만 방송에 나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 또한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엔을 비롯해 해외에 나가 강연이나 증언을 하는 탈북자들의 발언은 도가 지나치다.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강연 원고를 써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제일 공정하고 정확한 것은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오는 탈북동포들이다. 그들은 방송에 출연하는 탈북자들에게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솔직한 심정을 공개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어쩌면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정하고 균형잡힌' 보도를 한다는 유명한 서방 언론의 기자들 역시 북한에 관한 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서방의 기자는 잔디에서 잡초를 솎아내는 평양시민들의 사진을 찍어 '식량이 없어 풀을 뜯어 먹는 북한인들'이라는 설명을 달기도 한다. 물론 북한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서방의 기자들도 있다. 비록 소수지만. 나중에 제임스 피어슨 기자가 그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그에게 사진을 제공하지 않은 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양각도 호텔 로비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철저한 검색 

우리 외신기자들은 로비에서 호텔 옆문으로 안내됐다. 외부인들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이곳에서 열병식이 열리는 김일성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전 몸 수색 과정을 거친다. 이미 도열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군관(장교)들이 기자들의 몸과 짐을 금속탐지기로 꼼꼼히 수색한다. 뿐만아니라 가방을 열어 내용물도 확인한다. 남편이 먼저 수색을 받는다. 군관이 정중하게 남편에게 묻는다.

"카메라는 없습니까?"

남편이 검열을 마친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이건데요."
"손전화기로 사진을 찍습니까?"
"네, 저는 이걸로 사진을 찍습니다."

군관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미소를 띤 얼굴로 남편을 쳐다본다. 친절하지만 눈초리가 매섭다. 군관은 남편의 휴대전화를 열고 셔터를 눌러본다. 내 차례다. 군관은 내게도 장비에 대해 묻는다. 휴대전화와 '똑딱이 카메라' 2개를 제출하자 이번에도 셔터를 눌러 하나하나 확인을 한다. 200명 정도의 기자들을 이런 식으로 검색하느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드디어 우리는 버스에 올라 김일성 광장으로 향한다. 날씨가 흐리다. 간간이 빗방울이 차창을 스친다. 우산도 없다. 이러다가 본격적으로 비라도 내린다면? 과연 열병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김일성 광장에 거의 다달았다. 차량이 통제된 도로 한복판에 멈춰섰다. 우리는 또다시 검색을 받는다. 이번엔 엑스레이 기기까지 실은 차량까지 마련돼 있다. 모든 소지품과 장비를 엑스레이 기기 안에 넣어 다시 한 번 확인 작업을 거친다. 정말 철저하다. 개미 한 마리 기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마지막 기자의 검색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우리는 줄지어 김일성 광장에 들어섰다.

병영국가의 열병식은 이랬다

 열병식 관람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열병식 관람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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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군의 의장대와 군악대.
 각 군의 의장대와 군악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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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석에는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고, 광장에는 군 의장대가 도열해 서 있다. 그 뒤로 대규모 군악대가 연주를 한다. 붉은 깃발을 든 수십만(?) 명의 군중들이 큰 광장을 메우다 못해 대동강변까지 늘어서 있다. 군악대의 연주소리가 광장을 뒤흔든다.

 기자석에 자리잡은 필자.
 기자석에 자리잡은 필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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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들어선 남편과 나는 이 광경을 바라보고자 기자단을 이탈해 관람석에 올라갔다. 이런 거대한 퍼레이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봐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좌석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관람석 안내원이 다가와 입장권을 보자고 한다. 외신기자라고 말하자 "기자도 관람석에서 취재를 하려면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란다. 하는 수 없이 내려와 기자단에 다시 합류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등장하자 카메라가 주석단을 향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등장하자 카메라가 주석단을 향한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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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최고지도자의 입장을 알리는 팡파레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며 우레와 같은 "만세" 소리가 광장에 메아리친다. 모든 기자들의 카메라가 주석단을 향한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을  2012년 대동강가에서 열렸던 불꽃놀이 관람 때 처음 봤다. 당시 군중들의 '만세' 소리에 지진이 난 줄만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틈 군중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더 많고, 게다가 광장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함성의 메아리가 몇십 배는 더 웅장하다. 인간의 목소리로 만들어 내는 소리가 이렇게 클 수 있다니. 2013년 9월, 같은 장소에서 '로농적위대' 열병식을 관람할 때도 군중들의 "만세" 소리를 들었지만 그때와 비교해 오늘의 함성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군중의 숫자가 오늘이 더 많은가 보다.

 주석단의 김정은 제1위원장(바로 오른쪽에 중국 정치국 위원이 앉아 있다).
 주석단의 김정은 제1위원장(바로 오른쪽에 중국 정치국 위원이 앉아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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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단의 인물들 중 김정은 제1위원장을 제외하고 내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최룡해 한 사람뿐이다. 또 한 사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같아 보이는데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바로 옆에 착석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한 외신기자에게 물으니 중국 정치국 위원이라고 한다. 대답을 해주면서도 마치 '기자가 그것도 모르니?'라고 되묻는 듯한 눈초리다.

주석단을 찍으려고 '똑딱이' 카메라의 줌을 당겨 보지만 흐릿하게 보인다. 미세한 손떨림에도 렌즈는 대상물을 벗어나 허공으로 향한다. 겨우 몇 장 찍었다.

 의전 차량을 뒤따라 항일유격대를 재연한 부대가 등장한다.
 의전 차량을 뒤따라 항일유격대를 재연한 부대가 등장한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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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항일 유격대.
 여성 항일 유격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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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유격대.
 항일 유격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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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식을 거행한다는 선언에 이어 의전용 무개차가 앞장 서고 뒤이어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항일유격대가 등장한다. 열병식 전체를 통해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의 근간을 이루는 항일의 상징이다.

항일. 북한의 모든 건 여기서 출발한다. 건물에 걸려있는 많은 구호들이 "항일의 정신으로…"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전역에 펼쳐있는 유적지들이 항일 빨치산의 흔적들이다.

 6.25 당시 북한군을 재연한 병사들.
 6.25 당시 북한군을 재연한 병사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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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배낭 부대.
 핵배낭 부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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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이어 6.25 당시 군인들을 재연한 부대가 등장한다. 어려서 영화에서 봤던, 둥근 원반같이 생긴 탄창이 총에 달려있다. 이 장면부터 나머지는 항미의 상징이다. 온갖 무기가 등장한다. 핵배낭을 가슴에 품고 행진을 하는 부대, 포병부대, 탱크부대, 각종 미사일…. 외부 언론이 '무수단'이라고 부르는 로켓미사일도 보인다. 수천 km를 날아간다는 그 미사일이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이름이 '화성xx호'라는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로켓미사일은 그 크기가 열차칸 만큼 크다. 미사일을 실은 트럭은 바퀴가 무려 16개나 된다. 트럭이 지나가며 도로를 울린다. 앞서 지나간 '무수단'보다 길이도 더 길고 직경도 훨씬 더 크다. 내가 사는 미국에 다다를 수 있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한다. 

 대형 조선노동당 당기를 펼쳐들고 행진을 하는 여성들.
 대형 조선노동당 당기를 펼쳐들고 행진을 하는 여성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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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식은 북한의 역사를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한 눈에 보여준다. 그들 역사의 골자를 이루는 열쇳말은 '항일'과 '항미'다. 열병식의 마지막 행렬까지 모두 지나간 뒤 주석단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관람객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이 군사 퍼레이드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열병식이 끝나고 관람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김정은 제1위원장.
 열병식이 끝나고 관람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김정은 제1위원장.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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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전쟁을 증오하는 내게 열병식의 잔영들은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남쪽도 이에 상응하는 군사력이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화력을 보유한 미군이 남한에 주둔한다. 남과 북의 이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러운 무기들이 우리 민족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이건 아니다. 정말 이건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온 민족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평행선을 달리는 남과 북  

 열병식이 끝나고 횃불 행진 취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외신 기자단.
 열병식이 끝나고 횃불 행진 취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외신 기자단.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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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칼칼하다. 열병식에 등장하는 탱크와 차량에서 나오는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특히 장갑차와 탱크가 지나갈 때는 도로가 흔들리고 머플러에서는 뿌연 연기를 내뿜는다. 텅 빈 광장에는 아직도 휘발유 냄새가 어른거린다.

배도 고파온다. 그런데 광장을 떠날 수가 없다. 곧 이어 학생들의 횃불행진이 거행될 예정인데 기자단은 광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단다. 다른 기자들을 보니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고 있다. 준비성이 대단하다.

 비 내리는 김일성 광장.
 비 내리는 김일성 광장.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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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없어 큰일이다. 다른 기자들은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 입기 시작한다. 역시 프로들이다. '아마추어' 기자인 나는 김일성 광장 한복판에서 춥고, 배고프고, 비마저 쫄딱 맞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서 있다. 

횃불행진이 지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는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관공서로 보이는 한 건물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현관 앞을 지붕이 가려줘 그 아래서 비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엄습해 오는 추위는 막을 도리가 없다. 입술이 덜덜 떨린다.

 필자 뒤로 횃불행진을 관람온 군인들이 보인다.
 필자 뒤로 횃불행진을 관람온 군인들이 보인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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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가늘어 지자 횃불행진이 시작되려 한다. 관람석을 보니 모두 군인들이다. 열병식 때는 민간인들이었는데…. 비가 내리는 와중에 어느 하나 피하는 군인이 없다. 단지 좌석이 빗물에 젖어서인지 모두 서 있을 뿐이다.

 횃불행진을 하는 학생들.
 횃불행진을 하는 학생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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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의 격려사가 있은 뒤 학생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한다. 구호를 외치지만 너무 소리가 커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본다.

"김일성, 김정일 주의 만세~! 김일성, 김정일 주의 만세~!"

대형을 바꿔가며 행진하는 걸 보니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 같다. 역시 관람석에서 봐야 대열이 무슨 형상을 만드는지 알 수가 있겠다 싶다. 아니면 전문기자들처럼 높은 사다리 같은 곳 위에다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보던가.

비가 본격적으로 내린다. 그래도 행진은 계속된다. 외신기자들은 카메라를 부여잡고서 취재에 열중이지만 '어설픈' 기자인 남편과 나는 취재를 접고 다시 비를 피해 건물로 몸을 피한다. 물끄러미 행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평행선을 달리는 남과 북. 언제까지…? 누가, 언제, 어떻게 이 직선의 방향을 움직일 것인가? 어느 한 선이라도 조금만 각도를 바꾸면 이 두 선은 언젠가 접점에 다다를텐데….'

우리는 그 접점을 향해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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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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