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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맘충'이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까마귀 엄마'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파파충'이 없듯 그곳에도 '까마귀 아빠'는 없다. 엄마들에게만 모성성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문
엄마에게만 강요하는 모성성, 나라 구별이 없더라

우리나라에 '맘충'이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까마귀 엄마'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파파충'이 없듯 그곳에도 '까마귀 아빠'는 없다. 엄마들에게만 모성성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문화는 국경을 건너서도 일치한다. 이런걸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걸까.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의 책 <엄마됨을 후회함>은 엄마를 향한 수 많은 억압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 문제를 다룬다. "여성이 엄마 됨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오나 도나스, <엄마됨을 후회함>
 오나 도나스, <엄마됨을 후회함>
ⓒ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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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처럼, 책에서 인터뷰하는 여성들 중 상당수는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 혹자는 이들의 후회에 대해 당장 돌을 던질 것이다. 누가 아기를 낳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낳아놓고서는 저런 말을 한다, 아동 학대다, 책임 방기다, 어떻게 엄마가 저런 말을...

엄마 됨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 그녀는 아동 폭력 가해자가 된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엄마 됨을 후회하는 여자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후회와 아이에 대한 사랑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여성들은 엄마로서의 삶을 후회하는 것이지 아이 그 자체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뚜렷하게 구분짓는다. (..) 이 소망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아니다."(109쪽)

그녀들이 후회하는 '엄마 됨'은 단순히 아기와 엄마의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다. '엄마 됨'이란 훨씬 더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그 전반의 과정에서 엄마가 된 여자의 내면부터 육체까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예컨대 피로에 지치고 찌든 엄마, 그래서 아이가 대충 빨리 자기를 바라는 엄마는 제대로 된 엄마가 아니다. 돌 이전의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장에 복직하는 엄마는 모성성이 부족한 것이다.

경제적 압박에 의해 강제로 복직을 했든, 그렇지 않든 개개인의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퇴근한 엄마는 피곤해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아기를 돌보아야 하고, 직장에 있는 동안은 아기에 대한 심리적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17개월 아기와 동거하는 나만 해도, 면접장에 들어섰을 때 '엄마 됨'을 강요하는 말들에 시달렸다. '애도 있는데 왜 굳이 일하려고 하느냐'라거나 '돌쟁이 두고 복직하는게 미안하지도 않냐' 등의 발화가 면접장에서 내게 쏟아졌다.

이후 취직한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하는 엄마를 만나면 사람들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그녀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소환하여 아이에 대한 책무들을 일일이 지적한다. 단지 함께 일하는 동료일 뿐인데도, '엄마'라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상황들을 감내해야 한다.

엄마가 되면 사람들은 일과 경력에 대한 욕망을 접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엄마가 된다는 것. 이 말은 단지 내가 24시간 내내 돌보아야 하는 아기가 생긴다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임신 기간 동안 야근을 감수하며 아기를 품을 수 있는가, 아기를 낳은 뒤 내 일상을 모조리 포기한 채 육아에 매달릴 수 있는가, 일과 커리어에 대한 욕망을 접을 수 있는가.

나는 미처 몰라 동의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엄마 됨'으로써 내가 이 모든 요구들에 동의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 모든 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게만 요구되는 목록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엄마 됨을 후회한다'는 발언은 매우 선언적이다. 그건 단지 후회를 넘어서서, 사회가 강제로 씌우는 엄마라는 굴레들을 '거절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회적 운동에 가깝다.

아직 엄마가 되지 않은 여성들을 향해 '엄마 됨'을 재고하도록 하고, '엄마'에 덧입혀져 있는 신성성을 벗겨 낸다. '엄마 됨을 후회한다'는 말은 모든 여성이 아기를 낳진 않아도 되며, 따라서 모든 여자들이 엄마가 되지는 않아도 된다는 수행적인 발화인 것이다.

"나는 이미 상관이 없지만요. 나는 이미 아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 딸들에게는 선택권이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은 아이를 낳으면 남자와 달리 수많은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아기를 갖겠다고 결정할 때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요."(140쪽)

나는 "엄마 된 걸 후회한다"고 말하는 여자들을 지지한다.(나 역시 후회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늘 내 딸에게 조근조근 속삭인다. '꼭 결혼하지 않아도 돼, 아이도 낳지 않아도 돼.' 여성은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될 필요는 없다. 저출산 때문에 나라가 망할까 걱정 마라. 진짜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뭘 해도 망할 나라였다.


엄마됨을 후회함 - 모성애 논란과 출산 결정권에 대한 논쟁의 문을 열다

오나 도나스 지음, 송소민 옮김, 반니(2016)


태그:#엄마됨을 후회함, #가임기 여성 지도, #페미니즘, #맘충, #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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