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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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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과 14일 단양에 꽤 많은 눈이 내리고 날씨가 차서 눈이 쌓이니 제법 겨울 분위기가 난다. 그동안 겨울이 되어도 기온이 영상인데다 눈이 아닌 비가 쥐꼬리만큼 내렸다. 겨울가뭄이 들어 농사꾼들 속이 바싹바싹 타들가던 차니 보기도 좋고 마음도 편해지는 반가운 눈이다.

눈구경 하며 아들 녀석과 단양읍내 목욕탕에 나갔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변변한 목욕탕이 없고 값도 비싸다. 단양에 살면서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아름다운 산과 계곡, 강으로 둘러쌓인 자연경관은 기본이고 인공시설로는 도서관과 수영장 그리고 목욕탕이 좋다.

단양 대명리조트 안에 시설 좋은 목욕탕과 사우나가 있는데 단양주민 할인이 돼 5000원이다. 최고급 목욕탕엔 건식, 습식 사우나에 온탕, 한방열탕, 아로니아열탕이 있다. 아로니아냉탕과 피톤치드냉탕도 있다. 80여일 째 고생하고 있는 피부염증이 좀 아물어서 목욕탕에 나가 보기로 했다.

도시 사람들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단양 대명리조트에 온다. 난 아들 녀석과 겨울이면 낡고 털털거리는 도라꾸 몰고 20분 이면 리조트 간다. 리조트 드넓은 주차장에 늘어선 고급 승용차들 사이에 도라꾸 주차할 때 느끼는 묘한 쾌감이라니!

해마다 농사철이 끝나고 겨울 농한기가 오면 큰 돈 들이지 않고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하고 리조트 휴가 온 기분을 한껏 낸다. 피부질환 때문에 올 겨울 첫 목욕 이벤트라 꼬질꼬질한 아들 한결이를 싹싹 씻기고 리조트 안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값비싼 메뉴가 많지만 메뉴판 볼 것도 없이 우리 주문은 들 똑같다. 가장 값싸고 양 많은 돈까스.

목욕 마치자마자 아이스크림으로 입맛 다시고 좋아하는 크림 스프에 특제 돈까스까지. 맛난 거도 먹여주니 아들 녀석 기분 '째진다'. 제법 양이 많은 특제 돈까스를 아비는 한 입도 안주고 몽땅 먹어 치운다. 지난해에는 반 정도 먹더니 먹성이 엄청 좋아졌다. 가만보니 키도 그새 훌쩍 크고 몸피도 커졌음을 알겠다. 부모 마음이야 새끼 입에 밥 들어갈 때 가장 행복하단 말이 참으로 맞다(아이에게 불량식품 먹인다고 탓하지 마시라. 때론 약간의 일탈도 약이 되는 법이니).

아, 이 녀석이 오늘 날 잡았는지 실컷 먹고는 레스토랑 옆 카페에서 레몬에이드까지 한 잔 드셔야겠단다. 간만에 아비 노릇 맘껏 해보자고 '오케이' 했다. 목욕하고 한결이 점심 대접 하고 나니 1만 원짜리 석장이 날아갔다. 가난한 농사꾼에게는 과한 씀씀이지만 작은 사치를 부려 아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사람들이 살면서 무슨 큰 호사를 바랄까? 박정희와 박근혜, 최순실과 정유라, 이건희와 이재용이야 억만금의 부정한 재산을 쌓아놓고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모르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우리네 평범한 민초들이야 정직하게 일한 댓가로 얻은 작은 소득으로 가족과 이웃, 동료들과 알콩달콩, 화기애애 사는 소박한 욕심 외에 무엇을 더 바라나?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내가 나고자란 제천 단양 이웃인 충북 음성이 배출한 반기문을 보면서 인생과 삶에 대해 반추한다. 지난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이란 자리에서 비판과 조롱을 받았던 그가 직을 마치자마자 귀국해 대통령을 하겠단다. 그러더니 서민 흉내를 내면서 지하철에서 '2만원 신공'을 펼치면서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아들 녀석과 목욕하고 밥 먹고 다시 하얀 연기 내뿜으며 털털거리는 도라꾸 끌고 리조트를 떠나 눈쌓인 남한강변 시골길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째진 아이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쫑알쫑알 거렸다. 트럭 소음과 열 살 아이의 흥겨운 재잘거림, 머리에 맴도는 70대 '정치인'이 남긴 잔상이 불협화음이 됐다. 눈부신 겨울 남한강 경치를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소란한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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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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