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열병으로 쓰러졌던 내 주변으로 몰려든 인도 아이들
 열병으로 쓰러졌던 내 주변으로 몰려든 인도 아이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어느 가족이 쓰러져 있는 나를 지키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현기증이 아찔하게 몰려왔다. 남아 있는 생수를 머리에 들이붓고 정신을 챙겼다. 검은 뿔테 안경의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당신 아주 위험했어요. 여권은 그대로 있나요?"

배낭은 머리맡에 있었고 어께에 걸쳐 메고 다녔던 낡은 천가방 안의 내용물, 여권과 지갑도 그대로 있었다.

"이 가족들이 쓰러져 있는 당신을 지켜 줬어요."

내 얼굴에 물을 부어 주었던 젊은 여인과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나마스테' 인사와 함께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라자스탄에서 왔다는 이들 가족들은 내게 '어디가 아프냐' '이제 괜찮냐'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려 하느냐'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이들 가족이 '어디로 가려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힘겹게 웃으며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그 대답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뿔테 안경의 사내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까?"
"나는 본래 가야로 가려 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야는 왜 가려 합니까."
"고타마 붓다께서 수행했던 곳, 둥게스와리에 가려 했습니다. 둥게스리와리가 가야 부근에 있다고 해서요."

"아, 그렇군요. 나는 쿠시나가르에 살고 있습니다."
"쿠시나가르는 고타마 붓다께서 열반한 곳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당신은 그 몸으로 가야로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쿠시나가르에서 머물다 가는 게 좋겠군요."
"쿠시나가르는 여기서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나는 뿔테 안경의 사내를 따라 무작정 쿠시나가르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내일 출발한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다시 막막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곧추세워 배낭을 메는 순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루 종일 미숫가루 한 잔으로 배를 채우고 열병에 시달렸기에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더위를 잔뜩 먹은 상태라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억지로라도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 끝에 배낭 속 과자를 꺼내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몇 개의 과자였지만 그나마 생기가 돌았고 허기가 몰려왔다.

겨우 배낭을 짊어졌다. 쿠시나가르로 갈까 싶었는데 조금 전 뿔테 안경의 사내가 했던 말이 앞을 떡하니 막았다. 쿠시나가르는 이곳 고락푸르보다 더 덥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버스 주차장 주변 식당으로 들어섰다.

버스 터미널로 다시 돌아왔다, 더 이상 이동할 힘이 없다

싯다르타의 고행 길을 따라 나서는 것은 무리였다. 싯다르타의 고행 길은 나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를 먹어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한다는 욕구를 감지하면서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덥지근한 선풍기 바람이 맥없이 돌아가는 식당에서 인도의 전통요리, 달을 씻지 않은 손으로 우적우적 먹어 치우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처럼 다가오는 더위 속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인도 델리에 도착해 맨 처음 발길을 옮겼던 다람살라에서 몸을 다스리기로 작정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다람살라로 가려면 먼저 델리로 가야 한다.

오토 릭샤를 타고 식당 주인이 알려준 델리 가는 버스가 즐비하다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토릭샤 기사는 고락푸르 열차 역 부근에 내려줬다. 처음에 왔던 곳으로 되돌아 온 셈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투어리스, 여행자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낡은 버스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로컬 버스로 보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상상하면서 델리로 가는 투어리스 버스를 운행한다는 호텔을 찾아갔다.

호텔 로비에서 물어보니 방금 전에 들렸던 버스 터미널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더 이상 이동할 힘이 없다. 투어리스 버스인지 로컬버스인지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델리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시트가 열에 달궈져 있고 10분도 채 안 돼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배낭을 챙겨 나와 매표소에 물어보니 1시간 정도 더 있어야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버스 터미널에는 그나마 그늘막이 있었다. 거기다가 선선한 바람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적당히 앉을 자리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 헝클어진 긴 머리에 수염을 길게 기른 사내의 옆자리가 비워져 있다. 걸인이나 다름없는 형색의 사내였기에 그 옆자리에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았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남루한 겉모습과는 달리 사내의 눈이 맑아 보였다. 사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손짓을 했다.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 한다. 사내의 손짓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부드러웠다. 순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장작 쌓는 일을 하던 노인의 손길이 떠올랐다.

사내의 손짓은 내게 그늘진 자리를 양보했던 그 노인의 부드럽고 인자했던 손짓과 닮아 있었다. 나는 사내의 그 부드러운 손길에 이끌리듯 납덩이처럼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비스듬히 누워 있던 사내는 내가 넉넉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몸을 틀어준다.

뭔가 말을 걸고 싶었지만 사내는 더 이상 내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나는 사내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슬금슬금 곁눈질을 한다. 사내는 어느새 눈을 감고 있다. 잠시 후 팝콘을 파는 사내가, 우리가 앉아 있는 긴 의자 앞 맨 바닥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나도 눕고 싶다. 하지만 나는 눕지 못한다. 윗옷 한 귀퉁이가 찢겨져 너널거리는 나의 남루한 차림새는 저들과 다를 바 없다.

이놈의 배낭만 없으면 저들처럼 아무렇게나 퍼질렀을 것이다. 내게는 이 것 저 것 챙길 것이 너무 많았다. 옆에 비스듬히 누워 졸고 있는 사내의 짐은 언제 어디서든 밤이 되면 깔고 누울 수 있는 다 낡아 떨어진 담요 하나가 전부처럼 보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내처럼 비스듬히 몸을 눕힌다. 몸을 눕히다가 사내의 몸에 닿았다. 사내가 슬그머니 눈을 치켜든다. 내가 죄송하다는 표시로 합장을 하자 사내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데바(Deva인도에서 신(神)을 의미하는 말)께서 당신을 지켜 줄 것이오."

영화 속 거지성자처럼 말 한마디 툭 던져 놓고 사내는 다시 눈을 감는다. 자신의 말뜻을 깊이 새겨 보라는 것이었다. 사내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다. 사내는 수행자가 분명했다. 사내 말대로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조금 전 공원에서 열병으로 쓰려졌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가. 순간적으로나마 내게 두려움을 내려놓게 했던 사내는 시공을 초월한 고타마 붓다 시대의 비구(比丘)처럼 다가왔다.

2천6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몸은 다를 바 없는데...

비구는 불교에서 구족계(具足戒)인 250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남자 승려를 말한다. 범어로는 비크슈(bhiksu)이며, 팔리어 비쿠(bhikkhu)의 발음에 따라 비구라 하였다고 한다. 팔리어(語) 비쿠(bhikkhu)는 음식을 빌어먹는 걸사(乞士), 이 집 저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 가며 수행하는 탁발승이다.

불교 최초의 비구는 고타마 붓다가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고 사르나트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로 설법을 했을 때의 그 다섯 제자들이다. 당시 비구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중에 하나가 사유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또한 비구들은 세속사람을 속이거나 자기의 공덕을 말하지 말며 점술을 배워 사람의 길흉을 말하거나 호언장담으로 위세를 떠는 등의 삿된 생활을 금지했다.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2천6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살과 뼈, 몸과 마음은 다를 바 없는데 현재의 삿된 비구들은 부처님 시대의 비구들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중생들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지만 그 중생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안락함과 부를 누려가며 세 치 혀끝을 앞세워 탐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않던가.

거지들은 자신들이 얻어먹고 사는 거지임을 알고 있지만 비구들은 중생의 피와 땀으로 일군 것들을 얻어먹고 살아가는 거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고타마 붓다가 왕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걸인처럼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중생 앞에 권위를 내세워가며 왕자 행세를 하려는 삿된 비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고락푸르에서 델리 가는 낡은 버스.
 고락푸르에서 델리 가는 낡은 버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다. 배낭을 챙겨 일어서면서 걸인 수행자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꼼짝 않는다. 졸고 있는 것인지 명상에 잠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있다.

버스 안은 찜통이다. 잠깐 사이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이런 상태로 18시간 넘게 후덥지근한 선풍기 바람이 픽픽 돌아가는 버스에 의지해야 한다. 오후 네 시. 시간 맞춰 버스가 출발했다. 도중에 몇 군데의 휴게소에 멈춰서 저녁을 먹고 버스는 다시 밤길을 달린다.

휴게소에서 튀긴 식빵에 계란을 입힌 샌드위치를 먹고 눈을 붙였다. 그렇게 서너 시간 쯤 눈을 붙이고 떠보니 어느새 사위가 희끄무레한 새벽녘이다. 차창 너머로 사람들이 하나둘 새벽잠을 털어내는 모습이 보인다.

저만치 낡은 건물 옥상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잠들어 있고 넉넉한 공원 나무 그늘 여기저기에서도 한데 잠을 자는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더위를 피해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로 보인다.

여명이 밝아 오는 이른 아침, 예닐곱 살 쯤 돼 보이는 한 여자 아이가 집 앞에서 작은 물병을 들고 뭔가에 부지런히 물을 주고 있다. 메마른 땅에 뭔가를 심어 놓고 아침마다 물을 주는 모양이다. 나는 스쳐 지나는 차창에 고개를 빼들고 아이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아이는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그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가 저 만치로 물러서고 그 사이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차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은 고락푸르 버스 터미널에서 "걱정 마시오, 신께서 당신을 지켜 줄 것이오"라고 내게 말했던 거지 수행자를 떠올리게 했다. 거지 수행자가 말했던 신은 따로 없었다. 신은 도처에 있었다.

신은 열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내게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었고 메마른 땅에 심어 놓은 작은 생명체에 생명수를 내주고 있었던 어린 아이의 손길이었다. 또한 신은 열병으로 쓰러져 있던 나를 돌봐준 인도 여인의 손길과 아이들의 환한 미소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메마른 땅에 심어진 작은 생명체나 다름없었다.



태그:#인도고락푸르, #거지수행자, #붓다, #비구, #탐욕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