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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검증 '거짓'
 사실검증 '거짓'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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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에 이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현충원 찾은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에 이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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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뉴욕타임스 사설에도 나고 했는데 그때까지 유엔에 사형제에 대한 입장이 없었다. 사담 후세인은 인류의 죄를 지었다고 하면 그 나라에서 사형을 시키는 건 그 나라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되게 야단을 맞았는데 2007년 7월에 결정을 했다. 사형제를 완전히 없애라는 말을 못하죠. 모라토리엄(유예)을 권장했다. 유예를 시켰다. 그래서 한국도 유예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2일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조선일보> 등과 한 인터뷰에서 한 답변이다. 자신을 '진보적인 보수주의자'로 정의한 반 전 총장은 그 의미를 되묻는 기자들에게 유엔 사무총장 재임 당시 사실상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는 결의안을 처리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당시 유엔의 결정 덕에 한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유예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반 전 총장이 재임 당시 '사형 폐지를 위한 글로벌 모라토리엄 결의안'을 유엔 총회에 상정시켜 처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형제에 대한 유엔의 입장이 그전까지 없었다던가, 한국이 그 때문에 사형 집행을 유예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치적'을 강조하기 위한 비약에 가깝다.

2007년 전에 사형제 대한 유엔 입장 없었다? 1977년에 이미...

유엔은 1977년 총회 당시 "전 세계의 사형제도 폐지가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확인하는 결의안(resolution 31/61 of 8 December 1977)을 채택한 바 있다. 사진은 유엔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 해당 결의안 내용 일부
 유엔은 1977년 총회 당시 "전 세계의 사형제도 폐지가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확인하는 결의안(resolution 31/61 of 8 December 1977)을 채택한 바 있다. 사진은 유엔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 해당 결의안 내용 일부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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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엔은 1977년 총회 당시 "전 세계의 사형제도 폐지가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확인하는 결의안(resolution 31/61 of 8 December 1977)을 통과시킨 바 있다. 심지어 그보다 6년 전인 1971년 총회에서도 사형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에게 사형수의 사면, 혹은 집행유예를 요청하는 결의안( A/PV.2027 20 Dec. 1971 59-1-54)을 내놓았다.

1989년 12월에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 선택의정서(Second Optional Protocol to the ICCPR, aiming at the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를 채택했다. '전시 상황'에서 벌어진 '극히 중대한 범죄'를 제외하고 사형 폐지를 요구하는 이 의정서는 1991년 7월 발효됐다. 한국은 이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현재 당사국 84개국, 서명국 37개국이 이에 해당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7년부터 매년 유엔 회원국들에게 사형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반 전 총장이 강조했던 2007년 유엔 총회의 '사형 폐지를 위한 글로벌 모라토리엄 결의안(이하 모라토리엄 결의안)' 채택은 이러한 역사 속에서 숙성돼 나올 수 있었던 결정인 셈이다.

198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 집행 안 했는데. 유엔 결의안 덕분?

2007년 '모라토리엄 결의안' 채택 당시, 한국의 선택은 '기권'이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한국이 이 결의안 탓에 사형집행을 유예하고 있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이미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 김영삼 정부 당시 사형수 23명에 대해 형을 집행한 것을 끝으로 사형 집행을 유예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4월 전원위원회 결정으로 사형제 폐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즉, '모라토리엄 결의안'이 채택되기 전에도 한국은 수년 동안 '사형 집행 유예'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국제 엠네스티는 2007년 12월 30일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물론,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는 지위를 상실할 위기가 있긴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사형제 존치론을 주장했다. 그는 당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사형제는 범죄 예방이라는 국가적 의무를 감안할 때 유지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2008년 1월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인사건으로 흉악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법무부에서 '사형 대상 범죄를 축소하며 지난 10년간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수들의 사형 집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2009년 2월 법무부 등과의 당정 협의에서 사형 집행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을 멈춰세운 것은 오직 유엔의 결의안만의 '공'이 아니었다. 법무부는 2008년 EU(유럽연합)과 범죄인 인도와 사법공조 협약을 맺으면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이미 제출한 바 있었다. 또 EU가 사형집행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거부하고 있는 등 국제외교적 상황이 한국의 사형집행 유예를 '강제'하고 있었다.

꾸준히 이어졌던 국내의 사형제 폐지 요구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였다. 종교계·인권단체 등 시민사회에서는 2000년 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을 결성하는 등 사형제 폐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국제사면위원회(AI)가 2005년 12월 "한국지부의 요청에 따라 2006년을 한국 사형제도 폐지 캠페인의 해로 결정"했던 것이 대표적 결과물이었다. AI가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인 10월 10일에 맞춰 일시적으로 특정 국가의 사형제 폐지를 요구한 적 있지만 1년 내내 한 국가를 상대로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은 1961년 AI의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15대 국회 때인 1999년을 시작으로 16대, 17대, 18대, 19대 국회 등 연달아 사형폐지특별법을 발의했다. 비록 모두 무산됐지만 정치권에서도 사형폐지를 위해 계속 노력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선기획취재팀 :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분석) 고정미(아트디렉터)


태그:#반기문, #유엔, #사형제도 폐지, #사형집행 유예,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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