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오후 1시 미국 뉴욕 JFK공항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반 전 총장은 공항에서 한국 언론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뒤 유순택 여사 등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오후 1시 미국 뉴욕 JFK공항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반 전 총장은 공항에서 한국 언론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뒤 유순택 여사 등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옥문이 열리겠구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자택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지하철로 통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출퇴근길 지하철이 얼마나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드는지. 앞뒤양옆 할 것 없이 낯선 이와 서로 불편한 기색을 감춘 채 밀착해야 하고 인파에 떠밀려 차량에 올라타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운 나쁘면 목적지를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이 이용할 노선은 공항철도와 지하철 4호선이었다. 서울과 인천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는 공항철도는 중간 중간 상암동(디지털미디어시티역), 홍익대(홍대입구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정거장들이 있는 노선이다. 서울역과 사당역을 연결하는 지하철 4호선 역시 붐비기로는 만만찮다. 당장 반 전 총장부터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인파에 끼인 채 1시간여를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취재보다 그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도 이도운 대변인은 11일 오전 브리핑에서 "반 전 총장이 돌아오면 국민 여러분께 인사하는 시간을 갖고 승용차편으로 사당동 자택에 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입국일이 되자 일정은 달라졌다.

"귀국 후 곧바로 시민 만나겠다"... '지옥철'에서?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지하철에 탑승한 반기문 UN 사무총장.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지하철에 탑승한 반기문 UN 사무총장.
ⓒ UN

관련사진보기


12일 오전 11시 52분, 반 전 총장 측은 기자들에게 "반 전 총장이 일정을 바꿔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까지 이동한 뒤 서울역에서 승용차편으로 자택에 간다"고 공지했다. 또 "실무준비팀에서는 공항과 고속철도 등에서 시민들의 불편을 겪을까 우려해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준비했으나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곧바로 시민들과 만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는 취지에서 일정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 본인의 뜻이란 얘기였다.

시민들에게 다가가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꼭 정신없는 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까? 오후 4시 현재 반 전 총장이 들어올 인천공항 E게이트는 이미 취재진과 환영인파로 인산인해다. 언론사끼리 협의해 일부 기자들만 반 전 총장과 함께 공항철도를 탄다고 해도 인원은 적지 않다. 반 전 총장 부부와 경호원, 수행비서 등만 해도 10명 안팎이다.

반 전 총장 쪽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반 전 총장의 한 참모는 12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저는 처음부터 반대했다"며 "공항철도 이용하는 분들한테 많은 불편을 끼쳐드리고 누가 되면, 오히려 의도한 효과를 못내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날부터 국민들 가까이서 (이야기를) 듣겠다는 건데, 기자들하고 (반 전 총장) 일행만 있으면..."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이제는 바꾸기 어렵다"면서도 여전히 걱정이 많은 눈치였다.

정치인도 아닌데, 귀국 첫날부터 '민생' 아닌 '민폐'

이도운 대변인은 전날 "(반 전 총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당분간 민생 행보에 집중한다고 했다(관련 기사 : 반기문측 "동생 기소에 굉장히 놀랐다, 모르는 일이라"). 그러나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든 일을 '민생 행보'란 이름으로 치장하긴 어렵다.

이미 우리는 많이 목격했다. 선거 때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어묵을 사먹고, 쪽방을 방문해 취약계층의 손을 잡지만 정작 아무 변화도 가져 오지 않는 정치인들 말이다. 결국엔 '쇼'로 비판받을 수 있는 일을 "정치인이 아닌(11일 이도운 대변인)" 반 전 총장은 왜 강행할까. 수많은 민폐에 하나 더하고 싶은 것은 아닐 텐데...

1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9~11일 전국 유권자 1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1.2% 포인트 떨어져 20.3%를 기록했다. 그때그때 숫자가 다르긴 하지만 그의 주요 지지층은 여전히 60대 이상(37.4%)이고, 두 번째는 50대(27.1%)다(이번 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오늘도 '지옥철'을 이용해 바쁘게 다니고 있을 20대(10.4%)와 30대(9.9%), 40대(11.8%)의 마음은 아직 싸늘하다.

몇 시간 뒤, 반 전 총장은 공항철도에서 그들과 만나 웃을 수 있을까?


태그:#반기문, #공항철도, #사당, #서울역, #대선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