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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4번째 공통점은 '한류'의 원조였다는 점이다. 간송은 28살 나이에 국보135호가 된 <혜원화첩>을 손에 넣었다. 간송은 1934년 가을에 우연히 흑반도판으로 찍은
 이번 전시기획에 참여한 왼쪽부터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 '이진명' 간송미술문화재단 수석큐레이터,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김지희'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이진명 큐레이터는 두 거장의 관심사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주제였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기획에 참여한 왼쪽부터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 '이진명' 간송미술문화재단 수석큐레이터,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김지희'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이진명 큐레이터는 두 거장의 관심사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주제였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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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과 백남준의 만남_문화가 세상을 바꾸다'전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2월 5일(일)까지 열린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의 공동기획이다. 간송 소장품 중 최고의 수작과 백남준 작품을 합쳐 28점을 선보인다. 백남준의 작품은 그의 융합미학 때문인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작품과도 잘 어울린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측은 이번에 소장품 중 호방한 달마도로 유명한 조선중기의 대가 '김명국' 작품과 조선 남종화의 대가 '심사정' 작품, 그리고 기이하고 독특한 품행으로 조선 후기 호생관이었던 '최북' 작품과 조선말 천재적 화원이었던 '장승업' 작품을 출품했다.

반면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이번 전시를 위해 백남준의 50년대 '플럭서스' 자료부터 60년대 대표적 퍼포먼스 '머리를 위한 선' 그리고 70년대 'TV부처'와 'TV첼로', 80년대 굿모닝 미스터오웰' 등 '위성아트' 3편과 '비디오 샹들리에', 'TV시계' 그리고 90년대 '코끼리 마차'와 '달에 사는 토끼', 2000년 '호랑이는 살아있다' 등을 내놓았다.

간송과 백남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두 거장의 공통점 10가지를 끌어내어 이번 전시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두 사람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이 1928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방학을 맞아 찍은 사진. 가족소장. 전시홍보용 사진으로 재구성하다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이 1928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방학을 맞아 찍은 사진. 가족소장. 전시홍보용 사진으로 재구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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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첫 번째 공통점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점이다. 간송은 대부호 '전영기'의 차남으로 1906년 7월 29일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 전씨 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종로구 창신동 197번지 거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둘 다 7월생이다. 두 사람은 또한 한복이 잘 어울릴 정도로 한국적 선비의 풍모도 풍긴다.

부잣집 아들은 대개 가업을 잇는 게 상식이나 둘은 다른 길을 걸었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문화애호가의 길,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각각 그 역할은 달랐다. 한 사람은 일제 강점기, 우리민족의 혼이 담기 문화재로 나라를 지킨 대수장가가 되었고, 또 한 사람은 분단시기에 해외에 나가 과학과 예술을 융합한 글로벌 아티스트가 되었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우리 자존심을 잃지 않으면서 일본을 어떻게 굴복시킬까 궁리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최선의 방법은 바로 우리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다행히 그는 그걸 이룰 경제력을 갖췄기에 민족문화를 지키는 수호신이 될 수 있었다.

우리문화에 대한 큰 자부심

 백남준이 1959년 뒤셀도르프에서 연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때 찍은 흑백사진(20.3×25.4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백남준은 전시장에서 서구인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를 보라는 듯 쓰러뜨려놓고도 천연덕스럽게 서 있다. 여기서 그의 배포를 엿볼 수 있다. 이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도 참석했다
 백남준이 1959년 뒤셀도르프에서 연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때 찍은 흑백사진(20.3×25.4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백남준은 전시장에서 서구인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를 보라는 듯 쓰러뜨려놓고도 천연덕스럽게 서 있다. 여기서 그의 배포를 엿볼 수 있다. 이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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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두 번째 공통점은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이 컸다는 점이다.

<간송전형필(이충렬 저)>에 보면 간송은 1935년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을 구입한다. 그 후에도 청자에 몰두해 마침 청자만 수집하는 영국인 '개스비'와 인연을 맺는다. 그와 청자상감, 청자원숭이 등 20여점을 거래하면서 '기와집 400채 값'으로 승부를 건다. 그가 부자라고는 하나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이런 거래는 불가능하다.

한편 백남준은 서른 살에 "유럽을 쓸어버릴 '황색재앙'은 바로 나다"라고 선언한 것을 보면 배포가 보통 센 게 아니다. 그는 그 나이에 세계의 문화칭기즈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보다 더 큰 자존심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한국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말로만 큰소리친 게 아니다. 백남준은 이런 말을 선포한 지 30년 후인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해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미술의 최정상 자리에 등극한다. 두 사람은 이렇게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세우고 그걸 지켜냈다. 물론 그것을 성취하는 방식은 무력이 아니라 문화라는 평화적 방식이었다.

백남준은 또한 뉴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0시에 개인의 자존심을 넘어 민족의 자신감을 높여주는 45분 21초짜리 '호랑이는 살아있다'를 발표한다. 여기서 호랑이는 물론 한국인을 비유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호랑이가 사자와 싸워 이기는 실제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우리가 서구를 능가할 있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시이다.

문화의 힘을 믿고 미래를 멀리 보다

 '훈민정음(해례본)' 목판본 23.3×16.8cm 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간송미술관 소장. 미술관 아트 숍에서 전시된 복사본이다
 '훈민정음(해례본)' 목판본 23.3×16.8cm 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간송미술관 소장. 미술관 아트 숍에서 전시된 복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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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세 번째 공통점은 문화의 힘을 믿고 미래를 멀리 봤다는 점이다. 이에 필요한 추미(醜美)를 꿰뚫어보는 '감식안'과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동시에 갖췄다.

간송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독서를 좋아했고 우리문화의 진수를 읽어낼 줄 수 있는 미학적 교양도 쌓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잃을 뻔한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낼 수 있었다.

반면 백남준은 한국에서 얻기 어려운 여러 풍부한 자료와 독서를 통해 인류학적 차원에서 우리민족의 계보학을 찾아나갔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원류를 한반도에 가두지 않고 북방계 기마유목민족에서 온 것으로 멀리 봤다. 그는 우리의 기운을 가까이는 몽골에서, 스키타이, 우랄알타이, 시베리아, 핀란드 그리고 멀리는 페루까지 연결시켰다.

백남준은 고관대작이었던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보다 승려였던 일연이 쓴 <삼국유사>를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거기서 일상도 역사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관점과 한국인의 유머와 상상력과 판타지를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남준은 <사기>같은 제도권 역사서를 믿지 않았다. 그런 책은 결국 당시 지배층을 미화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시 간송 이야기로 돌아가서, 40년대 말 태평양전쟁 발발로 일제의 한국수탈은 극에 달했다. 게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한글말살정책은 더 심해졌다. 그런 와중에 간송은 <훈민정음> 소장을 갈망했다. 이 책의 소장자인 '김태준'은 사회주의자로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당장 체포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하지만 간송은 그걸 소장하고 만다.

해례본까지 있는 이 자료는 원본이었다. 이 책은 1962년 12월에는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의 창제원리를 전 세계에 훤히 밝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간송의 소장품 중 최고 보물이다. 천재로 불린 김태준은 안타깝게도 해방 후 남로당 간부라는 죄명으로 총살된다.

두 사람은 '한류'의 원조

 '혜원전신첩' 중에서 '월하장인' 종이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소장. 미술관 아트 숍에서 판매하는 복사본. 화첩의 하단에 "달빛 어두운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月沈沈三更 兩人心思 兩人知)" 시가 적혀 있다
 '혜원전신첩' 중에서 '월하장인' 종이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소장. 미술관 아트 숍에서 판매하는 복사본. 화첩의 하단에 "달빛 어두운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月沈沈三更 兩人心思 兩人知)" 시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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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네 번째 공통점은 '한류'의 원조였다는 점이다. 간송은 28살 나이에 국보135호가 된 <혜원화첩>을 손에 넣었다. 간송은 1934년 가을에 우연히 흑반도판으로 찍은 일어판 <조선의 건축과 예술>에서 혜원의 풍속화를 접했고 이에 반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소장자 '야마나카' 사장을 만나 난관 많은 협상 끝에 요즘 돈으로 70억에 구입했다.

만약에 이 화첩이 우리 품에 넘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프랑스에서 이 화첩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높은 수준의 춘화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낸 적이 없는 <조선시대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제목의 고급양장본 책도 냈다. 한국드라마나 케이-팝 이전에 이미 한류를 일으킨 셈이다.

사실 '에로티시즘'은 미술에서 중요한 장르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그런 가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에로스란 에너지를 말한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에너지의 극대화다. 가장 강렬하게 뿜어내는 에너지를 화폭에 담아야 걸작이 되는 것 아닌가.

또 회화에서 에로티시즘이 중요한 건 거기에 시대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계급사회 속에서 양반의 위선을 폭로하고 시대를 풍자하고 통렬하게 비판하는 정신이 담겨있지 않은가. 이런 그림이 당시 나왔다는 건 조선후기사회가 어느 정도 언로가 터있었고 이런 화풍을 용납할 만한 그만큼의 역량과 관용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혜원의 18세기 수작인 간송미술관 소장 '미인도' 역시 조선후기사회의 면모를 그 어느 역사서보다 더 잘 보여주지 않는가. 간송도 "예술품이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확하게 똑똑하게 보여주는 까닭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백남준은 간송과는 다르게 '비디오아트'라는 전자예술을 발명해 전 세계에 한류를 일으켰다. '비디오코뮌', '글로벌 그루브',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비디오연작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사물놀이 등 민속 문화를 많이 소개했다. 특히 그는 한국문화의 뿌리가 되는 샤머니즘을 서양의 퍼포먼스 아트보다 한발 앞선 종합예술로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양(陽)'보다 '음(陰)'을 더 우선시

 백남준 I '달에 사는 토끼' 모니터 토끼조각상 미디어플레이어 가변크기 1996. 백남준아트센터소장. 장승업(張承業) I '오동폐월(梧桐吠月: 오동나무 아래에서 개가 달 보고 짖다) 견본담채 145.1×41.4cm
 백남준 I '달에 사는 토끼' 모니터 토끼조각상 미디어플레이어 가변크기 1996. 백남준아트센터소장. 장승업(張承業) I '오동폐월(梧桐吠月: 오동나무 아래에서 개가 달 보고 짖다) 견본담채 145.1×4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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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다섯 번째 공통점은 '양'보다 '음'의 문화를 더 중시했다는 점이다.

예로 달빛을 주제로 두 작품을 보자. 하나는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이고 또 하나는 간송이 소장한 애틋한 달빛의 미학이 은은하게 흐르는 장승업의 '오동폐월'이다. 달 취향이 이렇게 같아 보인다. 이번 전시 팀도 그래선지 두 작품을 자매처럼 나란히 배치했다.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는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TV아트로 번역한 것이라면 반면, 장승업의 달 그림 '오동폐월'은 계수나무를 오동나무로, 방아를 찧은 토끼를 달을 보고 짖는 개로 재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백남준이 특히 달을 좋아하는 건 몽골의 영향 때문이다. 양은 '정복(conquest)'의 개념이 강하고, 음은 '연결(network)'의 의미가 강하다. 즉 지배보다는 공존을 더 중시하는 칭기즈칸의 방식이다. 백남준은 그런 면에서 태양 중심의 서양문화와 혈투를 벌인 면이 있다.

백남준은 이렇게 10대부터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쇤베르크'의 '달빛에 취한 광대'에 열광했고 달빛의 황홀함에 민중의 애환을 담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좋아했다. '달은 최초의 TV'같은 작품에서 보듯 백남준이 달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다. 이건 모계사회 여성적 감수성이 우월하다는 세계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정보인프라와 아카이브를 중시하다

 간송은 만든 개인박물관 '보화각' 소장품을 '구범석' 뉴미디어 작가가 재구성한 작품을 설명하다. 3D로 보면 더 실감이 난다(아래 오른쪽).
 간송은 만든 개인박물관 '보화각' 소장품을 '구범석' 뉴미디어 작가가 재구성한 작품을 설명하다. 3D로 보면 더 실감이 난다(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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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여섯 번째 공통점은 정보인프라와 아카이브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간송은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한국 최초로 개인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1938년에 설립했다. 이런 시도는 정보를 제일 중시한 백남준의 정신과 바로 통한다. 그래서 백남준은 자신의 비디오아트를 '정보아트'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전시 팀은 이번 전시에 보화각을 옮겨 놓지 않았다. 대신 '구범석' 작가의 '가상현실(VR)뉴미디어'를 통해 그 작품들을 환상적인 사이버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초현실적이다. 또한 3D안경을 쓰면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일곱 번째 공통점은 고전을 알아야 미래를 보고 오늘을 제대로 창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백남준도 "그냥 과거가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알아야 30세기를 내다볼 수 있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런 주제가 담긴 작품이 바로 "피드백은 노스탤지어의 무한제곱"이다. 쉽게 말하면 고전과 첨단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결론이다.

또 이들의 여덟 번째 공통점은 이진명 큐레이터도 인사말에서 밝혔듯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진다는 긍정적 관점을 가졌다는 점이다. 독립이 불투명한 시대임에도 간송은 문화재 수집으로 미래를 낙관하며 대비했다. 백남준 역시 분단의 비극 속에 사는 우리가 오히려 세계평화의 초석을 놓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실크로드의 정신은 '융합, 소통, 교류, 공존'

 백남준 I '코끼리 마차(Elephant Cart)' 혼합매체 293×633×153cm 1999-2001. 백남준아트센터소장. 심사정(沈師正, 1707-1769) I '촉잔도권'(蜀棧圖卷 Road to Shu Scroll)' 지본담채 58×818cm<부분화>(아래)
 백남준 I '코끼리 마차(Elephant Cart)' 혼합매체 293×633×153cm 1999-2001. 백남준아트센터소장. 심사정(沈師正, 1707-1769) I '촉잔도권'(蜀棧圖卷 Road to Shu Scroll)' 지본담채 58×818cm<부분화>(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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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아홉 번째 공통점은 한국인을 포함해 모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었다는 점이다.

간송이 후손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소장품을 남길 리가 없다. 세계인으로 산 백남준은 그 범위가 더 넓다. 거기에 '원효'가 언급한 '원융회통' 같은 고차원의 인류소통을 꿈꾸었다. 이번 전시의 영어제목이 '대안적 꿈(Alterative Dreams)'인 이유이다.

이번 전시를 같이 기획한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도 인사말에서 백남준은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문화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수평적으로 결합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수평적이라고 한 말은 쌍방적이어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리라.

백남준은 평생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빠른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염원했다. 바로 이런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코끼리 마차'다. 아주 느리게 행차하는 부처와 가장 빠르게 달리는 마차를 대조시켜 해학적으로 풀었다. 코끼리는 유목민의 이동수단이다. 여기에는 백남준의 '노마드' 정신과 '실크로드' 개념도 들어있다.

이 작품과 짝으로 배치한 작품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쌍벽을 이루는 '심사정'의 '촉잔도권(길이 100m 정도)'이다. 이 산수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산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비디오영상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도 이상향으로 떠나는 '실크로드' 개념이 있다. 이게 포인트인데 결국 백남준의 '전자초고속도' 개념이나 '인터넷' 개념과 같은 것이다.

호방함과 호사함을 즐길 줄 아는 취향

 백남준 I '비디오 샹들리에(1번)', TV 모니터, 색전구, 흑백, 무성, 가변크기 1989. 장승업(1843-1897) I '약야홍장(若耶紅粧: 약야계의 붉은 연꽃), 서안괘어(書案掛魚: 책상에 걸린 물고기), 장향로수선(香爐水仙: 향로와 수선화), 고동추실(古銅秋實: 고동기와 가을열매)' 견본담채 131.2×33.7cm(뒷벽)
 백남준 I '비디오 샹들리에(1번)', TV 모니터, 색전구, 흑백, 무성, 가변크기 1989. 장승업(1843-1897) I '약야홍장(若耶紅粧: 약야계의 붉은 연꽃), 서안괘어(書案掛魚: 책상에 걸린 물고기), 장향로수선(香爐水仙: 향로와 수선화), 고동추실(古銅秋實: 고동기와 가을열매)' 견본담채 131.2×33.7cm(뒷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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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들의 열 번째 공통점은 호사함과 호방함을 즐기는 취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번에 간송의 애장품 중 장승업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다. 그리고 백남준의 작품으로는 소형TV를 멋지게 장식한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이다.

간송이 소장한 장승업의 이 병풍에는 연꽃, 향로, 수선화, 고풍스런 용기 등이 호사스럽다.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역시 럭셔리한 분위기다. 이 작품은 보들레르의 시 '여행에의 초대'에서 '호사와 관능과 사치'로 대변되는 인공낙원도 연상시킨다.

마침내 만인과 소통하는 '봉황'의 문이 열리다

 백남준 I '인디언 게이트(Indian Gate)' TV 모니터와 봉황조각상 410×392×82cm 1997. 이 작품은 국제어처럼 세계로 통하는 소통의 문(gate)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백남준 I '인디언 게이트(Indian Gate)' TV 모니터와 봉황조각상 410×392×82cm 1997. 이 작품은 국제어처럼 세계로 통하는 소통의 문(gate)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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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으로 넘어가서, 백남준의 '인디언 게이트'를 통해 새 세상을 여는 '통과의례'의 문은 어떤 건지를 그 속에 담긴 시대정신이 뭔지를 요약해보면서 이 전시이야기를 맺고자 한다.

우선 여기에서 전통장례에 사용되는 '봉황'이 보인다. 이건 뭘 뜻할까? 봉황은 죽음마저 일으켜 세우는 '신조(神鳥)'를 상징한다. 이 말은 우리가 고통스러운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겠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삶을 보다 차원 높게 긍정한다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부활사상과 닮았다.

그리고 여기 제목 게이트 앞에 '인디언'이 들어간 것은 타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백남준에게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대표적 타자가 바로 북미원주민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결국 지구상의 소외되거나 배제된 사람이 없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문이라는 뜻이 된다.

결론으로 알다시피 백남준은 동서가 공존하는 지구촌시대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터넷개념이 담긴 '비디오아트'를 발명해 꽉 막혀버린 서양미술에 숨통을 터줬다. 그는 선구자였다. 그는 이렇게 서양현대미술에 새로운 비전과 가능성을 열어준 봉황의 문이었다. 그리고 간송은 문화재수호를 통해 우리 문화 르네상스의 새 장을 열어준 봉황의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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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http://kansong.org/kansong/
[백남준아트센터] 홈 https://njp.ggcf.kr/archives/exhibit/alternative-dreams

[DDP 전시소개] http://www.ddp.or.kr/event/detail/1228?menuId=20
[도슨트 설명] 11시, 오후 3시, 금&토는 오후 7시 추가 전화 02)2153-0000

[1차강의]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2017년 1월 14일(토) 오후 3시-4:30 '탁현규(간송미술관 연구원)'
[2차강의] "조선 5인화가 탐색기" 2017년 1월 21일(토) 오후 3시-4:30 '이진명(간송미술문화재단 수석큐레이터)'
[3차강의] "기술혁명의 동과 서(백남준 작품세계)" 2017년 1월 24일(화) 오후 3시-4:30 '서진석(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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