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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나빠져만 갈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적어도 스무 살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독재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민주화를 이뤄낸 국민들이고, 최악의 경제위기도 극복해냈고, 대통령이 노벨상도 받은 나라였다. 위기가 있어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 내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처음으로 선거권을 행사해 본 2007년 대선이었던 것 같다. 'CEO 대통령'이 뽑혔다. IMF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이 사람을 참 절박하게 만든다는 걸 배웠기에 한편으로는 그 선택이 이해도 되었다. 그 다음해의 총선도 그렇게 납득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나빠지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08년 2월 25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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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잘 모르던 나와 내 친구들의 변화

사실은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다. 학교는 투표가 의무이자 권리라고만 가르쳤지 무엇을 어떻게 보고 결정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뭐하는지는 모르면서 게리맨더링 같은 걸 외우고 있는 흔한 학생이었다. 국회의원 이름은 몇 명 알까 말까였고 정당에 대해선 정권이 바뀌었다는 걸 구분하는 수준밖에 안됐다. 그런 나 자신에 대한 찝찝함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정치에 대해 모른다고 '모자라다'고 비난 받지는 않았다. 모자란 토익 점수를 지적 받으면 받았지.

그리고 그 다음 대선 후, 상황이 계속 악화되기만 한다는 걸 인식했다. 대선 결과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일터와 집터를 지키려다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잘 모르는 나도 이건 아니다 싶은 일들이 일어났다. 화내는 법조차 제대로 배워본 적 없었지만 더듬더듬 거리로 나갔다. 나가긴 했는데 원체 소심하기도 했고, 뭘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런 게 몇 번 반복됐다. 계속 패배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2014년 봄,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대한민국은 차가운 바다가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하릴없이 바라만 봐야 했다. 누구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다가 죽었다고 했다. 나도 누누이 들었던 말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무책임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시위를 제안한 용혜인씨(경희대 정경대 3)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을 따를 수 없다"며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뜻을 알리기위해 '가만히 있으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무책임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지난 2014년 5월 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인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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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들어라, 반항하지 말아라, 질서를 지켜라.'

분노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외쳤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너무 화가 났기 때문에 함께 외쳤다. 추모하고, 기억하겠다 되뇌고, 가방마다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다. 정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세월호를 바다에서 건져 올리지 못했다. 그즈음 나는 확실하게 절망했다. 나의 무력함에 절망하고 내가 믿었던 상식과 진실에 절망했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슬퍼하는 것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다.

촛불이 다시 켜졌다... 이번에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10월 29일, 다시 촛불이 켜졌다고 했다. 난 마음 한구석이 찔리긴 했지만, 매우 비관적인 생각만 들어서 집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때 한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집회 처음 나와봤는데 재밌네."

대학 다니는 내내 그 친구는 정치 이야기 하는 것을 늘 피했었다. 정치는 모르는 것이 순수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내가 더 놀란 것은 그 아래에 달리는 다른 친구들의 카톡이었다.

"추운데 고생이다."
"응원한다!"
"멋있다!"

나랑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같이 학교 다닐 때, 정치 무지렁이인 나를 운동권(?)으로 분류할 만큼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던 이들이었다.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그 다음 주부터 거리로 나갔다. 한 사람이라도 더 가야겠다는 생각에 전처럼 혼자 가지 않고 친구를 불러 굳이 같이 나갔다. 매주 인파는 늘어갔지만 혹시 사람이 줄어들까 빠지지도 못하고 열심히 촛불을 들었다. 뭘 해야할지는 여전히 몰랐지만 이왕 사는 양초 좀 더 사서 무작정 나눠주기도 하고, 겨울나기용으로 주문해 놓았던 100개들이 핫팩을 배낭에 넣어가서 나눠주기도 했다. 뭐라도 해야했다. 이번에는 정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연말, 나는, 우리는 작은 승리감을 맛볼 수 있었다.

'박근혜퇴진' 및 '세월호 7시간 밝혀라'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자는 의미로 7시에 맞춰 소등을 하고 있다.
▲ '박근혜퇴진' 및 '세월호 7시간 밝혀라' 지난해 12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자는 의미로 7시에 맞춰 소등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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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기뻐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시민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박근혜 탄핵' 기뻐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시민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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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의 기억이 헛되지 않았음을 목격했다. 어느새 변한 나와 내 친구들을 보았고, 출퇴근길 수없이 마주치는 노란 리본들을 보았다. 각자 품고 있었던 기억들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되는 것을 보았다.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면 세상이 어쩌면 조금씩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다시 꿈꾸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1000일 동안 세월호를 기억했다. 아마도 앞으로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미안해하며 살아갈 것이다. 다시는 그렇게 누군가를 잃지 않도록, 앞으로는 우리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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