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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에서 활동하며 <다시 봄이 올 거예요>(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작업에 참여한 인권운동사랑방 미류씨가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생존학생 도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편집자말]
[기사수정 : 1월 10일 오전 1시 50분]

촛불 무대에 오른 세월호참사 생존학생들 세월호참사 생존 단원고학생 9명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천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다.
▲ 촛불 무대에 오른 세월호참사 생존학생들 세월호참사 생존 단원고학생 9명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천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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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에게

도연! 이제 이름을 부르며 얘기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내면서 같이 이름 정했던 거 기억나요? 아직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러웠던 그때, 나는 조금 속상했어요. 2년이 되도록, 아니 2년이 될수록 자신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가 못마땅했거든요. 아마 도연도 속상했겠죠? 아니, 어쩌면 도연은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그때에도 지금도 도연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지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세월호 참사 천일을 앞둔 광화문 광장에 생존 학생들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연도 나올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차마 전화를 걸어 물어보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괜히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데 도연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수줍은 듯 콧소리가 섞이는 목소리와 말투, 말 끝에 늘 수줍은 웃음이 따라붙던 도연의 얼굴이 멀리 화면으로도 보였어요. 정말 반가웠어요. 그리고 한 걸음씩 먼저 걸어주는 생존학생 친구들이 고마웠어요.

1000일 어떤 시간이었나

광화문광장으로 갈 때만 해도 내게 세월호 참사 천일이 어떤 시간일지 잘 알지 못했어요. 말로의 노래를 들으며 조금 알게 됐어요. 도연도 들었죠? '너에게로 간다' 내가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노래예요. 그런데 2년 전 말로의 콘서트에 다녀온 후 아파서 잘 듣지 않는 노래가 됐어요. 말로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만든 노래들이 실린 음반 발매 콘서트였어요.

기차가 달리고, 기차 밖 풍경들이 끝없이 흐르는 배경 화면에서 말로가 '너에게로 간다'를 부르는데, 너에게로 간다고 할 때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내가 보이는 거예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 버렸는데, 진실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고,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내가 보인 거예요. 어쩌면 천일이 되기 얼마 전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작년 9월 30일에 세월호 특조위가 강제 해산당했잖아요. 하루 다음인 10월 1일은 세월호 참사 900일이 되는 날이었고 그날도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진실의 끝은 우리가 정한다고,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고 힘 주어 외쳤죠. 하지만 막막하기도 했어요.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어온 길에 갑자기 안개가 자욱해진 것 같았죠. 나침반도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 것 같고요.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같은 노래를 들을 때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똑같은 노래를 듣는데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너에게로 가는 길은 열려 있다고 노래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가는 만큼 그 길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자신감 같은 것이 광장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서로 용기 낸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

9백일에서 천일에 이르는 백일 동안 세상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잖아요. 대통령의 7시간을 언급하기만 해도 불온한 것으로 매도됐는데 그게 이제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유가 되다니! 이제, 너에게로 간다, 갈 수 있다, 갈 것이다, 진실에게로, 세월호 참사 이후의 다른 사회로! 물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겠죠. 천일에 이르도록 무엇도 저절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요.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서로 용기를 내어준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나한테는 도연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도연의 천일이 어땠을지 사실 잘 알지 못해요. 어쩌면 구술기록을 하고 난 후 더 알지 못하게 된 것도 같아요. 막연한 짐작을 뛰어넘는 시간을 도연과 생존학생들이 살아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차마 짐작하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처음 만날 때 나는 조금 두려웠어요. 혹시 이미 눈치채고 있었나요? 아마 다른 작가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생존학생들이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만큼 구술기록을 하는 부담이 컸거든요.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짐작하기는 어려웠어요.

어설픈 짐작으로 나는 도연이 참사 당일의 기억을 말하기 어려워할 거라고 예상했어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면 기억하지 않고 싶어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때의 기억이 자꾸 덮쳐와서 무의식 중에 어떤 기억을 지우기도 하고요. 기억을 꺼낼 때마다 말에 담기지 않는 소리와 냄새, 촉감, 감정 같은 것들이 모두 끌려나와 더 아프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도연은 기억을 하나라도 더 붙들어두려고 엄청 열심히 말했어요.

"그날 기억은 거의 다 선명해요.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할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초고를 같이 읽느라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도연이 몸으로 기억하는 순간들이 최대한 그대로 기록되기를 바라며 매 순간을 묘사할 말들을 찾아내려고 애쓰더라고요.

누구보다도 간곡히 기억하려고 싸운 생존학생들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에 나는 조금 부끄러웠어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고, 나도 정말 여러 번 다짐하고 말도 하고 글도 썼어요. 참사의 당사자들이 기억하기 힘들 테니 더 열심히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도연은, 그리고 생존학생들은 누구보다도 간곡히 기억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어요.

그 순간을 기억하는 만큼 가끔은 악몽도 찾아들고 가끔은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에 뒤척이면서도 그 기억을 놓지 않았죠. 그리움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겠죠? 친구들과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만큼 친구들이 세상에 머물 수 있다는 마음요. 도연이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말할 때, 그건 기억을 지키겠다는 약속이기도 한 것 같았어요.

도연은 노란리본을 가방에 단 사람들을 보면 힘이 된다고 했죠. 같이 기억한다는 징표니까. 그런데 나는 도연이 친구들을 기억하는 마음을 놓지 않아서 사람들이 노란리본을 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도연이, 그리고 생존학생들이 온몸으로 지켜내는 기억이 우리가 닿으려는 진실의 자리니까요. 그 자리를 지키는 당신들의 우정이 진실을 향하는 길을 열고 있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당사자이지만 용기가 없어서" 숨어 있었다고 말할 때 나는 괜히 다 억울했어요. 도연이 이름을 말하고 사람들 앞에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진실의 자리를 한번도 떠난 적 없다는 걸 알아요. 2014년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할 때 안산에서 국회의사당까지 도보행진을 하기도 했고 안산에서 서울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함께하기도 했죠. 사람들 앞에 서기 어려웠던 건 생존학생들의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세상이 엉망으로 굴러가도 그걸 바꿀 용기를 더 내지 못한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진상 규명 요구를 왜곡할 때 덩달아 의심하거나 확인하려고 했죠. 정부가 망각을 강요할 때 기억하겠다면서도 기억하는 행동은 희미해졌죠. 그래서 유가족들도 생존자들도 말하기 더욱 어려워진 거잖아요.

생존 학생들에게 돌리고 싶은 감사 인사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생존학생들 '눈물의 위로' 세월호참사 단원고 희생자 부모와 생존학생들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천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무대에 서로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생존학생들 '눈물의 위로' 세월호참사 단원고 희생자 부모와 생존학생들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천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무대에 서로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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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할 때 도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행진을 하거나 추모제에 참석할 때면 친구들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그때만큼은 죄책감이 좀 사라지기도 했다고요. 그런데 도연이 당분간 집회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해서 조금 놀랐어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봤을 때 도연의 대답에 한 번 더 놀랐어요.

"그때 잠깐이에요. 이제는 혼자서 해보려고요."

죄책감이 옅어지기를 바라며 더 많이 집회를 다닐 수도 있을 텐데, 나라면 그럴 것도 같은데, 저 마음은 뭘까 곱씹어봤어요. 잠깐의 위안보다 도연이 스스로 질 책임을 찾겠다는 용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용기라는 말이 도연에게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이미 도연이 큰 용기를 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어요. 그 용기를 나도 배웠고, 어쩌면 그런 용기 덕분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더 용기를 내보려 한다는 생존학생들의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봅니다. 생존학생들이 무대에서 '단원고 2학년 몇 반'이라고 소개를 할 때 내게는 그것이 어떤 선언처럼 들렸어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모두 밝혀질 때까지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2학년이었던 우리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선언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란 결국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정하는 일이 아닐까요? 진실의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선언 덕분에 우리는 더욱 힘을 냅니다. 아마 광화문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모두, 생존학생들의 발언문을 읽게 된 사람들 모두 그럴 거예요. 생존학생들은 "시민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다시 한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매우 감사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인사를 그대로 도연과 생존학생들에게 돌리고 싶어요.

그리고 나도 다시 약속할게요. 잘못한 자들을 모두 불러내 책임을 묻고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요. 그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요. 앞으로 어떤 시간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죠. 세월호 인양도 진상규명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도연도 나도 우리도 다시 지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998일째 4월 16일의 광화문광장을 기억하기로 해요.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놓지 않으며 한걸음씩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요. 우리 모두 언제나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걸요.

도연에게는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이 있을 테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쌓여가겠죠. 같은 자리에 있어도 서로 다르게 겪는 시간들을 섣불리 짐작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는 더 많아지고 깊어질 거라고 믿어요.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더 크게 말해도 돼요.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만든 자들에게 더 많이 분노해도 돼요. 우리가 만들 세상은 우정을 지켜줄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니까요!

천일 동안 우정을 지켜온 당신들이 있고, 그 우정을 기꺼이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오늘 하루 우리 웃어도 될까요? 나는 도연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천일의 약속을 다질 거예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미류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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