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 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나마 영국은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 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나마 영국은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 영화사 진진


복지 제도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가 최대의 이익을 가지려면 경제는 시장에 맡기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최선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두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사회에서 사느니,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여 최저한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복지를 받는 것은 수혜가 아닌 개인의 권리이며, 국민이 인간적인 존엄을 위해 정부에게 복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 제도에 관한 영화다. 영화가 바라보는 복지는 인간의 존엄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다. 존엄과는 상관없이 관료적인 행정 절차에 따라 자존을 무너뜨리는 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담았다. 주인공은 관료적 행정절차와 모멸적인 시선 때문에 계속해서 고통받는다. 복지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존엄, 사람이 느끼는 좌절과 빈곤으로 인한 고통, 꺾이는 자존까지 담아냈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처럼 '다니엘 블레이크'이다. 그는 나이든 목수로, 광증을 앓던 아내를 돌보다 떠나보내고 혼자서 살아간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말 안 듣고 쓰레기 치우는데 게으른 옆집 흑인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심장 질환으로 작업 현장에서 큰 위기를 겪는다. 오랫동안 베테랑 목수로 일해 온 그지만 나이에는 장사가 없었다. 결국 다니엘 블레이크는 질병 수당을 신청하러 간다.

영화는 복지 제도에 관한 내용을 전개한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유도, 도움을 받는 일도, 분노하고 매달리는 것도 모두 복지 제도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복지 제도가 주요 소재로 나오는 영화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복지 제도의 모습은 밝지 않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노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열악한 처지는 점점 악화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를 화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관료적인 행정 절차다. 초반부터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겪는다. 그의 주치의는 그의 심장 상태를 보고 일을 그만둘 것을 권한다. 그는 이미 목수 일을 하다가 쓰러져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전력이 있었다. 그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서 목수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정부에 수당을 신청한다.

그런데 수당 신청을 심사하는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니다. 황당한 건, 공무원조차 아니라는 점이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관련 업무를 위탁받은 외부 업체 직원이다. 특별한 의료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손을 들 수 있는지, 다른 몸 상태는 어떤지 시시콜콜한 것을 캐묻자 다니엘은 신경질을 낸다.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이 아픈데 뭐 이렇게 자잘한 것을 묻는단 말인가?

다니엘 블레이크가 이후에 방문한 복지 사무소는 행정 절차의 미궁이다. 자신의 차례를 맞춰서 기다리고 상담을 받아야 하며, 복지 사무를 처리하는 이들은 무조건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호된 질책을 듣게 된다. 상담사들과의 대화는 이미 짜인 정해진 질문지에 따라서 진행된다.

전자화된 복지 시스템은 더욱더 큰 난관이다. 인터넷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다니엘에게 컴퓨터로만 할 수 있는 신청 서비스는 지나치게 어렵다. 어떻게든 공용 컴퓨터를 활용하고 주변 젊은이들에게 물어물어 인터넷에서 신청해보지만, 마침 그때 사용시간이 다 되어버리고 만다. 제도 자체가 인터넷이라는 장벽이 노인에게 큰 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은 채 설계된 것이다. 벽처럼 느껴지는 절차 앞에서 노인이 느끼는 것은 분노와 무력감이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한국인이었다면 신청을 위해 액티브 X와 공인인증서까지 설치해야 했을 것이다. 거기에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도 내려받아야 했을 것이다. 미리 설치해놨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어쩌면 모든 정보를 입력한 다음 액티브 X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첫 페이지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주인공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서 영화는 단편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액티브 X와 공인 인증서의 조합은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절차가 정해져 있는 제도를 이용할 때는 특히 그렇다. 공인 인증서 비밀번호를 한계까지 틀렸는데 내일이 휴일이기라도 하면 스트레스는 배가된다.

미로와 같은 복지 제도,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니엘 블레이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복지 제도는 미로와도 같다. 이 길이 맞는가 싶어서 따라가다 보면 함정에 빠지고, 다른 길로 가면 막다른 길이다. 관료적인 절차 앞에서 개인의 다급함은 무시당하게 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의 수당이 거절당하자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돈을 받기 위해 구직 수당을 신청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자존이 깎여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재심 기간까지 먹고 살 방법이 막막해지자, 다니엘 블레이크는 구직 수당을 신청한다. 구직 수당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요건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이력서 작성 강의법을 듣고, 일하지도 않을 직장에 가서 구직 신청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이력서 작성 강의를 듣고도 왜 이력서를 배운 대로 쓰지 않았냐고 혼이 난다. 이력서를 받은 고용주는 다니엘을 채용하기 위해 전화를 걸지만, 다니엘의 상태를 듣고 자신의 시간을 낭비했다며 분노한다. 결국,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존감이 파괴되는 비참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복지 제도는 결국 인간을 향해서 설계된 것이라고 말한다. 관료적인 시스템도, 심사 제도도 복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처음에는 정해진 절차를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분노와 수치를 겪고 만다. 마침내는 자신의 수당 박탈에 항의하고, 자신의 존엄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다니엘은 확신에 차 있다. 그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복지 수당을 받겠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존을 지켜주는 복지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40%가 넘는다. OECD 중 최악이다. 자살률은 원래 평균도 OECD 1위지만, 노인 자살률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아 10만 명당 110명을 넘는 수준이다. 고령자의 소득 구성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낮은 편이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존엄은 물론이고 생계도 위험할 확률이 높다. 우리에게 이 영화가 주는 의미가 가볍지 않은 이유다. 존엄과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제도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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