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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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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걸 보고, 농담처럼 '대리대통령'이라고 표현했어요."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연일 이어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이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영향을 비껴간 분야가 없다. '대리대통령'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과 가까이 있던 공직자와 기업가는 이 '대리 행위'를 적극적으로 돕거나 묵인했다.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는 "박 대통령이나 재벌, 정치인들이 괴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동시에 대리인간이었다"고 평했다. 그들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별종'이라기보다 뒤틀린 사회의 욕망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대리인간'이었다는 것. 천만 촛불은 이에 반발해 '천박한 욕망을 거부한다'는 선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대리한다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결국 우리가 어떤 욕망을 대리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5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아래 <지방시>)라는 글로 맥도날드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지식노동자의 삶을 전한 김씨는 같은 해 12월 대학을 나왔다(관련 기사 : 시간강사보다 햄버거집 알바가 편했다는 한 남자). 그리고 지난해 6월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마주했다. 그는 좁디좁은 운전석에서 파주, 원주, 서울을 달리며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대리운전앱에 접속하는 모습.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대리운전앱에 접속하는 모습.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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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대학을 나오며 쓴 글에서 "새롭게 맞이할 거리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계속 '지방시'의 이야기를 써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공간이 왜 하필 타인의 운전석이었나요.
"<지방시>를 통해 대학에 있던 시간을 '유령의 시간'이라고 규정했어요. 그런데 유령의 시간이 아니라 대리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에 있을 때는 제가 주체라고 믿고 강의하고 연구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환상 강요한 건 누구일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결국 대리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대리'라는 노동을 통해 나를 규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해서 한 달에 100번 정도 타인의 운전석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회사의/매장의/학교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수사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이것은 정말이지 파렴치한 역설이다.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탈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가 된 노동자만이 존재한다. (173쪽)

- '배움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며 상처받는 일도 많았을 텐데요.
"속상한 일은 많았죠. 반말은 당연하고, 하대하고 폭언하는 손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걸 봐도 그냥 밉다, 정도더라고요. 그렇게 표현하는 건 결국 갑의 자리에 있기 때문일 텐데, 분명 저도 갑과 을의 자리를 오가니까요. 내가 저 자리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했어요.

여러 명의 대리운전자를 불러놓고 먼저 오는 사람 차를 타고 갔던 사람이 제일 밉더라고요. 지금 자신의 연락을 받고 오는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어요. 손님을 태우고 가는데, 거리에서 한 중년의 대리운전자가 전화를 걸며 두리번거리더라고요. 제 손님에게 전화가 갔어요. 그 대리운전자의 얼굴을 봤는데, 그 표정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더라고요. 분노, 슬픔...

내가 아닌 상대방을 주체로서 대하는 것에 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을의 자리에 오니 알게 되더군요. '대리 불렀어'라는 말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에요. 하지만 '대리 오셨어'라는 말에서 주체는 대리운전자입니다. 타인을 주체로 상상하는 사람들에겐 순수한 존경심이 들어요. '밉다'라는 감정보다는 배우고 있어요."

당하는 이들에게는 대리가 아닌 주체의 아픔으로 오래 남는다.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고 해서 감정까지 대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그 어떤 비정함에 무뎌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주체로서 아파하고 주체로서 절망한다. (96쪽)

 김씨는 <대리사회>의 말미에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앞으로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끝없는 경쟁만을 강조하는 사훈처럼, 우리를 옭아매는 언어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쓰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대리사회>의 말미에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앞으로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끝없는 경쟁만을 강조하는 사훈처럼, 우리를 옭아매는 언어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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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엔 대리운전을 했다.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경계에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작은 사회를 기록했다. <지방시>에서도 낮에는 대학 강사로, 밤엔 맥도날드 알바로 살며 대학이라는 공간의 모순을 말했다. 강단에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하고 싶은 말은 동일했다. 익숙하고 당연한 공간에서 한 발짝 물러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 그래서인지, 그의 시선은 운전석에만 머물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확장됐다. 

- <대리사회>의 상당 부분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족들의 '희생'을 추억하지 않고 온전히 아파하겠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대학에 있을 때, 시간강사를 하다가 정규직이 된 선배들이 가족들이 대신 희생하고 고생한 것을 그저 '추억'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후배들에게 논문을 쓰거나 연구하려면 가족의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면서 그러한 추억을 대물림 시키는 것이 너무 혐오스러웠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앞으로도 제가 어떤 삶을 살지 모르겠지만 고생하는 이들을 추억하고 싶진 않아요. 기억하고 미안해 해야지요. 고맙다는 건 폭력 같아요."

- 거리에서 만난 다른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밤거리에 노동자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정말 많더군요. 새벽 일하는 분들이요. 청소노동자, 24시간 해장국을 끓이는 분들... 수많은 노동자들의 몸을 투명하게 하는 건 제 자신이었어요.

대리운전을 하고 나서 저를 닮은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대리운전자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됐어요.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를 간절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리운전 앱에는 콜이 1초 동안 뜨고 사라져요. 1초 안에 많은 걸 파악해야 합니다. 휴대전화로 무심하게 웹툰을 보는 사람들과는 다르죠.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시선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 <대리사회>가 <지방시>의 연작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대가 거리로 옮겨진 것이지, 제가 바뀐 건 아니니까요. 다시 대학 얘길 하고 싶진 않았지만, 연작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했어요. 다음 책도 무대는 바뀌고 노동 형태는 바뀌겠지만 <지방시>, <대리사회>와 이어지는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느덧 우리의 신체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해졌다. 모두가 대리인간이 되어간다. 은폐된 노동을 기억하고 상상하는 일은, 결국 점점 지워져 가는 우리의 신체를 되찾는 일이다. 나는 노동하는 한 인간으로서 밤을 걷는다. 이 거리에, 노동자가 있다. (245쪽)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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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가 나온 건 지난해 11월. 책의 주요 키워드인 '대리'는 다른 곳에서 활발히 쓰였다.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책 표지에 적힌 홍보 문구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시국이다. 그는 이 논란을 어떻게 봤을까.

- 인터뷰 준비하면서 검색창에 '대리사회'를 검색하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가 잔뜩 나오더군요.(웃음)
"대리사회 검색하면 정유라만 나와요.(웃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터지고 나서 '대리대통령'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대통령이 자기 몸과 언어와 사유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보였어요. 박 대통령이나 재벌, 정치인들이 괴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동시에 대리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본의 욕망, 사회의 욕망을 충실하게 대리하는 대리인간이요. 천만 촛불은 더 이상 그러한 천박한 욕망을 대리하지 말라는 선언이고요.

저는 <대리사회>에서 '대리'라는 것에 나쁜 뜻을 담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사회, 시대의 욕망이에요.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경쟁사회에서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욕망을 대리하고 있는지 마주해야 해요. 천박한, 모욕감을 주는 욕망이라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몸과 언어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 살아야 합니다."

- 사실, 대통령은 '대리'가 본연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 국정을 운영하는 성실한 대리인이라면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텐데요.
"'대통령'에서 '대'자가 대신할 대(代)인 줄 알았는데, 크다 대(大)더라고요.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크게 통치하는 사람보다는 대신 통치하는 사람인 거잖아요. 국민에게 위임받아서. 그런 대통령이라면 너무 좋죠. 같은 탄핵이어도 2004년 국민들은 자신의 욕망을 대리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광장에 나갔고, 이번에는 거부하기 위해 나갔어요."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36쪽)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대리사회> 저자 김민섭씨. 그는 요즘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삶을 이어오다 최근엔 대리운전을 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리사회/김민섭/와이즈베리/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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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대리사회>의 말미에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앞으로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끝없는 경쟁만을 강조하는 사훈처럼, 우리를 옭아매는 언어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쓰고 싶다고 했다. 

"지금 최순실과 재벌, 박근혜를 욕하는 많은 사람들도 사실 괴물의 언어를 사용해요. 한 번은 아내가 속상해 하며 집에 들어왔어요. 아는 분이 분유를 준다고 했대요. 선물 받은 건데 자신의 아이는 독일 분유 아니면 안 먹는다고, 개나 주는 거라고. 결국 안 받고 그냥 돌아왔어요. 저도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평범한 얼굴들을 한 괴물들이 있어요. 대리 사회 쓰면서도 느낀 거지만, 우리 안의 최순실과 박근혜를 돌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252쪽)


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와이즈베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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