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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길을 가다가 뭔가를 으레 줍습니다. 우리 집 아이도 그렇고, 저도 어릴 적에 그러했어요. 어른들은 길을 가다가 뭔가를 줍는 일이 흔하지 않을 텐데, 아이들은 길을 그냥 고이 가는 일이 거의 없어요. 이것을 보고 저것을 보느라 바쁘기도 하고, '처음 보는' 것을 줍고 싶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보았다면서 줍기도 해요.

아이들이 길에서 뭔가를 주울 적에 어른들은 무어라 대꾸를 할까요? 다시 버리라 할까요, 지저분하니 내려놓으라 할까요, 갈 길이 바쁘니 쳐다보지 말라고 할까요?

카타리나 발크스 님이 빚은 그림책 <리제트의 초록 양말>(파랑새 펴냄)은 어느 날 길에서 '풀빛 양말'을 주운 아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어느 날 나들이를 나왔다가 풀빛 양말 한 짝을 주우며 몹시 기뻐해요. 예쁜 풀빛 양말을 줍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 멋진 일이라 여기지요.

겉그림
 겉그림
ⓒ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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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쁜 딸, 왜 이렇게 시무룩하니?" 엄마가 리제트에게 물었어요. "길 가다 양말을 주웠는데, 한 짝밖에 없어요." (17쪽)

아이는 집에 시무룩하게 돌아옵니다. 왜 시무룩할까요? 풀빛 양말을 처음 주울 적만 해도 신나서 웃고 노래를 했는데 말이지요. 아이 어머니가 상냥하게 묻습니다. 아이는 '한 짝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때문이 아니에요. 아이는 어머니한테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아요. 막상 아이가 시무룩한 까닭은 '한 짝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짓궂은 마을 아이들이 '한 짝밖에 없는 양말로 되게 좋아하네?' 하고 놀렸기 때문이에요. 짓궂은 아이들이 놀리기 앞서까지는 '한 짝만 있는' 양말로도 아주 즐거웠지만, 짓궂은 아이들이 놀린 뒤로 갑자기 기쁨이 싹 사라졌대요.

친구 베베르가 리제트를 불렀어요. "리제트, 저 모자 네 거니?" "저건 모자가 아니라 양말이야, 베베르." "우아, 정말? 나는 저렇게 생긴 모자를 갖고 싶었는데." (21쪽)

속그림. 나들이를 나오다가 풀빛 양말이 떨어진 모습을 보다.
 속그림. 나들이를 나오다가 풀빛 양말이 떨어진 모습을 보다.
ⓒ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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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아이가 주운 양말'을 알뜰히 빨래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주운 양말이 한 짝뿐'이라 시무룩하다고 말할 적에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한 눈치입니다. 다만 아이한테는 이 생각을 미리 알려주지는 않아요. 이러다가 동무가 놀러왔고, 동무(동무는 쥐예요)는 리제트란 아이가 주운 '양말'을 보더니 '멋진 모자'라고 여겨요.

다른 동무가 들려주는 말을 들은 아이는 차츰 생각이 바뀝니다. 그러게 말야, 왜 짓궂은 동무가 함부로 읊은 말에 휘둘렀을까 하고 생각하지요. 살가운 동무한테 양말을 건네면서 '멋진 모자'로 쓰도록 합니다. 둘은 사이좋게 놀지요. 이제는 '한 짝뿐인' 양말이라는 대목을 잊습니다. 그저 즐거워요.

리제트는 깜짝 놀랐어요. 초록 양말 한 짝이었거든요. "너희들 그 양말 어디서 났어?" 하지만 마투와 마토슈는 양말을 흔들며 달아났어요. (24쪽)

속그림. 양말 한 짝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 둘러본다.
 속그림. 양말 한 짝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 둘러본다.
ⓒ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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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가 즐겁게 놀 적에 짓궂은 아이들이 다시 나타납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풀빛 양말' 한 켤레를 어디에선가 찾아냈어요. 이 다른 한 짝을 들고 두 아이를 놀려요. 이러다가 못에다가 풀빛 양말 한 짝을 퐁당 빠뜨립니다.

짓궂은데다가 괘씸하기도 하지요. 이 아이들은 동무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재미를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리제트와 동무는 씩씩거리지만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두 아이한테는 '풀빛 양말 한 짝'이 있어요. 두 아이는 매우 안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 어머니가 깜짝 선물처럼 '새로운 풀빛 양말' 한 켤레를 내밀어요. 두 아이가 바깥에서 노는 동안 어머니는 뜨개질로 양말 한 짝을 떴대요.

줄거리를 보자면 수수하달 수 있습니다. 아이가 주운 양말 한 짝하고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수수한 줄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가 새롭게 여기는 마음을 아끼는 어버이가 나와요. 둘레에서 하는 말에 휘둘리는 아이가 나오고, 이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아이가 새롭게 기쁨을 찾도록 북돋우는 어버이가 나오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짓궂은 아이들을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아요. 그저 조용히 '새로운 양말 한 짝'을 뜰 뿐이고, 새로운 양말 한 짝을 우리 아이한테 하나 주고 동무한테 하나 주면서 사이좋게 놀도록 이끌어요.

돌멩이 하나는 멋진 놀잇감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깃털 하나도 멋진 장난감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한 짝짜리 양말도 멋진 모자로 거듭날 수 있고, 우리를 둘러싼 자잘한 것 무엇이든 새롭고 재미난 이야깃감으로 거듭날 만해요. 아이가 작은 것 하나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몫, 여기에 아이가 작은 놀잇감 하나를 아끼도록 이끄는 사랑, 이 두 가지는 우리 어른들이 즐겁게 가꿀 수 있는 살림이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제트의 초록 양말>(카타리나 발크스 글·그림 / 조민영 옮김 / 파랑새 펴냄 / 2008.11.14. / 12000원)



리제트의 초록양말

카타리나 발크스 글 그림, 조민영 옮김, 파랑새(2008)


태그:#리제트의 초록 양말,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책, #어린이책, #아이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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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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