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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보기]신동욱 "처형 박근혜 대통령, 지난 10년간 밥 한 끼 산 적 없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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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짱 인터뷰 전문] 신동욱 공화당 총재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장윤선·박정호의 팟짱>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라고 프로그램명을 정확히 밝혀주십시오.

■ 방송 : 장윤선, 박정호의 팟짱
■ 채널 : 팟캐스트(+아이튠즈 http://omn.kr/adno + 팟빵 http://omn.kr/ayzm)
■ 진행 :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 
■ 출연 : 신동욱 공화당 총재

아래는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와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함께한 인터뷰 내용이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
 신동욱 공화당 총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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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있는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의 수행 비서 주 모 씨가 지난달 30일 사망했죠. 끊임없는 타살의혹이 제기되니까 경찰은 주 모 씨의 행적 조사를 계속하는 한편 독극물 반응 등 정밀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둔 상황입니다. 만약 이 죽음이 자살이거나 타살이라면 자신 사건과의 개연성은 99%라고 주장하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 씨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인데요. 오늘은 신 총재님을 모시고 지난 시기 벌어졌던 의문의 죽음들에 대해 실마리를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총재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지난 파파이스에서는 인사를 인상적으로 하셔서 청중들에게 박수를 많이 받으셨는데요, 지금 전 세계에 200개국 전국에서 함께 시청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연대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사실 오늘 집에서 출발하면 출발하면서 10시 15분에 네비가 찍혔어요. 그래서 15분 늦는다고 메시지를 넣었는데 55분까지 반드시 도착해야 된다. 그래서 제가 우주의 기운으로 정확하게 시간을 맞췄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우주의 기운을 박근혜 대통령께서 제게 준 것 같습니다."

-우주의 기운이 박 대통령에게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퍼지고 있다. 좋은 거네요.
"오늘 제가 이 우주의 기운을 대한민국을 모든 국민들에게 새해 선물로 나눠드리겠습니다."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어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배정훈 PD인터뷰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5촌 조카 살인 사건 관련된 내용을 다뤘는데요, 배 PD가 신 총재님 걱정을 엄청 하시더라고요.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 어느 정도세요?
"우주의 기운을 넣어서 말씀드리자면 전 사실 두려운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제가 2007년 7월에 사고가 났을 때 대한항공에서 한국 영해에 들어왔다고 안내 방송이 나올 때 DJ대통령 납치 사건이 생각나더라고요. 전 이미 죽은 목숨이고 한국에 돌아가면 덤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에 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그래서 제가 지난 10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죠. 팟짱 애청자 시청자분들도 저 사람 똘기 있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 중에서 아내도 제 이야기를 믿지 못했으니까요. 제가 진실을 이야기하면 '아직 마약에서 깨어나지 못했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약 한 적 없잖아요.
"마약 한 적 없죠. 하지만 마약쟁이로 제가 둔갑됐죠. 중국의 공작원들이 제게 속았죠. 제가 마약을 하는 척했죠. 그렇게 된 겁니다."

-그 이야기는 좀 이따 제가 들어보겠습니다. 벌써 댓글이 달리고 있는데요. 캐릭터가 독특하시다. 하하. 유머가 좀 있으시네요. 안 웃긴데 웃기는, 이런 얘기를 하고 계십니다. 저는 신동욱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음. 멀쩡한데 좀 이상해보시는 듯. 목소리가 프로 성우급이시다. 지금 여러분들께서는 굉장히 무슨 라디오 드라마 듣는 기분이다 하고 주고 계십니다. 실시간 생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들어오는 문자메시지 종합해서 신 총재님께 가급적 많은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하고 간밤에 상당히 많은 문자를 보냈지 않습니까.
"제가 불면증이 있습니다. 저도 졸피뎀을 좀 먹어야겠습니다. 졸피뎀은 생명을 담보로 먹어야 합니다. 졸피뎀은 반드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거 명심해야 합니다."

-잠을 못 주무세요. 10년간의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아요. 중국 얘기 조금 들어볼게요 여러 방송에서 조금씩 간헐적으로 나오곤 했는데 편집된 부분이 있어가지고 '풀 텍스트'라는, 기자들 개념에서 보면 이게 쭉 풀스토리가 딱 안착이 안 돼 있어서. 그 이야기를 좀 들으면서 시작을 할게요. 시계를 2016년에서 2007년으로 잠깐 옮기겠습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데요. 진행을 하니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죠. 사실은 제 아내하고의 만남 자체가 꼬이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그 시절에 지리산 산골에 산골소년이었고 1970년대 7남매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세 살 때 여의고. 모친이 마흔에 과부가 돼 7남매를 키웠으니까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습니까. 그때 주식이 고구마였습니다. 평생 보리밥 먹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감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딸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요. 그건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됐든 간에 제가 2002년도부터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국민통합21 발기인이었고요. 사실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는 데 1등공신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몽준 그 당시 대표와 노무현 후보가 연대를 했죠. 일주일 동안 합동 유세했는데 그 당시 민주당 당사 8층에서 정몽준 유세 스케줄을 제가 설계했습니다. 그 당시에 보니깐 정치를 하려면 교수라는 타이틀이 중요하다 느꼈어요. 그래서 교수가 된 겁니다. 그래서 교수가 됐습니다. 그 당시 제가 석사 학위가 있었습니다. 석사학위로 박사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박사가 넘쳐나는데.
"그렇죠. 해외박사가 넘쳐나죠. 그러나 난 어딘지 모르게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자신감에 차있었습니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제가 학위가 벤처경영이라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벤처는 1%에 도전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석사학위 증명서를 떼야 합니다. 학교에서 석사학위로 어떻게 교수가 되냐고. 우리 학교에 어떻게 되냐고.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이거보시오. 내가 당신들이 2년 동안 가르친 게 벤처야. 지원하는데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하면 이 벤처는 가짜야. 내 반드시 교수 반드시 교수 타이틀을 가지고 올 것이오.' 그렇게 해서 지원을 하게 됐어요. 백석문화대학에 지원하게 됐는데 종교란이 있더라고요."

-원서 지원할 때?
"왜냐면 그곳이 합동장로교입니다. 종교란을 전 어떻게 했을까요."

-기독교라고 쓰셨죠?
"아닙니다."

-무교?
"아닙니다."

-불교?
"아닙니다."

-갑자기 이게 스무고개 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공란으로 놔둘 경우엔 그 조직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고, 나는 이 란은 체크했다고 말하기 위해 점을 하나 찍었습니다."

-점.
"나는 종교적으로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점을 하나 찍었습니다. 그 대학이 저를 임용했어요."

-점으로?
"우주의 기운이겠죠?

-하하하하하.
"대부분 다 기독교를 쓰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속일 수 있어도 제 양심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깐 이 정도 하면 제 캐릭터는 대충 아시겠지요. 그렇게 해서 교수가 되었고 그렇게 해서 또 그 해 12월달에 한 나라당의 디지털 정당 위원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사모에게 패했기 때문에."

-그걸 또 하셔요?
"도전을 했죠. 왜냐면 평당원으로는 승산이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찌 됐든 간에 고위당직자로 들어가야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하여튼 정치를 하시기 위해 무수한 도전을 하셨고 도전의 결과로 어떻게 하다 보니깐 박근령 씨하고 결혼하게 됐어요. 그 당시에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세기의 로맨스를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선거를 출마했고 출마해서 붙었던 사람이 강용석 변호사하고 그다음에 고인이 됐습니다만 김명주 의원이 소장파 대리인으로 나왔고. 그렇게 해서 보니깐 서울대 법대, 또 다른 사람은 서울대 법대에 하버드까지 나왔어요. 상당히 기가 눌리죠. 그런데 문제는 후보 지원서를 내는데 보니깐 추천인란이 있어요. 또 고민이죠. 그 당시에 한나라당에 아는 분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추천란 전 어떻게 했을까요?"

-또 점찍었습니까?
"이번엔 난도를 높였습니다. 점을 찍기 어려웠죠. 그래서 제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2시간 만에 해답을 찾았죠. 이 세상에서 신동욱이라는 사람만큼 신동욱이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신동욱을 썼어요?
"네 그렇죠."

-자천이다.
"그렇죠. 그래서 당 서열 300위로 등극합니다. 중앙당 전국위원으로 선출됐어요."

-정말 입지전적 인물이네요. 보리쌀이 귀해서 고구마 먹던 산골 소년이 한나라당 당서열 300위까지 올라갔네요. 그 얘기 이야기하다가 14분 35초가 지나갔어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 당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 사건을 압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들어갈게요.
"아내 만나며 불행의 시작이었죠. 이제 정말 있을 수 없는 만남이 이뤄진 겁니다. 이 방송에서 말씀드리면, 제가 아내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아내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내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측이라고 하면 박근령 씨의 최측근일 텐데 정치인입니까.
"정치인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

-정치인이 박근령 씨가 우리 신동욱 총재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런 거였어요?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고. 아주 귀한 분이 만나고 싶어 하는데 시간을 내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약속장소를 정해서 갔는데 약속 3일 남겨두고 신용사회가 된 지가 언젠데,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다는 게 말도 안된다고 전화를 드렸죠.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신용사회가 된 지가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인적 사항도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 난 그 약속을 취소하겠다.' 난리가 났죠."

-한나라당 국회의원입니까.
"그 정도로."

-그 정도로.
"세 시간 뒤에 연락이 왔습니다. 제 아내 되는 사람이라고 연락이 왔었고. 전 만우절인 줄 알았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이후 제 아내 되시는 분과의 만남이 일어났고 이제 고통이 열렸지요. 그러고 2007년 2월 4일 날 관악산에서 산상 약혼식을 하지요. 약혼식이 본격적으로 드디어 내 운명을 틀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2007년 4월 중순 경이 지금은 고인입니다면 박용철 씨가 짱구파 10여 명을 데리고 육영재단으로 들어오죠. 그 당시 제가 감사실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첫 번째 폭행을 당했고요."

-2007년 4월에 짱구파 10여 명과 함께 들어온 지금 고인이 된 5촌 박용철 씨.
"그 짱구파 보스도 고인이 됐죠. 라면 먹다 천식으로 숨진 황 씨."

-그러면 박용철 씨하고 첫 만남, 친척인데?
"폭행당하면서 시작을 했죠."

-이유가 뭐였죠?
"박지만 씨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정용이 씨로부터 받은 장부에 의하면 '그 교수님(신동욱)은 사기꾼이라고 들었어요. 직접 만나보니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두 번째 만남을 가졌습니다. "

-언론에 따르면 박용철 씨가 왜 고소를 안 하십니까.
"제가 고소를 해야 될 이유가 없죠. 오해한 거니깐. 사람은 누구나 오해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해했다고 해서 그냥 들이닥쳐서 때리는 데 그걸 다 맞고. 그냥.
"그걸 고소하면 사내 자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몇 대 맞았다고 고소를 하면 그건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대인배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산상 약혼식 때 언론 보도를 보니깐 박근령 씨가 14만 원짜리 반지를 가지고 와서 끼워줬다?
"그건 잘못 알려진 거죠. 같이 반지를 구하러 갔죠. 제 기억으론 피카디리 극장 옆에 있는 두 번째 가게였고 사실 반지 가격은 15만 원이었습니다."

-14만 원이 아니라 15만 원.
"'제 아내가 1만 원만 빼주세요'라고 해서 14만 원."

-반지는 사장님이 가격을 깎아주셔서 15만 원이 아니라 14만 원이었고 종각 피카디리 역 두 번째 가게에서 사셨다. 만약 산상 결혼식을 안 했다면 지금 운명이 달라져 있겠죠?
"정치가 승승장구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시 38살에 여의도연구소에 디지털 자문위원장을 했습니다."

-박근령 씨가 처음 만났잖아요. 보자마자 사귀자고 들이댔나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저를 뵙자고 하는 사람은 보수 정당 한나라당에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혜성같이 나아간 사람이죠. 그런데 육영재단이 복잡한 사건사고들 이 부분을 도와줄 수 없겠냐고 제게 자문을 구한 겁니다. 그렇게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그때 사실은 처음으로 집에 가서 육영재단을 검색해봤습니다. 그리고 박근령 씨를 검색해봤습니다."

-보니깐 뭔가 도와줄 판단이 드셨던 겁니까.
"아닙니다. 이곳에 가면 정치적으로 사형선고인데. 그 정도 판단능력이 제가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 같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외면할 것이냐 아니면 목숨을 걸 것이냐. 후자 쪽을 선택했습니다. 왜냐면 정치를 한다는 게 결국은 약자편에 서서 힘든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는 게 정치인이 해야 할 기본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어찌 됐든 선상 약혼식하고 결혼하시고 짱구파 10여 명한테 한 차례 얻어맞으시고 또 맞으셨잖아요.
"그러고 나서 저녁에 회포를 풀었죠. 그러고 나서 5월 중순 경에 정화가 왔어요. 박용철 씨로부터요. 메시지는 이랬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가족이 됐으니까 큰고모 박근혜 고모를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저와 함께 중국에 재경부 장관을 만나러 가시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곳은 어딥니까 하고 되물으니까 칭따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빨간 불이 들어왔겠죠. 재경부 장관 어디 있겠습니까. 베이징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잘 알겠다고. 그래서 날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죠. 계속 크로스체킹 해야 되니깐. 6월 25일에서 27일까지 2박 3일이었죠. 그때 그 기간에 인도에 세미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대학원 동문들하고. 그래서 '그 기간에 갈 수 없습니다'고 제가 6월 30일에 들어온다고. 그러니깐 박용철 씨가 중국의 스케줄을 뒤로 밀겠다는 겁니다. 7월 2일에서 3일까지. 두 번째 빨간 불이 들어왔죠. 중국 재경부 장관을 제 스케쥴에 맞추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중국의 장관이잖아요. 부장도 아니고.
"그쪽에선 장관이라고 썼죠. 이름까진 확인은 안 했다. 그날 밤에 술자리에서 말하기로 '나는 사나입니다'. 나는 사나이를 좋아하니까요. 원샷을 하자고 해서 원샷을 많이 했죠. 첫 술자리였습니다."

-그래서 5월 중순에 두 번째 전화가 왔고 그래서 박용철 씨 만난 거네요.
"그래서 인천 공항에서 만났는데 당연히 박근혜 캠프 사람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김무성 대표라든지 그런데 정치인은 아무도 없고. 고등학교 친구 김상호 씨라는 분이 왔습니다."

-누구의 고등학교 친구죠?
"박용철 씨의 고등학교 친구죠. 그러고 세 번째 빨간 불이 들어왔으니까 육영재단 박병구 총무 부장께 이 사실을 알렸지요. 사실은 교수들과 중국에 출장을 가는 것이 아니라 박용철 씨와 함께 가는데 7월 1일부터 7월 3일까지 대한항공이고 20시 5분 밤 8시 5분에 도착하는 비행기인데 만약 그날 도착하지 않으면 중국에서 변고가 생긴 것으로 알고 신병보호요청을 해달라고 하고 중국으로 갔어요. 그러고 중국에서 사고가 났죠."

-이 정도 빨간 불이 켜지면 여기서 틀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고민했죠. 줄행랑을 칠 거냐. 공항에서. 아니면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갈 거냐. 후자를 선택했죠. 어차피 국내에서 계속 괴로움을 당할 거라고 파악했기 때문에."

-그전부터 국내에서 짱구파로부터 크고 작은 실랑이들이 좀 있었습니까.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정황에서 괴롭힘을 좀 많이 받았어요. 자 그래서 줄행랑을 칠까하다가 결국 호랑이 굴로 들어가게 돼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중국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차 부산횟집에서 식사를 하시고 2차로 가라오케 갔고 그 전에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우리 비행기는 위해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청도가 아니고 위해로 갔어요.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는 중국에서 대리석 회장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가 바뀐 겁니다. 대리석사업을 하는 사장을 만나러 오면 위해공항에 오는 차가 벤츠급은 돼야 하지 않습니까."

-궁금한 게 왜 청도 가면서 위해갑니까 라고 묻지 않았습니까?
"비행기를 탄 순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신념이란 게 무서운 겁니다. 위해공항에 내려서 차량이 아주 허름한 차량이었어요."

-어떤 차량?
"우리로 치면 페스토 같은 차량. 옛날 구형."

-아 그래요?
"그 차량 뒤에 3명이 탔으니깐 얼마나 비좁았겠어요. 그 위해공항에서 박용철 씨가 저에게 용돈을 주더라고요."

-공항에서요?
"네 비상금으로요. 중국 돈으로. 그런데 그걸 받는 순간 노잣돈으로 생각했습니다. 가는구나. 왜냐면 제가 중국 가는 데 비용을 준비를 안 하긴 했으니깐. 그래서 위해에서 청도까지 차량으로 3시간 반 걸립니다. 가는 길에 오늘 저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을 드시죠 하길래. 아하. 최후의 만찬이구나. 그래서 제가 부산횟집으로 가자고 한 겁니다. 원래 부산횟집은 원래 일정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횟집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가라오케로 갔습니다.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 겁니다."

-대개는 여기까지 가면 좀 '꺾어야 되겠다' 생각하거든요. 위험 시그널이 잡히면. 이렇게 박용철이라는 사람이 날 더러 중국에 재경부 장관을 만나러 가자고 한다.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박근령 씨에게 물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안 하셨어요? 부인하고?
"박용철 씨가 절대 작은 고모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모한테 말할 거니까요. 문제가 날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이 집안에 가족관계가 이렇게 복잡한지 몰랐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네 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리산 산골의 산골소년. 지금도 산골소년의 순수함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가족관계. 친인척 관계. 저는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이곳은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설정들이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놓친 것 중의 하나가 권력이 있었고, 돈이 있었던 거죠."

-평범한 가정이 아니지.
"우리 어머니께서는 제가 콩 한 조각도 나눠 먹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우리는 7남매지만 형제간의 우애는 정말 좋습니다."

-얼핏 보더라도 마약을 흡입하고 하는 현장을 보셨잖아요. 여기서 좀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안 드셨어요?
"나가려면 회칼이 옆구리를 찌를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죠. 그러니깐 속여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끊임없이 협력관계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안심할 게 아닙니다. 탈출해야 한다 결심을 했으니까요. 생수병에 양쪽에 빨대가 꽂혀 있었는데 그것을 전부 다 흡입을 했어요."

-그 안에는 뭐가 있었어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어요. 그게 마약이라더군요. 물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는 그 빨대를 잡았어요. 입을 대고 계속 호흡을 불어냈죠. 삼킨 게 아니라 불어냈죠. 그러니까 그대로 봤을 때 제가 마약을 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아 저 사람도 같이 마약 하는 사람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게. 그러니깐 믿어주던가요?
"그래서 중국에서 마약범이 된 거예요. 그래서 중국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죠. 이제 한국이 발칵 뒤집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두 번째 공작한 게 뭡니까. 중국에서 마약한 걸 우리와 같이했다. 그래서 마약으로 엮었다. 그런데 중랑경찰서 마약음모사건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를 국사수로부터 하지 않습니까. "

-안 나왔잖아요.
"완벽하게 속였죠. 하하하하. 그러니 공작은 실패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좁은 환기구로 탈출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치밀한 사람입니다. 계산했어요. 왜냐하면 두 다리를 엮어 옆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목이 걸리죠. 그래서 전 계산했어요. 어떻게? 고개를 순간적으로 옆으로 트는 겁니다. 그러니깐 쭉 빠져나가죠. 실패했으면 거기서 죽었겠죠."

-우주의 기운이 오늘만 통하는 게 아니라 그때도 통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어쨌든 살아나오셨는데 이게 벌써 2007년이니깐 10년입니다. 10년간 끊임없이 말씀하신 대로 공작이 있었고 그 공작이 실패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데 지난 4년간 총재님과 관련된 사건, 등장인물. 등장인물 6명이 모두 죽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중에 박지만 회장. 그중 수행비서 주 모 씨도 포함된 거죠?"
"포함돼 있죠."

-그 등장인물 이야기해 볼게요. 그 6명이 누구누구죠?"
"박용철, 박용수, 그분들과는 술좌석을 자주 했고요. 누구보다 박용철 박용수 중에 가족 중엔 재가 가장 많이 알지 않을까. 박용수 씨는 여성스럽고 섬세하고 파리 한 마리를 못 잡는 분이시고요. 그러니깐 박용수 씨는 살해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박용수, 박용철, 황 모 씨 라면먹다 돌아가신 짱구파 보스.
"황선웅 씨는 박용철 씨의 오른팔이지만 그림자 무사입니다. 박용철 씨가 있는 어느 곳에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운동을 해서 체격도 아주 좋고, 천식 이런 건 이야기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깐 이 분의 죽음도 의문이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용철 씨가 생전에 했던 얘기 중에 물론 저희들이 그런 녹취록을 갖고 있습니다."

-박용철의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요?
"'고모부 전 쉽게 당하지 않습니다. 저도 준비를 잘했습니다. 이름표를 많이 썼습니다.' 황선웅이 오른팔인데 오른팔에 정보를 많이 남겨두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난 그랬을 거 같은데요? 황선웅 씨는 너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황선웅 씨는 돈과 시간을 박용철 씨에게 줄을 댄 겁니다. 그런데 본인의 동아줄이 어느 날 싸늘한 죽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이후 1년 가까이는 술독에 절어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술에 의지해서는 당연히 그 사건 죽음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하겠죠. "

-인지상정이다.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걸 터뜨릴까 생각했을 거라 생각해요. 누군가는 두렵겠죠. 누군가는 두렵겠죠. 폭탄이 터졌을 때의 파장."

-박지만 회장의 주모 씨도 알던 분이죠?
"아는 정도가 아니고 제 사건 속에 늘 등장하는 인물이죠. 제가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이 2007년 11월 28일 날 오후 2시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2007년 11월 29일 그다음 날이죠. 그다음 날 아침 9시에 청담동 박지만 회장 집앞에서 10여 명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합니다. 그리고 감금돼서 많은 폭행을 당하죠. 그 현장에 주OO 씨도 있었습니다. 지금 고인이 됐죠. 그러고 나서 주OO 씨도 육영재단이 접수가 됐죠. 접수되고 난 다음에 EG비서실장을 했던 정용의 씨 그리고 주OO 씨 그리고 지금 민주당에 조응천 의원실의 비서관으로 가 있는 전인식 씨. 이분들이 육영재단에 취업을 하죠. 그렇게 해서 아는 사람들이죠. 그렇게 중요한 인물들이고.

그래서 2007년 7월 5일 날 구사일생하고 한국 들어오잖아요. 강남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들어갔을 때 육영재단 사람 중에 한 분에 제게 와서 폭행하려고 했죠. 그래서 자초지종을 묻고 사실확인서를 받았습니다. 사실확인서의 내용은 '주OO 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모두 왜곡된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당신을 폭행하려고 했다'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근거로 주OO 씨와 통화를 하죠.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영남대 법대 출신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으니 어떤 기관원이 EG로 와서 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서 기관이 누구냐고 물으니 기관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르게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사법처리한다고 하니깐 '알아서 하시라'고 하더라. 그걸 근거로 주OO 씨가 사건의 증인으로 나서게 됩니다. 법정에 나오죠. 그런 일입니다."

-그 이를테면 이 주 씨의 경우에는 박지만 회장이 EG 혹은 육영재단에서 신동욱 재판의 반론을 하기 나온 거죠?
"고인이 됐습니다만 많은 부분에서 위증이 많습니다. 전인식 씨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 드리면 전인식 씨도 정치하는 분이 됐고, 국회 비서관으로 가 있으니까요 저는 공개적으로 전인식 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 당시 EG에 근무했던 분인데 야밤에 육영재단에 들어와서 육영재단 총무실에 컴퓨터를 다 가져나갔습니다. 그것 절도 아닌가요?"

-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어요.
"확인해주세요. 육영재단에 몰래 밤에 침입해서 컴퓨터를 갖고 나갔다."

-이게 확실한 팩트입니까. 확실한지 검증이 필요합니다. 전 보좌관으로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육영재단 직원도 아닌데 밤에 들어와서 물건을 들고 나가면 절도죠. 그런데 그 당시에 고소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 그 사건 고소했지만 그냥 유야무야 끝났습니다."

-2007년에 유야무야 끝난 건가요?
"2008년입니다. 전인식 씨도 공인이 됐으니깐 공개적으로 해명 부탁드립니다."

-조응천 의원실의 전인식 보좌관과 관련된 말씀을 주시는데. 정리를 해보면 2007년, 2008년 당시에 박지만 회장의 회사인 EG의 직원이었고, 육영재단에 들어와서 총무실 컴퓨터를 들고 갔다. 고소를 당시 육영재단 측에서 한 거죠? 그런데 그 사건이 유야무야됐다. 이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 전 보좌관이 확인을 해줬으면 좋겠다가 신동욱 총재의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대해 반론을 들어봐야 하기 때문에, 전인식 보좌관에게 반론권을 드린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하튼 주 모 씨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가 전인식 보좌관 이야기까지 나온 거예요. 재판 과정에서 신동욱 총재 사건 이른바 중국 사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해왔어요. 물론 이 분이 경찰에선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를 하고 있고, 독극물 문제나 약물과 관련해서는 결과가 나오는데 2주가 걸리니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이런 상황입니다. 이 죽음에도 의문이 있다. 그렇게 보시는 겁니다.
"일단 무엇보다도 유족들이나 주변에 가까운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혈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심각해서 약을 복용했다는 게 없습니다. "

-전혀?
"전혀. 그런데 결론은 그렇게 났어요. 국과수 발표를 믿어야죠. 국과수의 발표니깐.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이상하죠. 증거는 없지만. 그죠? 지금까지 경찰에서 발표한 것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은 너무 많이 왜곡돼있고 틀어져 있죠. 우선 국가수의 발표가 사실이길 바랄 뿐입니다."

-주 모 씨 빈소도 다녀오셨나요?
"가지 못했습니다. 갈려고 방문계획을 알렸는데 유족 측에서 반대했죠."

-반대 이유는요?
"제가 SNS에 올린 글들에 대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슬픔에 적어계실 분들이 제 SNS 글을 읽을 시간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정확하게 유족의 뜻인지 확인됐나요?
"확인됐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이 된 이후에 고향 집에 정체불명의 남자 두 명이 찾아왔다. 그분들은 확인이 됐습니까.
"확인됐지 않죠. 그 날이 토요일입니다. 토요일날 경찰들이 우리집에 올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 그리고 경찰이면 당당하게 신분증을 보여줘야죠."

-그런데 신분증도 없고 무슨 이유로 고향 집에 왔다고 하던가요?
"그냥 이것저것 두리번두리번."

-가족들에게 뭘 묻거나 한 건 아니고요?
"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요. '가족들은 10년 전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민하게 동향을 파악할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박용철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탑골공원에서 막걸리를 마시잖아요. '고모부 탑골공원에서 막걸리 해결하십니까'. 난 탑골공원에서 막걸리도 해결하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요. 그런데 '화장실 갔다 오고 난 뒤에는 따져있는 막걸리는 버려야 합니다'하는 겁니다. 아까운 막걸리잖아요. 어떻게 버립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한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막걸리에 약을 탔을 경우에 난 마약을 한 게 된다는 거죠. 그중에 누군가가 경찰에 가서 자수한다는 겁니다. 제가 마약을 했는데 신동욱 총재와 함께했거든요. '막걸리에 타서 먹는 걸 봤어요'라고 말하면 제가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중랑경찰서 마약 음모 사건입니다."

-제가 궁금한 거는 신동욱 총재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공작을 통해서 죽음에 문턱까지 미뤄놓는다고 보십니까. 벌써 10년이기 때문에 의도가 무엇인지는 간파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초반에는 박근령 씨와 결혼한 이를테면 뭘 노리고, 권력과 돈을 노리고 온 사기꾼이라는 인식이 가족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세월을 보내면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게 확인될 수 있잖아요.
"놓친 게 있어요. 가족들이나 그 주변 세력들은 제 아내가 집도 절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돈을 노리지 않았단 걸 너무도 잘 압니다."

-정두언 의원에 따르면 박근령 씨가 출연료 때문에 종편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짚이는 게 제가 정치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한 예로 말이죠. 나는 이정현 의원께 공개질문 하겠습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께?
"2009년 10월 13일 제가 결혼식 할 때 이정현 의원이 언론사 기자들에게 제 처형되시는 박근혜 당시 당 대표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보도자료를 뿌립니다. 누구에게 지시를 받은 건지. 박근혜 대통령 직접 지시를 받으셔서 하신 건지. 아니면 최순실 씨에게 지시를 받아서 하신 건지. 나는 공개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언니가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그렇게 언론사 기자들에게 그 이유까지 배포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어떤 답이 있다고?
"그 내용 잘 찾아보세요. 그 기사요. 조중동부터 대한민국 언론이 다 다뤘어요. 그 내용이 그것을 박근혜 대표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시면 앞으로 더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거기서 난 해답을 찾고 싶어요. 거기에 만약 참석한다 그러면 당연히 전 정치를 한 사람이니까 권력의 추가 제게 온다고 판단하지 않을까요?"

-권력의 추가 선생님에게 쏠리기에는 체급의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박근혜 대표와 신동욱 총재 사이에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배후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방송을 통해서 진범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죽음 배후의 죽음. 유령입니다."

-하하하. 긴장했어요
"아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면 많은 시청자들이 '아 뭐야' 이럴 거예요. 제가 어제 모 방송에서 박지만 회장에게 사과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박지만 회장이 범인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추적한 바에 의하면 진범의 근사치에 와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령이라 표시한 것은 그분들도 아닐 수 있다. 그게 두려운 겁니다."

-진범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그렇죠. 그것마저 그들이 트릭을 쓰지 않을까. 또 한 번의 함정을 파지 않을까. 제가 진범을 공개하면 허위사실 유포로 1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요즘엔 유령들과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웃었지만 유령의 느낌이 전달되니깐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박지만 회장이 5촌 조카 살인사건에 대해 억울해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요. 취재하는 기자나 PD들에게. 왜 박지만 회장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법정에서 증언을 했으니까요. 2010년 9월 1일. 박용철의 법정증언입니다. 그 법정증언이 없었다면 박지만 회장, 정용희 씨, 박용철 씨를 제가 세 사람을 고소합니다. 중국사건으로. 박지만 회장께서 저를 무고로 고소할 것이 아니라 박용철 씨나 정용희 씨를 제게 고민했어야 합니다. 국정증언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두 분에게는 전혀 아무런 법적 조처를 하지않았습니다. "

-오로지 신동욱 총재에 대해서만.
"네. 실질적으로 만약에 무고로 고소를 걸어야 된다면 박지만 회장이 제게 걸어야 될 게 아니고 박용철 씨가 제게 걸어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박용철 씨도 안 했잖아요? 이게 합리적 의심 아닌가요?"

-이제 와서 사과한 이유는 뭡니까?
"빗나간 거죠."

-빗나갔다고 본 포인트는 뭐죠?
"정용희 씨는 그 당시 EG 비서실장을 명함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정용희 씨는 박지만 회장의 사람이 아니라 정윤회 사람이라고 복수의 사람으로부터 증언을 받았습니다. "

-정용희 EG비서실장은 박지만의 비서실장이 아니라 정윤회 사람이다. 복심이 있다 이건가요?
"삼성동의 사람이다."

-그럼 박 대통령의 사람이다, 이런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은 아닌 거로 파악하지마는 최순실 씨가 정윤회 씨의 사람이라는 것은 복수의 증언자로부터 들었습니다."

-확실한가요?
"증언까지 들었습니다."

-체크포인트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확신이라고 하면 제가 함정에 빠지겠죠. 지금부터는 돌다리라도 두드립니다. 두 번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흥미진진한 상황인데요. 너무 짚어야 할 내용이 많은데요 시간은 지금 막 56분 57초 흐르고 있어서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나하나 여쭙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대하드라마죠. 1부작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죠."

-지금 이 소송에 최순실 권력 그러니깐 신총재님 사건에 최순실 권력이 개입해 있다고 보십니까?
"저희들 사건은 말이죠. 저는 강한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목에서 그렇죠? 합리적 의심이라면 말씀해주세요.
"복수의 증언자로부터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2007년 11월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 때 그 현장 때 최순실, 정윤회 씨가 왔다는 이야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실제 누가 왔는지 증거로 입증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 현장에 있던 핵심 멤버들의 증언입니다."

-육영재단 직원들의?
"직원 아니고 그쪽 사람들 증언입니다."

-그쪽 사람들이라면?
"우리 반대파 진영의 사람들입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것만으로 폭력사태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한나라당 사람들, 박근혜 대통령, 박근령 씨 등 관계자가 많았을 건데요. 한나라당 버스까지 육영재단 사태 때 나왔을 텐데요.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신동욱 살해 위협사건에 개입됐다고 보긴 어려운 것 아닙니까. 더 구체적인 단서나 증거가 있을까요.
"아직 거기까진 약하다고 봐야 될 것 같고요. 하지만 지금 추적하고 있으니까요.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또 단독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정윤회 말고 또 다른 사람은 누가 왔습니까? 육영재단 사태 때.
"그 이야기 하니까 얼마 전에 최재석 씨하고 한 시간 동안 통화했어요."

-최재석 씨는?
"최태민 씨 아들이죠. 최재석 씨에게 제가 최태민 일가가 육영재단에 개입하지 않았냐 물어봤죠.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최 씨, 임 씨, 서 씨, 장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전부 인척으로 보면 됩니다'라고 하더군요."

-좀 어려워요.
"그 당시에 들어왔던 사람들, 그 명단에, 최 씨, 장 씨, 서 씨, 임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인척으로 보면 된다고 보면 되겠죠. 임 씨 성은 임선이 씨와 연관이 있겠죠."

-임선이 씨가 최태민 씨의 다섯 번째 부인이죠?
"부인이죠. 최 씨는 최태민과 최순실 씨와 관계가 있겠죠. 그다음 장 씨는 최순득 씨 남편이 장석칠 씨입니다. 그분과 관련이 있겠죠. 서 씨는 최순천 씨 남편 서동범 씨의 인척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임 씨와 관련해서 임순이 씨 말고 당시 한센인들 동원하고 했던 장본인 있지 않습니까. 임두성. 임두성 씨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이 되잖아요. 임두성 씨와 임순이 씨와의 관계가 있나요?
"인척이라는 것까지 나온 게 있습니다. 확인은 안 됩니다.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 씨 일가가 육영재단 사태 때도 상당히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증거가 있다. 특검이 수사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제 판단은 이 사건은 특검이 파헤쳐도 과연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건 아니고 진범이 유령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요. 일반 경찰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특검에서는 5촌 조카 살인 사건도 들여다보고 있고, 최태민 일가의 재산형성 과정도 들여다보고 있다. 독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재단뿐 아니라 차명계좌뿐 아니라 관리하고 있는 재산총액도 특검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긴 나오고 있다. 관련돼서 혹시 특검 측에서 진술해달라고 요청받은 적은 없으세요?
"아직은 연락받지 못했고요. 조만간에 연락이 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은 많이 듭니다."

-박근령 씨하고 박지만 씨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잖아요. 우리 언니를 최태민으로부터 구해달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전해 들으신 게 있습니까? 부인으로부터?
"당시 <오마이뉴스>만 기사화했죠. 제 아내는 그 내용에 대해서 본인이 듣고 경험한 이야기들은 진솔한 자필 기록이기 때문에 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심각한 문제가 뭐라고 판단했다는 겁니까 부인께서는? 재산관리의 문제, 종교의 문제 여러 문제, 최태민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가 조순제 녹음파일에 따르면 19금이다. 등 수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뭐라고 보시나요? 부인께서는?
"정두언 씨의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사실과 다르다는 건가요?
"사실과 다릅니다."

-어떤 부분에서요?
"지금까지 제 아내가 지켜본 언니의 인품을 봤을 때 아니라는 겁니다."

-뭐가 아니라는 건가요?
"정두언 씨가 말한 부분요."

-19금 이런 건 아니다. 그러면 어떤 점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 건가요? 왜 그럼 최태민하고 떼어달라고 했던 겁니까?
"최태민 가족이 언니를 속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그 부분을 걱정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게 현실화됐죠."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최태민 최순실로부터 속아서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보기에는 지금 여러 언론을 통해서 그리고 검찰의 조사를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삼성 뇌물과 관련된 내용에도, 직접지시한 내용 그리고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 등을 보면 대통령의 지시나 이런 것들이 확인이 되고 있잖아요.
"우리 시청자들께 제가 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 집안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분들의 삶이 우리 일반 사람들, 평범한 집의 사람들의 삶하고는 제가 확인한 바에 다르면 너무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돈과 권력 때문에 벌어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자라온 환경이라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분들의 자라온 환경은 특수한 환경에 자라왔지 않습니까. 특수한 환경에서 보고 느낀 것. 그게 우리 같은 평범한 일반인들의 사고하고는 분명히 괴리감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건 제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를 하는 편입니다. 같이 생활하는 사람 아닙니까. 전 이해를 하고 국민들의 관점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어찌 됐든 그와 별개로 특검에서 수사 중에 있기 때문에 관련된 내용이 확인이 될 거라고 보고요. 궁금한 것 중 하나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유라씨 있지 않습니까. 덴마크 구금시설에 구금돼 있는데 정유라 씨가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이다. 정유라가 귀국하면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 사실에 자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어요. 정유라 씨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사실이 있습니까?
"전 이번에 처음에 알게 됐고 안민석 의원이 표현은 조금 다르게 접근하는데 정유라 씨가 최순실 씨에겐 역린이 될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에게 역린이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은 제가 되겠죠."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은 신동욱 총재다?
"제가 지난 이 사건을 파헤치려고 10년 동안 노력하지 않았고 수없이 많은 죽음의 문턱에서 용기를 잃고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른 것 빼고 실체적 진실만이 박근혜 대통령을 돕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썩은 환부는 도려내야 합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지요. 차이점은 그건 것 같아요. 이 사건의 정면에 서는 걸 아내는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이 사건이 드러나는 게 언니를 지키는 길이고 박정희 대통령 가문을 지키는 일로 판단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알려드리려 합니다. "

-지난 10년간 죽음 무턱까지 갔지만 사건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과 박정희 가문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면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만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죠"

-최순실 씨, 정윤회 씨 두 축이 있다고 본다면 이를테면 문고리 3인방 등 라인을 동원해서 이 사건의 수괴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충분한 개연성은 있지만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개연성은 있습니다."

-말씀이 길어지면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제게 교훈을 줬죠. 1년 6개월 옥살이를 시켰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 꼭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순실 씨가 징역살이하고 있는데 제소자들에게는 원래 생수 한 병만 살 수 있는데 최순실 씨는 여러 병 사고 하루에 4만 5천 원 이상 영치금을 쓰더라고 하다가 한 사람이 다른 구치소로 옮겼다고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옥중옥이라고 구치소 내에 또 감옥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케이습니다. 이상득 전 의원은 특별면회만 102회 했답니다. 전 1년 6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청 안 했을까요? 서울구치소 가면 죄명마다 분류가 됩니다. 폭력사범, 공무원사범, 마약사범, 잡범은 잡범끼리 그런데 말이죠. 전 사회면을 장식했던 살인전과 그분들 방에 저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음모가 있다?
"'교수님은 우리방이 아니다' 그분들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8개월 동안 우리가 말하는 뺑기통이라고 하죠. 그곳에서 잡니다. 그분들이 그랬습니다. 그분들이 이해해달라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접시닦이도 8개월 했습니다. 그렇게 옥중옥 생활을 8개월 동안 했습니다. 이 방송에서 처음 말씀드리는데 제가 상고를 포기했지 않습니까."

-이유는 뭔가요?
"이유는 가족입니다. 2012년 8월 16일 날 항소심 선고가 내려집니다. 항소심 때 전 정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1심 판결문에 어떻게 적혀있나면 박용철 씨가 법정에 증언한 게 없다고 했습니다.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언한 사실이 없다고 돼 있습니다. 항소심에는 증인심문조서만 첨부해서 보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연히 첨부했죠. 그런데 그게 사라진겁니다. 그리고 청담동 납치테러사건, 중랑경찰서 마약미수사건, 중국살인사건에 박근혜 대통령이 묵인하고 뒤에서 조정했다는 거에 대해서 원고는 단 한 번도 소명한 사실이 없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게 항소심 판결문입니다. 그래서 중앙지법에서 과천 서울구치소 가는 호송차량에서 난 여기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재판을 통해 남겨둔 이 사건들 내가 후대가 밝혀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각 이후부터는 대선이 4개월 남았기 때문이 박근령 씨와 혼인관계, 즉 가족의 도리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제가 포기합니다. 만약 제가 상고하면 위험해질 수 있어요."

-박근령 씨와 결혼하고 박근혜 대통령하고 식사 한 끼 한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박지만 씨랑 은요?
"없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인데 불러서 밥 한 번 안 샀다는 것인가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우리 부부만큼 그랬을 것 같지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은 박지만 서향희 부부에겐 불러서 밥도 먹고 했던 것 같은데 왜 밥 한 번 안 샀다고 생각하세요?
"저를 무척 아끼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껴서 밥 한 번 안 샀다?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에게 물들이면 되지 않는다. 우리 제부는 다른 건 모르지만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네요.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겠습니다.
"상고 포기한 것 있죠. 상고 포기한 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난 여기 관련해서 네티즌 수사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군대에 가서 제대날짜를 받으면 그날이 제대날짜입니다. 2013년 1월 달에 법무무로부터 출소날짜를 받습니다. 2013년 2월 18일입니다. 그런데 출소를 열흘 앞두고 법무부에서 출소날짜가 변경됐다고 나옵니다. 통상적으로 출소날짜가 앞으로 올까요 뒤로 밀릴까요?"

-앞으로 밀리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 뒤로 밀렸습니다.
"뒤로 3일이 밀립니다. 저는 상고를 포기했지 않습니까. 상고를 포기하면 검찰에서 상고를 안 합니다. 그런데 검찰에서 상고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대법원에서 2012년 11월 29일에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습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을 경우 생각하면 전 가석방 대상자가 되지 않습니다. 초범은 99% 가석방 대상자입니다. 구치소에서 사고 치지 않는 이상. 전 가석방에서 빠집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3개월 전에 났다는 겁니다. 다시 통고가 온 것은 확정판결일이 변경됐다는 겁니다. 그게 항소심을 포기한 날. 상고를 포기한 그 날. 8월 16일날 확정 판결이 났다는 겁니다. 확정 판결일이 3개월이 더 당겨져야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당겨져야 되는데 뒤로 밀립니다. "

- 저희가 신동욱 총재로부터 받는 공문이 있습니다.
"그들이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전 가석방으로 12월 초에 나옵니다. 나오면 폭탄이 터질지 모르니 어떻게 하든 묶어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 당시 대검에 어떤 분이 있었는지."

-그 당시에 누가 있었다고 보세요? 누구를 의심하세요?
"중앙요직에 누가 있는지. 누가 요즘 TV와 방송에 많이 나오더군요."

-왜냐하면 윤갑근 검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거든요
."아직 더 나와야 돼요. 확정적으로 밀어붙이다가는 감옥 들어갑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최대한 말씀을 삼가는 거로. 정윤회 씨가 오늘 동아일보에 보도된 내용도 있고, 월간중앙 인터뷰도 있어요. 월간중앙 인터뷰는 사람들이 '이게 뭘까'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최순실 씨와의 이혼은 질투 때문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약한 여자였고 충신과 가신을 구분하며 본인은 충신이고 최순실 씨는 가신이다라고 뉘앙스를 풍겼어요. 정윤회는 어떤 사람이고 그 집안 문제에서 차지하는 포션은 어느 정도였는지? 왜냐면 육영재단 폭력사태 때도 정윤회 씨가 있었다는 게 어제 보도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정윤회 씨는 치밀합니다. 기획자다. 그 정도까지는 들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치밀하게 계획한다는 거죠?
"단순한 계획과 치밀한 계획은 다릅니다."

-아침에 웃으면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지금까지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가 40년이 넘었고 40년에 적폐가 이번에 해소되지 않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은 어렵다라는 촛불민심의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찌 됐든 박근령 씨와 인연을 맺어서 지난 10년간 이른바 박씨 일가를 들여다봤을 때 평범한 가정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이야기해주세요. 지난 10년간 진실을 추적해오셨는데.
"국민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 드리면 오해할 수 있는데, 끊임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그짓을 바로잡겠다고 싸웠던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1년 6개월 옥살이까지 했고. 지금은 생계가 어려워서 공사현장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굳이 제가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아내와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 평범하지 않은 집안의 이야기들. 저는 이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한국 사람은 된장과 김치를 먹어야 하죠. 이 부분의 자라온 환경은 이해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보며 박근혜 대통령을 늑대 아이에 비유했습니다. 한겨울 숲속에 갓 태어난 아이. 삼남매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곳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고 갓 태어난 삼남매는 얼어죽습니다. 지나간 늑대가족들이 큰 아이만 물고 간 겁니다. 나머지 두 아이는 사회적으로 매장된 겁니다. 40년간 늑대가족이 아이를 키웠어요. 40년 후에 그 아이는 어떤 행동을 보일까요. 불행한 겁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그럴싸한 비유다.
"난 그렇게 봐요. 책임질 건 책임져야죠. 하지만 40년 동안 늑대에게서 키워진 그 아이가 인간의 흉내를 내면 무리한 것 아닌가요?"

-결국 그 아이도 늑대가 되죠.
"그게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국민 여러분들은 늑대아이를 인간의 세상으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돌팔매질하기 전에 인간의 세상으로 마지막 일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고 봅니다."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이죠."

-책임질 건 책임지고 다시 사회로 돌아왔을 때 사회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렇죠."

-박근령 씨는 생계가 어려운데 언니한테 도와달라고 하고 싶을 것 같아요?
"제 아내는 언니 전화번호가 없습니다."

-지난 청와대에서 나온 다음에 가족이라 보기 어려운 채로 살았다 볼 수 있겠네요?
"전 생물학적으로만 가족으로 봅니다."

-어릴 때 같이 컸잖아요.
"아내의 자리를 최순실 씨가 빼앗아간 거죠."

-모르겠어요. 특수한 환경이라고 하니깐 전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최순실 씨가 찾아와도 전 동생을 먼저 챙길 것 같은데. 사람이기 때문에. 좀 이해가 안 가요.
"늑대 아이의 4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저희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와 얽힌 40년사를 지난 신동욱 총재의 말도 안 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해 위협까지 포함해서 한번에 다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봅니다. 적어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잡을 수 있다고 보고요. 사건을 분절화 해서 더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한 말씀 부탁합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받은 상처, 분노. 저 역시 마찬가지고. 저 역시 촛불집회 다녀왔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실망 이해합니다. 그 가족 구성원으로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국민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분들이 자라온 독특한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해줬으면 하는 가족의 바람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대화에 심취해 많이 읽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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