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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행기스님은 일본 전역에 49곳의 사원을 짓고 제방 15곳, 항구 2곳, 다리 6곳, 빈곤자를 위한 숙박시설 9개 등을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로 가기 위해 도쿄에서 특급으로 한 시간여 달려가 내린 자마역(座間驛)은 한적한 소도시 역이었다. 역에서 내려 길을 묻고자 해도 지나는 행인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곳에 성곡사는 자리했다.

나이테로 보아 수백년은 족히 보이는 나무 뒤편에 있는 성곡사 본당
▲ 성곡사 본당 나이테로 보아 수백년은 족히 보이는 나무 뒤편에 있는 성곡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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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유명한 고승 홍법대사 동상
▲ 홍법대사 헤이안시대 유명한 고승 홍법대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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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동33소관음순례 제8번(坂東33所觀音巡禮第八番) 도량인 성곡사는 일본 최초로 대승정의 칭호를 받은 백제계 출신 행기(行基, 668~742)스님이 개산(開山)한 절이다. 행기스님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겐코샤쿠쇼(元亨釋書)>에는 행기스님을 백제국왕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釋行基世姓高志氏。泉大鳥郡人。百濟國王之胤也。)

행기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나라 야쿠시지(奈良 藥師寺)에서 신라승 혜기(慧基)와 백제계 의연(義淵)스님에게서 불도를 닦았으며 스물네 살에 덕광법사(德光法師)에게 구족계를 받고 덴표 17년(745)에 대승정 자리에 오른 일본의 고승이다.(초대승정은 고구려 혜관스님이고 행기스님은 이후 대승정으로 활약). 이후 민중 속에서 불교의 보살행을 실천하다 81살의 나이로 스가와라지(菅原寺)에서 입적한다.

나라시대 뛰어난 고승들이 많았지만 행기스님만큼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승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타행(利他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행기스님은 조정으로부터 두 번에 걸친 대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30대부터 사회 구제사업에 뛰어들어 저수지를 만들고 다리를 놓으며 빈민 구제활동에 앞장섰다.

대개는 산문을 지나 본당이 있지만 이곳은 본당을 지나 산문이 있다
▲ 산문 대개는 산문을 지나 본당이 있지만 이곳은 본당을 지나 산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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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당 앞의 관세음상
▲ 관세음상 묘법당 앞의 관세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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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스님에 대한 인물평으로는 데라오카 요(寺岡洋)의 <행기와 도래인문화(行基と渡来人文化).2003>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둘째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기 위한 양로원과 고아원을 만들었고 셋째 죽음에 이르는 나이가지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넷째 정부의 탄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고 다섯째 정부는 결국 행기 집단을 인정하여 활동을 보장했다."

어제 찾은 가나가와현 자마시에 있는 성곡사도 행기스님이 창건한 절 가운데 하나로 평생 행기스님은 일본 전역에 49곳의 사원을 짓고 제방 15곳, 항구 2곳, 다리 6곳, 빈곤자를 위한 숙박시설 9개 등을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미즈다니 고쇼(淸水谷孝尙)가 지은 <판동33소관음순례(坂東33所觀音巡禮)>에 보면, 관동33개 순례절 가운데 무려 8개의 절을 행기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나온다. 행기스님 창건 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번 순례절인 가나카와현의 삼본사(杉本寺, 스기모토데라)를 시작으로 제2번 암전사(巖殿寺, 간덴지), 제6번 장곡사(長谷寺, 하세가와데라), 제8번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 그리고 요코하마시에 있는 제14번 연화원홍명사(蓮花院弘明寺, 렌게인 구묘지), 도치기현의 제20번 서명사(西明寺, 사이묘지), 이바라기현의 청룡사(靑龍寺, 키요다키지), 치바시의 제29번 천엽사(千葉寺,센요지), 제33번 나고사(那古寺,나고지)다.

 판동(관동) 제8번 사찰 성곡사 안내판에 행기보살 전승이 기록되어있다
▲ 성곡사 안내판 판동(관동) 제8번 사찰 성곡사 안내판에 행기보살 전승이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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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곡사 안 아기 지장보살상
▲ 아기 지장보살상 성곡사 안 아기 지장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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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인데도 절 안에는 납매화,수선화 등 여러가지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 납매화 한겨울인데도 절 안에는 납매화,수선화 등 여러가지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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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행기스님 사후 1200여년이 지난 지금 행기스님이 지은 절이라고 생겨난 절이 전국적으로 무려 4100곳으로 늘어나 있다는 점이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薫)의 <행기 관련 사원>(行基ゆかりの寺院), 1997)에 따르면 위로는 홋카이도 가이후쿠지(海福寺)서부터 남으로는 오이타의 호카이지(寶戒寺), 미야자키의 젠초지(全長寺)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행기와 관련 있는 절이 있다는 것이다.

행기스님 사후에도 행기스님이 창건한 절이 늘어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원효스님이 지은 절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행기스님의 명성이 일본 내에서 독보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성곡사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군마현의 미즈사와절(水澤寺)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조용했다. 주지스님에게 미리 연락을 안 하고 간 것은 미즈사와절(水澤寺)과 달리 행기스님이 창건한 관동의 8곳을 비롯한 전국 49곳의 절은 이미 고대문헌에 명확한 기록이 있는 터라 구태여 주지스님에게 절의 창건에 관한 것을 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초 하츠모우데(初詣, 새해맞이 기도)로 모든 절들이 바쁜 철이라 주지스님의 면담은 피하는 게 좋다는 나름의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이곳 성곡사가 자리한 자마시 일대에는 고분시대 유적이 많은 곳으로 일찍부터 고대문화가 꽃피던 곳이다. 현재의 성곡사는 행기스님의 창건(729~49) 이래 번창하다가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1185~1333)의 병란(兵亂)으로 가람 대부분이 불탔으며 이후 사가미(相模) 벌판의 큰불로 관음당이 전소되는 등 여러 번 화마를 입었다. 그러나 1227년에 주조된 범종은 동일본 최고(最古)의 것으로 가마쿠라시대에 병란을 겪기 전 성곡사의 번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가마쿠라 때 만든 동일본최고의 범종
▲ 범종 가마쿠라 때 만든 동일본최고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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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사 7대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고목은 죽어 잘린 상태로 본당에 모셔져 있다.
▲ 고목 성곡사 7대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고목은 죽어 잘린 상태로 본당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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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범종을 비롯하여 성곡사에는 7대 불가사의가 전하는데 받침대가 하나인 범종(보통은 두개임), 뿌리가 거꾸로 매달린 고목, 관음초(草), 별이 보이는 우물, 꽃잎이 낱장으로 떨어지는 동백(동백은 꽃이 질 때 꽃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진다), 녹나무 화석, 사철 피는 사쿠라(벚나무) 등이 그것이다.

"오늘은 딸 내외와 함께 참배를 왔지요. 해마다 연초에 가족과 성곡사 참배를 합니다. 선조 무덤도 절에서 관리해줍니다."

절 근처에 산다는 기무라씨(木村, 62살)는 딸 내외, 손자와 함께 성곡사를 찾았다며 기자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그러나 성곡사를 둘러보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자마역에서 길을 묻는 기자에게 같은 방향이라며 친절한 길 안내를 해준 하시구치(橋口)씨 부부는 "성곡사 참배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번잡한 도쿄에서 살다가 30여 년 전에 조용한 자마시로 이사 왔는데 정초에 신사(神社)나 절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낮에도 별이 보인다는 성곡사의 오래된 우물 앞에선 기자
▲ 우물 낮에도 별이 보인다는 성곡사의 오래된 우물 앞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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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짧은 이십여 분 간 열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 하시구치 부부는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남편인 하시구치씨는 경주의 불교유적지를 보러간 적이 있다며 짧은 이별을 아쉬워했고 아내는 가방에서 일본의 옛 노래가 담긴 테이프가 있다며 선물로 건네주었다. 물론 기자가 행기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일부러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학교에서 어린시절 행기스님에 대해 배웠다"며 "행기스님이 백제 출신이라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가나가와현 자마시에 자리한 아담한 규모의 백제계 행기스님 창건의 성곡사는 정초를 맞아 단가(檀家, 무덤과 제사를 맡아 해주는 것) 손님들만 조용히 다녀가는 그리 번잡하지 않은 절이었다. 현대풍의 깔끔하게 정돈된 절 경내를 둘러보면서 천여 년 전 세월의 무게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절이 들어선 땅만은 옛 그대로라고 생각하니 즈믄 해의 시간도 바로 어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제계 행기스님의 유서깊은 절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 가는 길
  * 주소: 神奈川県座間市入谷3-3583
  * 전화: 046-251-2266
  * 가는 길: JR야마노테선(山水線) 신주쿠(新宿)에서 오다큐선(小田急線)급행으로 27분 간 뒤 신유리가오카역(新白合ケ驛)에서 갈아타고 22분 가서 자마(座間驛)에서 내려 10분 정도 걷는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성곡사, #행기스님, #백제, #가나가와현, #혜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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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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