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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했다가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쯤으로 본다'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짧은 해명만 내놓았을 뿐, 아직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다.

행자부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여성단체만 항의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도 '출산지도'를 비판했다.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상복을 입고 홍윤식 행자부 장관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할머니와 확성기를 든 채 건물을 나서는 공무원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할아버지까지.

정부서울청사 후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시위지만, 이곳은 시민들이 정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광장이었다. 여기서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항의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볼 수 있었다.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행자부의 출산지도 폐기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정부서울청사 앞 릴레이 1인 시위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행자부의 출산지도 폐기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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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는 오늘이 처음이라는 김태형(28)씨. 그는 시민단체 활동가이거나 정당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김씨는 보통의 20대 남성이다.

"출산지도를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주위에선 이 문제에 대해 웃고 넘기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심지어 행자부에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요. 그래서 제가 마침 시간이 맞아서 시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행자부의 '영혼 없는' 수정 공지문은 많은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진심 어린 사과는 없고 변명만 있는 행자부의 수정 공지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씨는 "지금 행자부에서 나온 수정 공지문에는 반성하는 태도가 안 보여요. 행자부에서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정부서울청사 앞은 식사하러 나온 공무원과 직장인들로 붐볐다. 김씨는 "관심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가끔 읽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내용에 대해 농담하면서 가는 사람도 있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한 1시간 동안 꿋꿋이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이 시위를 본 시민 류지민(24)씨는 "여성이 아이 낳는 기계도 아니고 출산지도를 보면 저출산의 책임을 여자한테 떠넘기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또 시민 이용주(30)씨는 "무척 상식에 어긋나고 권위적인 행정처리라고 생각한다"며 "숫자를 집계하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사육한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엔 깊이 공감하지만, 절대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문제다.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촛불 계기로 SNS 모임 시작...출산지도 항의, 이랜드 불매로 확장

행자부가 발표한 출산지도의 폐기를 촉구하는 '시민불복종행동'의 시위 피켓이다.
▲ "출산강요에 불복종 합니다!" 행자부가 발표한 출산지도의 폐기를 촉구하는 '시민불복종행동'의 시위 피켓이다.
ⓒ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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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참여한 출산지도 항의 1인시위를 조직한 곳은 '시민불복종행동'이란 모임이다. 이 모임은 여성단체도, 영리단체도 아니다. 지난 연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 그중에서도 '비폭력 프레임을 넘어 불복종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한 시민들이 카카오톡 대화방에 참여해 자유롭게 토론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 모임의 출발점이다.

이 모임은 매주 촛불집회에 자신들의 깃발을 들고 참여하고 있고,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선 청와대 방면 행진을 원천봉쇄한 경찰에 항의하는 뜻으로 국화꽃을 던졌다. 12월 31일 '송박영신' 촛불집회에선 '부역자들에게 돌팔매질하기' 이벤트를 열어 많은 시민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이 모임은 아르바이트비 84억 원을 미지급한 것으로 드러난 이랜드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을 온라인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씨와 함께 시민불복종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남아무개(30)씨는 "우리 모임에서는 조금 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불복종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평범한 시민으로서 하나라도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방법들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SNS에 모인 보통의 시민들이 단순히 '박근혜 하야'만을 외치는 게 아니라,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적극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관심의 폭을 넓히고 저항의 대상을 넓히고 있다. 이 모임의 활발한 활동이 얼마나 유지될지, 어떻게 발전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새로운 '시민행동'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다음은 남씨와 '시민불복종행동' 모임에 대해 나눈 일문일답이다.

- '시민불복종행동'이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11월, 한창 촛불집회가 있던 시기에 매우 많은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위에선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합법적으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더욱더 자유롭고 폭넓은 의사 표현이 가능한, 이른바 '비폭력 프레임'을 깨뜨리고 조금 더 적극적인 시민의 목소리를 내면서 저항하는 모임을 하고 싶다는 분들이 SNS를 통해 모이게 되었습니다. 현재 약 100명 정도가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출산지도 항의 1인 릴레이 시위를 시작하게 된 이유(시위 목적)는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29일 행자부에서 가임기 여성 지도를 게재했습니다. 사실상 국민을 국가의 발전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인구를 계속 생산하기 위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위 피켓에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냐' 등의 문구를 사용해 이런 생각을 거칠게 표현했습니다. 시민의 자유의지와 신체의 자유 등을 억압하고 국가의 도구가 되길 강요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에서 시작된 모임이다. 정권을 비판하는 것 외에 여러 방면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임에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불복종할 수 있는 활동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노동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조합에 가입되어있거나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잖아요. 평범한 시민으로서 하나라도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방법들을 저희가 찾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 (저희 모임에서 진행했던) 이랜드 불매 운동은 같은 것은 온라인 행동이지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 진행했습니다."

- 이 시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사실 여성분에게 더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지만 성별 구분 없는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민보다는 (정책을 만드는) 당사자인 행자부 공무원들이 많이 보셨으면 합니다. 저출산 문제가 여성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출산지도, #시민불복종행동, #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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