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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보수신당(가칭) 김무성 의원이 3일 국회 구내식당에서 환경미화원들과 떡국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김무성, 국회 환경미화원들과 점심 식사 개혁보수신당(가칭) 김무성 의원이 3일 국회 구내식당에서 환경미화원들과 떡국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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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세 번째 날이었다. 나는 오전 10시쯤 옛날 중앙도서관 건물 앞에서 최수연 분회장님과 만났다. 조합원 총회 참석 차였다. 분회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새해 덕담을 해주셨다. 곧이어 어제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주셨다.

"(광운대) 직원들이 푸드코트에서 떡국을 먹었대요. 시무식 끝나고요. 우리는 그냥 각자 싸 온 점심 먹고 말았는데..."
"같은 광운대 식구인데, 너무하네요."
"같이 먹었으면 좋았겠죠. 얼마나 기뻤겠어요. 우리도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광운대 사람들이 아닌가 봐요. 뭐, 정확하게 말하면 용역업체 소속이니까. 그런 걸 또 무시할 수 없죠. 그러니 초대를 안 했다고 생각해요. 대학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그래도 좀 아쉽네요."

나는 은연중에 분회장님의 눈빛을 살펴봤다. 아쉬움이 역력했다. '시무식 떡국 이야기'를 끝낸 분회장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아, 맞다. 국회 청소노동자들 소식 들으셨죠? (청소노동자들이) 직원 신분증 받고 좋아하는 사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이제는 국회 직원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잖아요."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기념 신년행사에서 김영숙씨가 국회 출입증이 아닌 국회 직원 신분증을 받은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 국회 직원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기념 신년행사에서 김영숙씨가 국회 출입증이 아닌 국회 직원 신분증을 받은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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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제 봤던 사진들이었다. 직접 고용 요구 3년 만에 국회 사무처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문득 구성원의 조건은 무엇일까, 란 생각이 떠올랐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언제쯤 직원 신분증을 들고 해맑게 웃을 수 있을지.

우리는 먹먹한 기분으로 총회 장소로 들어갔다. 총회 장소에는 변선영 사무장님이 이미 와 있었다. 광운대분회 조합원 총회 시작 30분 전이었다.

첫 교섭 전, 마지막 총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합원들이 하나둘 총회 장소로 왔다. 오는 조합원마다 하나같이 새해 인사를 했다. 덕담도 오갔다. 새해 첫 총회 전 모습은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새해마다 느껴지는 '어떤 기대'가 총회 장소를 휘감았다. 아까 전의 우울함은 어느새 가신 지 오래였다.

지부 사무처 식구들이 도착했다. 박종호 조직부장님과 최다혜 조직차장님이었다. 두 활동가는 많이 바쁜 분들이었다. 총회가 끝난 후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야 했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으려고 점심시간마다 선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활동가는 총회 안건을 발표할 준비를 했다. 안건은 주로 교육 자료였다. 앞으로 진행될 임금·단체교섭 대비용이었다. 조합원들도 교섭 전에 모두 알아야 하는 안건이었다. 살짝 훑어봤는데도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순간, 2017년 임·단협 교섭이 쉽지 않을 듯한 느낌이 밀려왔다. 걱정이 앞섰다.

조합원들이 총회 장소에 다 모였다. 조합원 50명 중 46명이 참석했다. 야간 근무자와 휴가자를 제외한 모든 조합원들이 총회 자리에 함께한 것이었다. 곧 총회가 시작됐다. 종호 조직부장님이 입을 뗐다.

"이제 곧 서경지부가 일곱 번째 집단교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0월부터 교섭을 준비했는데요. 올해는 좀 늦어졌습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철폐에 장애물이 되는 법 제도의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 서부지부도 이에 발맞춰서 하다 보니 12월부터 교섭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상견례를 가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6월경에는 교섭을 마무리하는 정도로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2017년 집단교섭 관련 사항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한 조합원이 교육 내용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한 조합원이 교육 내용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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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임·단협이 많이 늦어진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작년이라면 벌써 임금·단체협상이 한창 진행됐을 것이다. 이를테면 4차 교섭까지 이미 마쳤어야 했다.(관련 기사: 툭하면 정회에 입장도 불분명... "이게 무슨 교섭?")

하지만 올해는 법 제도 개선 대책을 세우느라고 예전 교섭 때보다 좀 늦은 편이었다. 다수노조인 광운대분회가 용역업체에 첫 교섭을 요구한 시점이 2~3달가량 뒤로 밀린 이유였다.

교섭 요구를 받은 업체는 '교섭요구 노동조합의 확정 공고문'을 작년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현장 사무실에 내걸었다. 본격적인 교섭 진행 전의 단계였다. 모든 사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의거했다. 오늘은 교섭 전 갖는 마지막 총회였다.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과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조합원 총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조합원 총회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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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제도 개선의 핵심은 바로 노동조합법 제2조였다. 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종호 조직부장님이 교육 자료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노조법 2조도 개선해야 합니다. 노조법 2조가 뭘까요? 노조법 2조는 사용자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노조법 2조가 말하는 사용자의 정의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걸 법적으로 개선하자는 건데요. 사용자의 인정 범위를 늘리자는 겁니다. 그러면 청소노동자들의 사장으로 용역업체를 내세워온 대학이 진짜 사장이 되는 거예요. 원청의 책임 회피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일들이 사라질 겁니다. 그동안 맺어왔던 단체협약이 휴짓조각이 되거나, 고용이 불안해지는 것도 방지되겠죠.

실제로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 바로 대학이잖아요. 하청에 대한 업무지시도 광운대가 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광운대도 사용자다, 라고 지금까지 주장해온 거잖아요. 노조법 2조만 개정되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드디어 인정되는 겁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총회에 참석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총회에 참석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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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과거의 투쟁 사례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어졌다. 이를테면 홍익대의 49일간 복직 투쟁이 하나의 예시였다.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온 국민에게 알린 기념비적인 투쟁이었으니까.

최저임금 1만 원 관련 발표로 넘어갔다. 서경지부는 올해도 최저임금 1만 원으로의 인상을 요구할 예정이다. 한편으로 최저임금 1만 원은 2017년 서경지부 임금교섭의 핵심 사안 중 하나다. 곧 시작할 교섭부터 서경지부(광운대분회)가 주장할 청소노동자들의 기본 시급 요구안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노동의 대가를 제자리로 옮겨놓는 작업이나 다름없다. 종호 조직부장님이 이야기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달에 209시간 일하는데, 최소한 209만 원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조합원이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조합원들도 마음에 담아놓은 생각들을 한마디씩 했다.

"맞아요. 그래야지, 먹고살지. 물가도 오르는데, 우리 지갑만 그대로야."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1만 원이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저임금이 2만 원, 3만 원이었으면 좋겠어요."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최수연 분회장이 조합원 총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최수연 분회장이 조합원 총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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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교육 내용에 눈을 떼지 않고, 집중했다. 분회장님은 종호 조직부장님의 기습적인 질문에도 척척 대답했다. 사무장님은 아는 내용인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임효선 조합원은 교육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나하나의 사안에 귀를 기울였다. 광운대분회의 교육 열기가 상당히 후끈했다.

다음으로 다혜 조직차장님이 연단에 섰다. 현재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관련 기사: "세상을 정화하는 사람들인데, 왜 경멸하는지...") 광운대분회와도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분회장님이 마지막으로 발언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황보경 조합원이 조합원 총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황보경 조합원이 조합원 총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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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경지부 집단교섭은 17개 사업장의 1년 농사라고 생각합니다. 1년 동안 격렬하게 교섭하고 투쟁하면서 임·단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교섭으로 완성될 단체협약은 우리에게 헌법 같은 존재예요. 우리의 권리가 담겨 있으니까요. 올해 우리가 목표하는 사안들을 집단교섭으로 이뤄냅시다. 법 개정에도 앞장서고요. 안 되면 투쟁해야죠. 2017년 집단교섭 힘 있게 나아갑시다."

다혜 차장님이 다시 연단으로 나왔다. 조합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오늘 총회는 구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분회 조합원들이 모두가 일어났다. 팔뚝질하며 투쟁 구호를 소리쳤다. 임·단협 교섭 승리를 다짐하는 의미였다. 조합원들이 힘차게 외친 투쟁 구호가 총회 장소에 메아리쳤다. 총회가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우리가 교직원들을 바라본 이유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팔뚝질을 하며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팔뚝질을 하며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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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경 조합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교육에 굉장히 매료된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다른 조합원들과는 남다른 느낌으로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새내기 조합원으로서 임·단협을 처음 겪기 때문이리라.

"먼저 있던 데서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에요. 어용노조여서 무조건 업체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했거든요. 이렇게 총회까지 열어서 교육까지 하는 건 상상도 못 하죠. 지금도 많이 생소해요.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생각하고 있어요."

보경 조합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나는 보경 조합원에게 곧바로 질문 하나를 했다.

"그러면 교섭 현장에 가보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해보고 싶어요. 교섭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싶거든요. 들어보면 교섭이 항상 결렬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앞장서서 투쟁해야죠. 우리에게 노동 3권이 있잖아요."

대화 후에 보경 조합원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다른 조합원들도 하나둘 총회 장소를 빠져나갔다. 총회 장소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분회 간부들과 사무처 활동가들이 총회 장소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나왔다. 분회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아직 교육의 여운이 남은 듯싶었다.

"고용 형태에 따라서 임금 격차가 상당하잖아요. 광운대 안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사무직이랑 청소 일이랑 다 똑같이 학교를 이롭게 하는 건데... 저는 최저임금 1만 원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한몫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나는 분회장님의 이야기에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사무직은 직접 고용을 하고, 청소나 경비 일에는 간접 고용을 하는 것 자체가 원체 말이 안 되죠."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남은 다섯은 주변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노조 관련 일화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임·단협 계획도 상의했다. 무척 알찬 점심시간이었다.

헤어질 때쯤이었다. 분회장님이 다시 '시무식 떡국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광운대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게 지금 분회장님의 가슴에 '사무친 한'은 아니었을까?

"우리도 내년에는 시무식에 초대받았으면 좋겠어요. 점심 때 같이 떡국도 먹으면서요. 이번에 노조법 2조만 개정되면 가능하겠죠? 광운대가 진짜 원청이 되는 거니까요. 여태 원청이 아닌 척했었는데... 우리도 국회 청소노동자들처럼 당당하게 광운대의 직원이 되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점심시간을 마친 교직원들이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우리 사이로 지나갔다. 우리는 순간 아무 이유 없이 교직원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태그:#광운대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서경지부, #조합원 총회, #광운대, #단체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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