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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보수신당(가칭) 유승민 의원이 3일 국회 환경미화원들과 떡국 신년회를 갖기 앞서 셀카를 찍고 있다.
▲ 국회 환경미화원들과 셀카 찍는 유승민 개혁보수신당(가칭) 유승민 의원이 3일 국회 환경미화원들과 떡국 신년회를 갖기 앞서 셀카를 찍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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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파국으로 몰고 간 신자유주의의 긴축 정책. 우리는 지금 이 위험한 프로젝트에 사로잡혀 있다."

팔순 노장의 영화감독이 생애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주먹을 힘껏 쳐들었다. 사회주의적 시선으로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계의 '버니 샌더스', 바로 켄 로치 감독이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그를 '빨갱이'라 평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에게 영예를 안긴 작품 <나, 다니엘 블레이크>. 늙고 병든 숙련공,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경력단절 여성 등 사회 공동체가 보듬어야할 시민이 공공시스템 민영화 속에서 어떤 최후를 맞는지 담담하게 그린 영화다.

한국에서도 관람객 5만 명을 돌파(지난달 30일 기준)하며 딱딱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영국 못지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도 이 영화에 주목했다. 특히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오는 10일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행사도 추진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의 따뜻한 보수 '인증' 행보, 그 진정성은?

12월 8일 개봉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현재까지 4만6000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적은 상영관에도 입소문을 타며 초반 꾸준한 흥행세가 이어졌다.
▲ 나, 다니엘 블레이크 12월 8일 개봉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현재까지 4만6000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적은 상영관에도 입소문을 타며 초반 꾸준한 흥행세가 이어졌다.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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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것은, 새누리당을 떠난 뒤 창당을 도모하고 있는 개혁보수신당(가칭, 아래 개혁신당)이 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단체 관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보수를 표방하는 신당이 진보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감상하겠는 속뜻은 무엇일까. 

당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우 의원(전략기획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영화평을 보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만들 때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자존감도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면서 "보수는 차가운 게 아니라 따뜻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신당이 지향하는 제대로 된 보수를 하자는 생각으로 건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신당의 '간판' 유승민 의원이 경제 정책에서만큼은 줄곧 진보적 주장을 펼쳤던 배경과 맞닿아있다. 개혁신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따뜻한 보수'의 출처도 유 의원이다.

개혁보수신당(가칭) 유승민 의원이 3일 국회 구내식당에서 환경미화원들과 떡국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국회 환경미화원들과 식사하는 유승민 개혁보수신당(가칭) 유승민 의원이 3일 국회 구내식당에서 환경미화원들과 떡국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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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보수신당(가칭) 주호영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등 언론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면담하고 있다.
▲ 언론노조 만난 주호영 개혁보수신당(가칭) 주호영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등 언론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면담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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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상 외에도 과거 새누리당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일정들을 짜고 있다. 오늘(3일)만 해도, 지난달 5일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된 국회 환경미화원 노동자들과 떡국 신년회를 열었고,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과 면담하며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전해 듣기도 했다. 최근 신당이 공영방송개선법 등 일부 언론법안 통과에 힘을 합칠 경우, 언론 환경을 개선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돌았던 터였다( 관련 기사 : 개혁신당 가세하면 공수처·공영방송 개선 '청신호').

이처럼 24일 창당을 목표로 정강·정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개혁신당은 '새누리 때 벗기'에 안간 힘을 쓰는 모습이다. '좌클릭' 행보를 통해 "우리는 가짜보수가 아닌 진짜 보수"라는 '인증샷'을 부단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변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일각에서는 '속빈 강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신당은 정강·정책을 만들기도 전부터 '좌클릭' 논란을 둘러싼 내홍에 시달리기도 했다. 나경원 의원은 유 의원의 색깔이 가미된 정책 방향을 반대하며 지난달 27일 창당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창당까지 3주가량 앞둔 촉박한 시간 때문에 기존 새누리당의 정강·정책과 별다를 바 없는 개혁안이 나올 것이라는 비판적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3차까지 진행된 정강·정책회의는 당명 선정과 발기인 대회 준비 등 정강 정비에만 집중됐다.

특히 3일 열린 회의에서는 정책보다 정쟁을 부추기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겨냥 "예전에도 친노, 비노로 나눠 국민을 가르더니 지금은 친문과 비문을 가르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고 맹비난했다.

정책보다 정쟁, 경제보다 안보... '보여주기식' 행보 비판도

경제 분야에서 진보적 의제를 던지겠다고 공언해왔던 유승민 의원. 그러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사실상 경제 정책보다 안보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연초부터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안보는 누구보다 강경보수'라는 주장이었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포섭하려는 전략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안보는 최고 가치"라는 그의 천명 속에 서민을 위한 새로운 경제 정책은 뒷방으로 물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당에서 경제 정책의 개혁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29일 정강·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경제민주화 법안,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 등을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막아서 못했던 개혁 과제를 신당 주도로 2월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개혁신당의 정책 비전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광장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함께 외쳤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요구를 신당이 충분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양극화, 불공정 경쟁, 비정규직 문제 등 한국 사회의 피상적인 문제점들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해결 방법과 고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민영화! 망할 보수당!"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한 부랑자가 경찰에 연행되는 주인공을 향해 연호하며 외치는 말이다. 구악이 되어버린 영국보수당을 향해 쏟아내는 가난한 시민의 한 마디는 '진짜 보수'가 되겠다는 개혁신당에도 큰 울림이 될 법하다.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내며 가짜 보수의 민낯을 까발린 시민들은 새로운 보수를 내세운 개혁신당에 새누리당보다 많은 기대를 걺과 동시에, 더욱 매서운 잣대로 평가할 것이다. 보여주기식 변화가 아닌, 알찬 친(親)서민 정책으로 당의 변화를 설명할 때 시민도 비로소 개혁신당의 '따뜻한 보수'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유승호, #나다니엘블레이크, #개혁보수신당, #김영희, #따뜻한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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