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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자정 서철모 천안시 부시장 등 약 50여 명의 공무원들이 경찰을 대동하고 천안시 광덕면 장 아무개씨의 산란계 농원에 들이닥쳐 농장 닭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지난 달 30일 자정 서철모 천안시 부시장 등 약 50여 명의 공무원들이 경찰을 대동하고 천안시 광덕면 장 아무개씨의 산란계 농원에 들이닥쳐 농장 닭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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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자정 약 50여 명의 공무원들이 경찰을 대동하고 천안시 광덕면 장 아무개씨의 산란계 농원에 들이닥쳐 농장 닭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장 씨(사진 왼쪽)는 멀쩡한 닭을 왜 살처분하냐며 항의했지만 천안시 측은 강행했다. 사진 오른 쪽은 서철모 천안시 부시장
 30일 자정 약 50여 명의 공무원들이 경찰을 대동하고 천안시 광덕면 장 아무개씨의 산란계 농원에 들이닥쳐 농장 닭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장 씨(사진 왼쪽)는 멀쩡한 닭을 왜 살처분하냐며 항의했지만 천안시 측은 강행했다. 사진 오른 쪽은 서철모 천안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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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광덕면에서 닭 농장을 운영하는 장아무개씨는 지난 12월 30일 황망한 일을 당했다. 이날 자정 서철모 천안시 부시장 등 시 공무원 약 50여 명이 행정대집행을 명분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일행 중엔 경찰관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장씨에게 영장을 내밀었다. 영장엔 장씨가 키우는 산란계를 살처분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날 농장엔 장씨와 아내인 김아무개씨 두 명만 있었다. 연말을 앞둔 자정에 한 무리의 공무원이 들이닥치자 장씨 부부는 격분했다. 이들은 현장에 나온 공무원과 경찰을 향해 "힘없는 농민을 범죄자 취급하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살처분을 막으려는 장씨와 집행하려는 공무원 사이에 실랑이가 불거졌다. 축산과 김아무개 과장은 항의하는 장씨 부부를 캠코더로 촬영했다. 다른 2~3명의 공무원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장씨 부부를 향해 들이밀었다. 이를 보다 못한 장씨의 아내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려 하자 축산과 김 과장이 '초상권 침해'라며 제지했다.

실랑이는 31일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장씨는 "대집행을 하겠다면, 아침에 닭에게 모이 한 번 더 주고 달걀을 낳으면 수거한 뒤 살처분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온 공무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고하고 살처분했다"는 천안시, "일거리 없어졌다"는 농민

천안시가 장 씨 앞으로 보낸 명령서. 장 씨는 이 명령서가 겁박에 가깝다고 보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천안시가 장 씨 앞으로 보낸 명령서. 장 씨는 이 명령서가 겁박에 가깝다고 보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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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 부부는 대집행이 있기 전인 30일 오후 천안시로부터 공문을 전달받았다. '고병원성 AI 발생관련 관리지역 및 보호지역 내 가금농가 예방살처분 명령'이라는 제목이 적힌 공문이었다. 명령서 내용은 이랬다.

"1. 천안지역 AI 추가 확산방지를 위해 가축방역심의회에서 결정된 3km 이내 예방살처분과 관련해 관리, 보호지역내 산란계, 종오리 농가에 대해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20조, 제23조의 규정에 의거, 아래와 같이 살처분을 명령하니 농가에서는 조치사항 이행에 철저를 기하시고,

2. 살처분 명령 후 미이행 농장에 대해서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제56조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에 의거 보상금 감액, 축산법 25조에 의거 축산업(가축사육업) 영업정지, 허가취소 처분, 행정대집행법 제2조에 의거 대집행 절차를 진행하게 됨을 참고하시어 AI 확신방지를 위한 활동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장씨 부부는 명령서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선 전달방식이다. 장씨에 따르면 "오후에 아내와 함께 잠시 외출한 사이 명령서가 집 안에 와 있었다. 외출할 때 보통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데, 결국 공무원들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명령서를 놓고 간 것이다"고 주장했다.

아내인 김아무개씨는 명령서 내용에 속상함을 표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명령서 문구 한 줄 한 줄이 위협으로 느껴졌다. AI로 키우는 닭, 오리들을 살처분해야 하는 농민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장씨는 천안시 담당부서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장씨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중앙의 지시다. 중앙에서는 타 지역은 다 (살처분이) 이뤄졌는데 천안만 전면 이행되지 않았다고 천안시를 압박했다. 그러니 따라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장씨 부부는 고심 끝에 명령서를 이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러자 그날 자정, 공무원들이 대거 장씨의 농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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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측은 '국가 재난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이며, 지자체 단독으로 결정한 사안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2일 오전, 천안시 축산과 임아무개 주무관은 기자에게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전했다.

"장씨의 농장은 위치상 AI가 발생한 오리 농가에서 반경 500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부시장, 담당 부처 과장 등 시 공무원들이 나서 장씨에게 이 점을 주지시켰다. 그러나 장씨가 끝까지 응하지 않아 행정대집행 형식으로 살처분 조치를 취한 것이다. 문구에 제재 조치 등이 적혀 있다고는 하지만, 국가 재난 상황이기에 수차례 협조를 구했고 장씨 농장만 예외로 둘 수 없었다. 다른 농가들 역시 처음엔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시의 권고에 응했다."

올해 천안을 비롯, 전국의 가금류 농가는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12월 19일 기준 천안에서 246만여 마리가 살처분 됐다. 전국적인 피해 규모도 심각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I 최초 의심신고 이후 49일째인 2일 자정 기준 전국적으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총 2998만 마리로 집계됐다.

AI 창궐, 그리고 뒤이은 관계 당국의 살처분 조치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장씨와 같은 가금류 농가와 동물보호단체 등이 백신 접종, 공장식 사육 제한, 철새 도래지 인근 농장허가 금지 등 사전 예방 조치를 제시해왔다.

예를 들어 장씨가 키우는 닭은 700마리가량. 케이지로 닭을 키우는 농장의 경우 사육 두수는 1만 마리에 이른다. 여기에 비하면 소규모인 셈이다. 게다가 장씨는 닭을 풀어 기른다. AI 확산 원인으로 닭을 좁다란 케이지에 가두는 사육방식이 자주 지목된다. 장씨 개인적 차원에선 AI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해왔던 셈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장씨의 입장에선 살처분 조치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천안 살기 싫어졌다... 행정심판 청구할 것"

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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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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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올해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 재수하는 큰아들과 고3인 둘째 아들이 나란히 수능시험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우는 닭들이 살처분 당해 당장의 일거리와 생계마저 잃게 됐다.

장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일거리가 없어졌다. 갑자기 천안이 싫어졌다."

행정대집행 영장엔 "위 처분(살처분 집행)에 대해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행정심판법' 제27조에 따라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장씨는 해당 문구를 근거로 천안시에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기자에게 전해왔다.


태그:#조류 인플루엔자, #살처분, #천안시, #인수공통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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