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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재벌 계열사간의 합병에서 해당회사의 경영진은 회사 또는 주주 이익의 관점에서 의사결정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재벌 소유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던 삼성물산 합병 과정의 베일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아무런 외압도 없었다고 잡아떼던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이 특검 수사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외압을 실토했습니다. 역시 국회 청문회에서 합병 찬성결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수사 도중 체포되더니 결국 특검1호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작년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긴급체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작년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긴급체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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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나란히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로부터 위증 혐의로 고발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이 모든 결정을 했을 리 없습니다. 이제 특검 수사는 청와대와 삼성 핵심부를 향해 갈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언론에서 "특검 수사가 정치 편향적이다", "경제논리와 배치되는 무리한 법적용이다"라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특검 수사가 무리한 법 적용일까요? 삼성물산 합병과정의 문제점 그리고 특검 수사와 관련된 네 가지 거짓말을 살펴 보겠습니다. 

삼성과 엘리엇의 지분율 고려하면 경영권 분쟁은 불가능

첫 번째 거짓말.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은 삼성그룹의 국민경제적 비중을 고려할 때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그 파장이 전체 기업으로 확산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있었다."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지배력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입니다. (구)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위해서는 (구)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미인데, 사실관계가 맞지 않습니다.

외국투자자에 공개된 자본시장을 운영하는 한, 투기자본과 재벌 간의 충돌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편이 항상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불가능하며, 사안별로 냉정하게 경영권 위협의 정도, 다수 국민의 손실, 국민경제의 파급효과를 따져봐야 합니다. 

합병 직후 공시된 내용을 확인해 보면 삼성 이재용 등 특수관계자는 통합 삼성물산에 대하여 39.9%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엘리엇은 (구)삼성물산 지분을 7% 정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1대 0.35라는 합병비율로 계산하면,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2% 수준입니다.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이 20배 정도 차이나는 상황입니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합병비율이 상향조정 되면 이 관계가 많이 바뀔까요? 합병비율이 1대1 정도로 상향조정 되면 이재용 등 특수관계자의 지분율이 30%로 조정됩니다. 그런데,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등 특수관계자의 지분율이 30% 정도 된다고 해서 삼성전자 지분 4.1%에 대한 지배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반면, 1대 1의 비율로 합병이 되더라도 엘리엇은 통합 삼성물산에 대해 4% 이하의 지분을 확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그 당시 이재용 등 특수관계자와 엘리엇의 지분상황으로 볼 때,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경영권 분쟁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으며, 어떤 비율로 합병해도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지배력은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합병이 1차 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삼성그룹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그룹의 관리능력을 감안하면, 전열을 정비하여 새로운 조건으로 합병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한 번의 합병 부결로 삼성그룹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은 삼성그룹의 위기 대응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삼성그룹은 그렇게 허술한 기업집단이 아닙니다.

법에 따른 합병비율은 기준 제시일 뿐...

두 번째 거짓말.

합병비율은 법에서 정한 것이다. 그에 따른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법에 정해져 있는 건 기준을 제시할 뿐이고 그렇게 산출된 비율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제시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에서 유·불리를 따져보는 것은 모든 경영진의 의무이고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에게도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만약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국민연금공단은 왜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따져서 적정 합병비율을 계산해 봤을까요?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에서 유·불리를 따져보기 위해서 계산해 본 것입니다.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법에 따라 산정된 합병비율에 반대할 권리를 국민연금공단은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삼성물산 경영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삼성물산이 독립적으로 판단했으면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도 외압이 없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에 당연히 반대했을 것입니다. 법에 정한 기준이 의미가 있는 건, 합병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가 독립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재벌 계열사간 합병의 중요한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우리나라 재벌 계열사간의 합병에서 해당회사의 경영진은 회사 또는 주주 이익의 관점에서 의사결정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재벌 소유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의사결정 하는데, 이것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는 행동입니다.

상식 안 통하는 '한국 자본시장' 오명 쓰게 됐는데도...

세 번째 거짓말.

"국민연금은 삼성그룹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합병이 무산되었으면 국민연금 전체 포트폴리오가 더 하락했을 것이다."

이 주장은 은행이 대규모 대출을 한 후, 그 대출이 부실화될까봐 지속적으로 추가적인 대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삼성 보유지분이 많으므로 무조건 삼성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SK와 SK C&C 합병에 반대했던 것처럼 사안별로 냉정히 판단해 보고 찬성할 것은 찬성하고 반대할 것은 반대해야 합니다. 국민의 노후재산을 지키기 위한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따져봤어야 하는데, 그 검토가 부족하고 부실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삼성물산 합병 이후 실제로 진행된 경과는 '합병이 무산되면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예측과 달리 진행되었습니다. 삼성물산 합병 가결 이후 아래와 유사한 외신 보도가 쏟아집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근본적으로 한국의 불투명한 재벌 중심 기업지배 구조 탓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7월11일자 "삼성 재편성하기(Reconstructing Samsung)")

"한국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재벌 편애 관행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은 이 약속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연금공단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의결권 자문기구)의 권고도 무시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7월 20일자 "한국의 삼성 분수령(Korea's Samsung Watershed)")

일부 언론의 예측과 달리 합병 가결이 나쁜 영향을 가져왔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코리아 재벌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나왔고, 실제로, 삼성물산의 외국인투자자는 지속적으로 주식을 매도했습니다.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한국에 투자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만약 1대0.35라는 말도 안 되는 불공정한 비율에는 합병이 부결되고,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되어 합병이 다시 진행되었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자본시장이 상식이 통하는 않는 시장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의 계산법에 따른 손실액 존재

네 번째 거짓말.

"손실액 계산이 잘못되었다. 주가가 하락했다고 손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손해를 끼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주가가 하락했다고 배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합병 이후에 국민연금공단이 주식을 보유할 것인지 매도할 것인지의 결정은 별도의 의사결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합병 이후 전체적인 주가가 하락하여 발생하는 손실까지 합병결정에 따른 손실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합병에 대한 의사결정의 손실여부는 합병 시점에서 결정됩니다. 합병 의사결정으로 지분율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차이에 시가총액을 곱하여 산출하면 그만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국민연금공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015년 7월 투자위원회 회의록에도 이런 접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부 계산오류가 있었는데 최근 배포한 보도자료에 수치를 수정하여 아래와 같이 정확한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국민연금공단 보도참고자료, "국민연금의 지난해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찬성 결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P13, 2016.12.14
▲ 국민연금 기금평가액 국민연금공단 보도참고자료, "국민연금의 지난해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찬성 결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P13, 2016.12.14
ⓒ 국민연금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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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1:지분율은 보통주(우선주 제외)기준으로 산출함
  주2:합병법인의 적정시가총액은 31조1820억원(삼성물산 10조8850억원, 제일모직 20조2970억원)으로 평가
  주3:지분율 차이는 0.44%P, 주수로는 약 211만주에 해당
 * 합병법인의 기금 적정평가액은 기금 지분율에 적정시가총액(31조원)의 곱으로 산출됨

합병비율을 1대0.46으로 상향조정하게 되면 국민연금공단의 지분평가액은 1388억 원 증가하게 됩니다. 만약 1대1까지 상향조정 한다면 국민연금공단의 지분평가액의 차이는 약 5천억원으로 증가합니다. 이 계산은 합병 이후에 주가가 하락하는 것과 전혀 무관합니다. 국민연금공단의 계산법에 따라 손실액이 발생하였고, 그 손실을 알면서도 합병 찬성을 강행했기 때문에 배임이 되는 것입니다.

삼성물산 합병과정의 문제점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합리성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특검 수사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인 고려에 따른 외압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 정치적인 고려가 정당한 것이었을까요? 정당했다면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왜 밝히지 않았을까요? 삼성과 최순실 일가와의 부정한 돈거래에 따른 외압 의혹이 명백히 밝혀져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국민연금, #삼성물산, #삼성물산 합병, #제일모직, #특검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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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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