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끝났다. 2016년에도 많은 작품이 공연됐으며, 그만큼 많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많은 스타의 연극·뮤지컬계 진입, 연극·뮤지컬 배우들의 스타화, 팬 사이의 입소문 등 덕분에 올해도 공연 시장은 몸집을 부풀릴 수 있었다. 이는 일반 관객들뿐 아니라 '연뮤덕(연극 뮤지컬 마니아)'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이 커졌고,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인 관점의 공연들은 아직 충분하지 못했다.

공연은 2016년에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그 훗날에도 많은 작품은 올라올 것이고 또 올라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으레 하던 연말 정산처럼, 몇 가지 작품을 '여성주의'라는 키워드로 읽어보는, '연극 뮤지컬 #여성주의 연말 정산'을 해보려 한다. 다음에 올라올 때는 더 좋은 작품이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인터뷰>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9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관객을 맞은 뮤지컬 <인터뷰>. 창작진의 열의와 명배우의 열연이 겹치며 대학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탔다. 성황리에 끝났던 이 작품은 범죄의 환경적 요소에 대해 지적한다.

▲ 싱클레어의 진술 지난 2016년 9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관객을 맞은 뮤지컬 <인터뷰>. 창작진의 열의와 명배우의 열연이 겹치며 대학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탔다. 성황리에 끝났던 이 작품은 범죄의 환경적 요소에 대해 지적한다.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뮤지컬 #여성주의 연말 정산'의 마지막 작품은 지난 2016년 11월 26일,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뮤지컬 <인터뷰>이다.

뮤지컬 <인터뷰>는 2016년 상반기 국내 창작 초연을 끝내고 9월 교토 공연을 마쳤으며 심지어 2017년 올해 브로드웨이 공연까지 계획하고 있다. <인터뷰>의 성공 원인은 명확했다. 요새 많은 핫한 작품들을 만들어낸 김수로 프로듀서와 김민종 프로듀서, 배우와 연출을 모두 해내는 추정화의 대본과 연출, 그리고 허수현 음악 감독까지…. 가히 '괴물 같은 창작진'이 뭉쳤다고 할만했다.

창작진 못지않게 화려한 것은 배우진이었다. 소극장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배우들부터 소극장과 대극장을 넘나들며 활동 중인 배우와 소극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배우까지, 정말 대한민국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다 <인터뷰>에 출연했다. 결국, 인터뷰는 뮤지컬 팬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일으킨 작품들에 그에 맞는 사회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게 과한 건 아닐 테다. 그 사회적 의무 중 하나는 '젠더 감수성'이다. 문화 콘텐츠가 가지는 사회적 힘은 크다. 문화는 사회적으로 만연하지만 덜 형상화 된 것(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많은 관객을 만나며 그들에게 재생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핫'했던 창작 뮤지컬 <인터뷰>를 젠더적 관점에서 재고해보는 데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범죄를 '정상참작'할 때

뮤지컬 <인터뷰>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9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관객을 맞은 뮤지컬 <인터뷰>. 창작진의 열의와 명배우의 열연이 겹치며 대학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탔다. 성황리에 끝났던 이 작품은 범죄의 환경적 요소에 대해 지적한다.

▲ 싱클레어의 회상 싱클레어가 처한 환경은 분명 끔찍했다. 그에게 연민의 감정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득, 그 감정으로 이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인터뷰>를 이야기하기 전, 지난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을 돌이켜본다. 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 처음 사회는 이를 '묻지마 살인'으로 포장하려 했지만, 이는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였다. 가해자의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났다"는 살해 동기는 단순히 '여자들이 나를 무시한다'에 그치지 않는다. 이 감정의 전제를 보다 명쾌하게 추정하자면 "'권력이 없는' 여성이 '감히' '권력이 있는 남성'인 나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극으로 돌아가 보자. 극 중 싱클레어의 범죄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이는 '여성혐오' 범죄다. 싱클레어의 범죄 동기는 '누나가 나를 버렸다'이다. 이는 단순히 사랑하는 누나가 나를 버렸다는 게 아니다. 이를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누나조차 나를 버렸다'이다. 이는 '응당'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 '누나조차' '감히' 나를 버렸다는 이야기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누나와 남동생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서사이다. 인터뷰의 서사가 오빠와 여동생의 서사였다면, 그리하여 싱클레어가 여성 캐릭터였다면, 인터뷰의 서사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성립됐을까? 형과 남동생, 혹은 언니와 여동생으로 바꿔 생각해보아도, 인터뷰의 서사는 '누나와 남동생'일 때 가장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는 젠더적인 권력 차이를 지닌 관계이다. 젠더 권력을 차지한 '남성' 동생과 젠더 권력이 없는 '여성'인 누나의 관계인 것이다.

또한, 극 중에서는 조안이 싱클레어를 이용하고 버렸기에 싱클레어가 분노에 차 조안을 죽였다는 설정까지 추가된다. 싱클레어의 입장에서, 자신의 살인에 '합리적인 동기'가 부여된 셈이다. 하지만 싱클레어의 '살인'이 합리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이는 사회에서 일어나던 여성 혐오를 전형적으로 답습한 것은 아닌지 의아하다.

<인터뷰>는 유진 킴을 통해 싱클레어의 여성 혐오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과정에 대해 법정의, 나아가 관객의 이해를 구한다. <인터뷰>는 싱클레어를 변호해주고 있다. 싱클레어가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고, 이 아이가 더 나은 어린 시절을 보냈더라면 이런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관객의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며 말이다. 물론 어린 시절 싱클레어와 조안이 당한 아동학대는 분명 잘못된 행위이고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서사는 너무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적 요인이 '범죄'를 정당화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싱클레어를 변호하는 유진 킴, 조안은 누가 변호해주나

뮤지컬 <인터뷰>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9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관객을 맞은 뮤지컬 <인터뷰>. 창작진의 열의와 명배우의 열연이 겹치며 대학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탔다. 성황리에 끝났던 이 작품은 범죄의 환경적 요소에 대해 지적한다.

▲ 유진 킴의 변론 유진 킴은 적극적으로 싱클레어를 변호한다. 그의 설득은 법정으로 그치지 않고 객석의 관객에게까지 나아간다.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인터뷰>는 친절하게도 싱클레어의 살인 동기가 명확히 '여성 혐오'였음을 보여준다. 싱클레어의 범죄는 2016년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는 일반 여성에게도 이뤄졌다. 그들은 조안과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했다.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서사는, 2016년을 보낸 여성 관람객에게 꽤 익숙한,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이야기기도 했다. 여성 혐오 범죄로 실제 생명을 위협당한 관객들 앞에서 여성 혐오 범죄자의 '정상 참작'에 대해 설명하는 건 다소 의아하다. 논쟁적 사안이기에 더더욱.

관객의 도덕적 각성의 촉구 또한 '불편한' 결말이다. 아동학대 문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이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성에서만 평가되지 않는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개인적·사회적으로 얻은 분노를 권력관계를 통해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 구조적인 해결책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다' 식의 결말은, 결국 그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짚으면서 그 해결을 사회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게 찾는 것으로 호도될 수 있다. 대신 도덕적인 책임은 관객들에게 돌아갔다.

물론 관객 개개인의 인식적인 차원에서의 해결 방안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권력관계가 함께 내포된 사회 문제가 온전히 개개인의 인식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어떤 좋은 메시지를 다룬다고 해도 그 메시지가 또 하나의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합리화해줄 수는 없다. 이는 <인터뷰>가 다루고자 했던 메시지가 직접적이고, 설득력이 있었기에 더 큰 아쉬움으로 귀결된다. 애초에 <인터뷰>가 꽤 직접적인 대사로까지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싱클레어가 '태어난 악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악마로 '만들어졌다'고 <인터뷰>는 이야기한다.

그러나 반면, 악녀처럼 묘사되는 조안의 입장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서사는 남성인 유진 킴과 남성인 싱클레어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사랑하던 동생을 학대로부터의 방패로 삼았으며,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자마자 동생을 버린 '악녀'일 뿐이었다. 여성을 위한 인터뷰는 없었다. 사회도, 뮤지컬 <인터뷰>도 그녀를 '인터뷰'하진 않았다.

"누가 울새를 죽였나."

조안의 노랫말이다. 이는 뮤지컬 <인터뷰>에게 되묻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누가 여성을 죽였나. 누가 여성들을 그렇게 죽이고 그 살인을 정당화했는가.

뮤지컬 <인터뷰>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9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관객을 맞은 뮤지컬 <인터뷰>. 창작진의 열의와 명배우의 열연이 겹치며 대학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탔다. 성황리에 끝났던 이 작품은 범죄의 환경적 요소에 대해 지적한다.

▲ 싱클레어의 이야기 싱클레어가 악마처럼 변한 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면, 조안이 악마처럼 변한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무도, 왜 조안이 그렇게 싱클레어를 버렸는지 묻지 않았다.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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