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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발목 세 군데가 동시에 골절되어 쇠를 박고 핀으로 조이는 수술을 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전 치료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3개월 동안 머물렀다. 죽음의 문턱은 아니었지만 암, 치매, 투석 환자들과 생활하다 보니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수많은 생각이 스치던 나날이었다.

내가 머물던 요양병원은 두 층을 운영했는데 그중 한 층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전문 요양병원이라 의사, 간호사, 영양사, 요양보호사까지 갖춰진 곳이다. 하지만 환자 자신이나 가족, 환자를 볼보는 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은 너무 멀리 있어 보였다.

사실 인생의 전반기를 지나 황혼을 향해 가는 나이라 탄생보다는 이별의 자리인 장례식에 갈 일이 더 많다. 가족과 이별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볼 때와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온도 차이는 상당히 컸다.

대부분 죽음은 나와 먼 남의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죽음을 자기 자신의 일로 직시하는 일을 기피하게 만든다. 웰빙(well being) 웰 다잉(well dying)이 하나인데 말이다.

이처럼 한국은 고령화 사회임에도 아직 사회는 죽음을 잘 인식하고 배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죽음'
 죽음을 통해 더 환한 삶에 이르는 이야기
▲ 숨 죽음을 통해 더 환한 삶에 이르는 이야기
ⓒ 마음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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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불교계 최초로 정토마을 자재병원이라는 호스피스 병원을 설립해 스무 해 동안 삶의 자리를 옮긴 이들을 보며 깨달은 죽음 너머 아름다운 삶을 담은 책이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입문서인 셈이다.

저자는 스무 해 전 천주교 재단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투병 중인 스님을 만나게 된다. 그 스님은 투병 중인 수행자들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한 시설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이후 능행 스님은 충정도의 아름다운 산자락 아래 호스피스 병원을 지어 환자들이 아름답고 편안한 이별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나는 죽어가는 분들의 마지막 걸음을 배웅하며 나 또한 죽음이 상실된 사회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직 삶만이 존재하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죽음을 예전처럼 다시 삶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일,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 이것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현대 사회는 자연사만이 아니라 온갖 불치병과 사고가 인간 삶 가운데 자리한다. 사고나 질병은 예고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삶을 향해 열려있는 시간은 곧 죽음을 향해서도 똑같은 비중으로 열려 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죽음을 삶과 동일한 무게로 느끼며 살지 않는다. 사실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의미로 본다면 어쩌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분에 한 명씩 죽어간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덮을 때 대부분 자기 부정, 분노, 절망, 집착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 죽음에 대한 준비나  배움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평소 죽음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 전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최대한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품격 있는 주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배우고 사랑해야만 한다. 그래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다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죽음의 여정으로 나아갈 때 곁에서 도움을 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돌봄이 필요하다. 신체의 고통은 줄이면서 좀더 명료한 의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호스피스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유지하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과 개인적 준비가 꼭 필요하다. 죽음을 최대한 잘 맞이할 수 있는 공간, 시간, 심리적으로 안정된 환경은 사회나 시스템이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호스피스 시설만큼 중요한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든,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며 곁에서 돕는 사람이든 죽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진 호스피스 병동이나 요양시설일지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소통이 죽음의 질을 좌우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도와야 한다. 이제 품위 있는 죽음은 수행자나 높은 덕을 쌓은 사람의 몫이어선 안 된다. 죽음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우리는 죽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신대륙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곳에 다다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이라는 배를 뒤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덧붙이는 글 | 숨/ 능행 지음/ 마음의 숲/ 13,800



숨 - 죽음을 통해서 더 환한 삶에 이르는 이야기

능행 지음, 마음의숲(2015)


태그:#숨 , #호스피스, #죽음, #웰 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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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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