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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앞 삼엄한 경비 1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중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 헌법재판소앞 삼엄한 경비 1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중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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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모든 언론의 관심이 온통 헌법재판소의 인용 여부에 쏠려 있지만, 아이들 중에 기각되면 어쩌나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정 농단에 휘말린 대통령이 심판 절차에 따라 직무에 다시 복귀한다면, 이미 그건 법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되면 무장 봉기가 일어나게 될 거라며 섬뜩한 예언을 늘어놓는 아이도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박근혜 대통령을 버렸다. 이름 뒤에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붙여 부르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고, 이름조차도 '닭그네'라며 키득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수첩 공주'라는 말도 과분하다며, '드라마 노예'라거나 '성형의 본좌'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 부르기까지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의혹들에 대한 그들 방식의 조롱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부차적인 문제다.

요즘 들어 아이들도 대통령이 물러나는 건 단지 시작이자 필요조건일 뿐, 그것이 목표일 순 없다며 퇴진 이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대통령 퇴진이라는 '상수' 뒤에 전개될 다양한 '변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섣부르지만, 수백만 촛불과 함께 광장에 우뚝 선 '청소년 혁명'이라는 깃발이 시나브로 학교 울타리 안에서도 펄럭일 분위기가 감지된다. '범생이'들조차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장 아이들의 관심은 '학교'다. 대통령의 퇴진이 학교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언론 등에선 연일 검찰과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일지언정 아이들에게는 아직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들은 오롯이 어른들의 책임이자 몫이며,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힘겨운 삶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기말고사가 끝난 수업시간,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 다녀왔다는 한 아이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우리 학교는 뭐가 바뀌나요?"

교사로서 순간 뜨끔했다. 대통령 물러나라며 주말마다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그 열정과 노력의 반의 반만이라도 학교 개혁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말마따나, 대통령이 물러나면 학교는 어떻게 바뀔까. 아니 바뀌기는 할까. 기실 학생인 그가 바라는 학교와 교사인 내가 원하는 학교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체득하며 정직한 시민을 길러내는 공간이자, 교사와 학생이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공동체라는 학교의 이상은 예나 지금이나 요원하기만 하다.

촛불혁명, 학교에서도 완성될 수 있을까

'박근혜 퇴진' 청소년 시국대회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가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청계천 영풍문고앞에 모여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 '박근혜 퇴진' 청소년 시국대회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가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청계천 영풍문고앞에 모여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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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학벌을 향한 무한 경쟁과 과도한 학습 노동, 서열화한 학교와 양극화한 교실,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 등 더께로 가득하다. 여전히 완고하다 못해 철옹성 같다. 생각해보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막막할 지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이 공약의 맨 윗자리를 차지했지만, 매번 흐지부지됐고 되레 퇴행하는 양상을 띠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교육개혁이라는 당위를 아이들조차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쯤으로 여기고 있다.

질문을 던진 그 역시도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변화를 기대하느니 천지가 개벽되기를 바라는 편이 낫다고 비아냥거렸다.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와 개정된 교육과정을 숱하게 경험했지만, 자신들은 그때마다 '마루타'였을 뿐, 학교생활은 갈수록 팍팍해질 뿐이었다고 말했다.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더 이상 실망하거나 좌절할 것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 앞에서 차마 맞장구치지는 못했지만, 교사라고 다르랴.

다른 게 있다면, 그는 교사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핑계 삼는 온존한 학벌구조와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를 탓하진 않았다. 어리다고 그걸 모를까마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다고 말했다. 학생과 교사 모두 깊은 무력감에 빠져 학교의 변화를 스스로 이끌어낼 만한 힘이 없다고 진단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학교가 외부의 자극이나 압력 없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흡사 '좀비'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된 '소득'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학교조차 상하 위계적인 권력 관계로 유지되는 조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단다. 학교에서는 교장이나 교감은커녕 담임선생님 앞에서조차 주눅이 들어 불평 한마디 꺼내지 못하면서, 광장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퇴진을 목 놓아 외치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지질하게 느껴지기도 했단다. 용기라기보다 객기일 거라고 쭈뼛거리면서.

듣고 보니 교사인 나도 하등 다를 바 없었다. 학생인 그가 대통령보다 담임교사를 더 두려워하듯, 대통령보다 눈앞의 학교장이 훨씬 더 어려운 존재라는 건 교사 또한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독재에는 당당히 맞서도, 직장 상사의 비행 앞에서는 눈 감고 마는 기성세대의 비루함이라고나 할까. 일방적인 지시와 이행이라는 권력 기제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곳이 학교일진데, 그의 깨달음은 옳다.

"'왜'라는 질문이 말대꾸로 치부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곳이라면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고, 결국 윗사람의 눈치만 보고 명령만 기다리게 되겠죠.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용기를 내어 선생님의 지시에 토라도 달라치면, 친구들끼리 뒤로 숨은 채 이렇게 수군대기 일쑤죠. '의미 없다'거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요컨대 학생, 교사, 교감, 교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권력 구조가 말단인 학생과 교사에게 깊은 무력감을 심어줬고, 무력감에 빠진 학교는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지고 보면, 학교 울타리 안에서 촛불을 켤 수 없다면, 광장의 수백만 촛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그는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보다도, 학교에서의 무력감을 촛불을 들며 단박에 해소할 수 있었다며 주말마다 광장에 나갈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와 나는 대통령 퇴진과 함께 국정 교과서 폐기가 급선무라며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주장의 '결'이 조금 달랐다. 나는 역사 교사로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권력의 입맛대로 획일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반해, 그는 여론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우선 문제 삼았다.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맞서 학생도 당당히 발언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이야말로 무력감을 치유하는 특효약일 것이라 강조했다.

주말 광장이 진짜 민주주의를 배우는 살아있는 교실이라더니, 그 의미를 시나브로 깨달아가고 있다. 2016년 세밑, '공부하는 기계'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과연 '교복 입은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광장의 촛불은 울타리를 넘어 무력감에 빠진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흔히 4.19 혁명과 6월 항쟁에 비견되는 이번 '촛불 혁명'은 어쩌면 미래세대 아이들이 자라나는 학교에서 완성돼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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