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입니다. 따끈따끈한 신곡을 알려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겨울엔 두꺼운 외투를 입는다. 추우니까. 목도리도 두른다. 정말 추우니까. 따뜻한 커피도 마신다. 그러면 따뜻해지니까. 그리고 하나 더. 아주 웅장한 음악을 듣거나 아주 자유로운 음악을 듣는다. 비로소 안과 밖으로 방한준비가 완벽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음악만큼 계절을 타는 게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웅장한 음악은 역시 추운 나라 음악가들이 만든 곡이 최고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 한겨울 이른 아침, 차고 깨끗한 공기 속을 산책하는 청초한 기분에 젖는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숲속을 거니는 환상은 매서운 추위마저 산뜻한 무언가로 바꾼다. 차이콥스키는 또 다른 방식으로 '겨울'스럽다. 우울하고 처절한데, 그래서 따뜻하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기운 덕인지 몰라도, 겨울엔 웅장한 것들이 제격이다.

자유로운 음악 역시 추운 계절에 '딱'이다. 재즈 말이다. 재즈는 사람으로 치면 태생부터 따뜻한 체질을 지니고 난 자다. 불규칙성이 만드는 울퉁불퉁한 리듬감. 그 위에 마음을 내려놓으면 마치 융단 위를 거니는 듯 몽실몽실한 느낌이 든다. 틀에 갇히지 않은 즉흥성, 그리고 완전한 이완. 재즈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지는 힘을 분명 지녔다. 오늘, 재즈 앨범 두 장을 리뷰한다.

영화 <라라랜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영화 <라라랜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재킷

영화 <라라랜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재킷 ⓒ 유니버설뮤직


<라라랜드>(La La Land)를 한 번 더 볼까 말까. 요 며칠 고민이다. 빤한 주제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려내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재능은 이번에도 놀라웠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라라랜드의 세계는 2시간 동안 완전한 정신적 일탈을 선물했다. 이로써 감독은 전작 <위플래쉬>의 작품성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사운드 트랙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외국 영화의 OST가 국내 음원차트 순위권에 머무는 드문 광경을 만들었는데, 음원뿐 아니라 음반 판매량도 많다.

엄밀히 말해 <라라랜드>의 곡들을 순수한 재즈로 보긴 힘들다. 가수 존 레전드가 참여하는 등 재즈에 팝 요소를 두루 더했다. 뮤지컬 넘버 스타일도 있다. 두 주인공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 외에도 영화의 전 출연진이 OST에 참여했다고 한다. <라라랜드> 수록곡 전부를 작곡한 저스틴 허위츠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과 하버드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동기 사이다. 전작 <위플래쉬>(Whiplash) 사운드트랙도 이 음악가의 작품이다.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 부른 '시티 오브 스타스'(City Of Stars)를 비롯해 'A Lovely Night', 'Someone In The Crowd', 'Planetarium' 등 <라라랜드> OST에는 영화 한 편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OST는 로스앤젤레스 필름 평론가 협외에서 '최우수 음악상', 크리틱스 초이스 무비 어워드에서 '최우수 스코어 음악상'을 받았다.

배우 지망생인 미아(엠마 스톤 분)가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이 열띤 태도로 재즈의 매력을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라라랜드> OST는 세바스찬의 극 중 '재즈 예찬'이 실제로 발현된 작품이며, '마법 같은 영화'라는 영화의 홍보문구를 음악으로 증명해낸 결과물이다. 설렘과 그리움, 슬픔 등 사랑할 때의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재즈 선율이 얼어붙은 겨울을 부드럽게 녹인다. 이 영화, 겨울 개봉은 진정한 신의 한 수다.

로라 피지의 팝 리메이크 앨범 <재즈러브>

 재즈 아티스트 로라 피지의 앨범 <재즈 러브> 재킷.

재즈 아티스트 로라 피지의 앨범 <재즈 러브> 재킷. ⓒ 유니버설뮤직


재즈 음반 하나를 더 소개한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재즈 디바 중 하나인 로라 피지(Laura Fygi)가 지난 10월 발매한 <재즈 러브>(Jazz Love)다. 국내엔 지난 2일 발매했다. 팝 명곡들을 재즈 스타일로 편곡하여 부른 곡들이 담겼다. 코린 베일리 래의 'Like A Star'부터 비틀스의 'I Love Him', 에디트 피아프의 '라 비앙 로즈(La Vie En Rose)'까지 귀에 익숙한 곡들이 로라 피지만의 색깔로 재해석됐다. 그런데 이 재해석이 원곡의 해석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특히 앨리샤 키스의 'If I Ain't Got You'는 로라 피지의 따뜻한 음성이 원곡과 또 다른 매력을 낳으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목소리에 목도리를 두른 것 같달까.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듯한 로라 피지의 보컬에 재즈 피아노가 감미롭게 녹아들고, 여기에 더해 색소폰 연주가 안정감 있고 따뜻한 분위기를 더한다. 원래부터 재즈곡인 듯 자연스럽고 세련된 편곡 역시 듣는 순간 감탄을 하게 만든다.

네덜란드의 재즈 가수인 로라 피지는 우리나라에선 광고 및 영화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CF에서 자주 접한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삽입곡 'Let There Be Love'를 부른 주인공이 바로 그다. 1993년에 발표한 앨범 <비위치드>(Bewitched)는 1997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번 리메이크 앨범은 유명한 팝을 재즈풍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 재즈가 낯선 입문자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엠마 스톤이 라이언 고슬링의 안내로 재즈의 매력에 눈 뜬 것처럼. 수록곡 중 어떤 곡은 스윙, 어떤 곡은 보사노바로 편곡되어 재즈의 비슷한 듯 다른 여러 스타일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에 듣기에 더없이 따뜻하다.



라라랜드 로라피지 재즈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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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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