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쪽방은 가난한 사람들의 최후의 안식처다. 그리고 거리노숙인이 하룻밤 추위를 면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체로 보증금이 없다는 점과, 일세로 지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쪽방은 노숙인임시주거비 지원사업에서 주거자원(거처)으로 활용된다. 즉, 주민등록을 복원하고 일자리를 찾으며 수급도 신청하는 '정착'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쪽방은 열악한 상태의 거처이지만, 거리 노숙으로 가기 전의 방파제 혹은 지역사회로의 발판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쪽방은 노숙인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 개입이 시작된 이후 줄 곧 철거의 대상이 되어 왔다. 2002년에는 서울시 영등포역 주변에 위치한 쪽방 280여 개가 도시계획시설사업으로(당시 철도소음을 방지하고자 하는 녹지조성으로 철거를 단행) 소멸되었다. 또한 2005년에는 서울역 주변 중구 소재 400여 개의 쪽방을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전면 철거했다. 2008년에는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용산구 소재 쪽방과 고시원을 포함한 도시빈민의 거처 80여 개가 사라졌다. 최근에는 서울역7017프로젝트로 인해 해당 사업지 인근 쪽방 건물이 폐쇄되었다.

무더기 철거뿐만 아니다. 회사원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 커피숍과 같은 상업 시설들,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서면서 쪽방이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이들의 거처가 됐던 곳들이 말이다.

쪽방에 살던 사람들, 어디로 갔을까?

천장에 물이 새서 수리요청을 했지만 수개월 째 고쳐지지 않아 주민들이 물받이를 대놨다. (저렴 쪽방 중)
 천장에 물이 새서 수리요청을 했지만 수개월 째 고쳐지지 않아 주민들이 물받이를 대놨다. (저렴 쪽방 중)
ⓒ 홈리스행동

관련사진보기


영등포 쪽방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추적한 결과를 보면, 5%만 임대주택에 갈 수 있었고 나머지 95%의 쪽방 철거민이 선택한 곳은 반경 1㎞ 안의 영등포동과 문래동의 쪽방과 고시원이다. 동자동과 남대문 5가동, 돈의동 역시 다르지 않다.

인근 쪽방을 찾거나 빈방이 없을 때는 거리가 떨어진 고시원이나 다가구주택의 방을 쪼개어 세를 내는 방으로 옮겨간다. 방세는 그 사이에 또 오르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쫓겨난 사람들이 지게 된다. 그런데도 행정가들은 지구단위계획에 도시 빈민의 거처에 대한 고민을 좀처럼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고급주택의 확산으로 저렴한 주거지에 대한 철거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 홈리스의 숫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에 저렴 주거지의 전면철거 방식을 전환하여 노후한 시설에 대한 개보수비용 보조, 임대료 보조 등을 진행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미인가숙박소였던 도야를 '여관업법'을 통해 절적한 주거환경과 위생시설을 갖추도록 유인하고 간이숙박소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저렴한 주거지에 적절한 기준을 갖추도록 하는'지원'과 '규제'를 통해 도시빈민들의 터전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정부는 저렴 주거지에 대한 사회적 유효성을 인정해야 한다.

서울시의 쪽방 대책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사업'과 '저렴 쪽방임대사업'이다. 이 사업은 서울시가 재정을 투입해 쪽방을 수선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영등포의 경우 시비 21억여 원이 투입됐고, 쪽방 300여 호에 대한 수선이 완료되었다. 용산구 동자동과 종로구 창신동의 경우 각각 110호와 23호가 해당한다. 이 사업을 통해 해당 쪽방들은 화재에 취약한 전기, 소방시설이나 위생설비, 도배, 장판 교체 등을 진행했고,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 사업을 조건으로 건물주와 협상을 통해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소규모 수선 방식의 접근은 개발 사업 앞에 무력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소유권이 민간에게 있는 이상 아무리 주거 환경이 양호한 쪽방이라 하더라도 개발사업으로 인해 허물어지긴 마찬가지다.

시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작년 10월 서울역7017프로젝트 진행으로 쪽방 주민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난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인 바 있다. 대부분의 쪽방은 역사 주변 등에 위치하기 때문에 쪽방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개발로 인한 퇴거 위협을 겪고 있다. 따라서 서울시 차원에서 개발 승인 이전에 쪽방 지역 주민에 대한 사전 대책을 수립하도록 강제하고, 구청에서 이를 시행하도록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퇴거대책에는 일반적인 보상과 별개로 다른 계획이 존재해야 한다.

서울시에서는 현재 쪽방 지역 주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저렴쪽방'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5년간 건물주에게 영업권을 보장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쪽방 주민에게는 이마저 시한부다. '저렴쪽방'이라는 이름 또한 적절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 수준과 점유하는 공간의 주거 환경을 고려해볼 때, 임대로가 저렴하다고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쪽방 지역 내에 서울시 혹은 SH 등 공공이 직접 공급하는 안정된 주거공간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쪽방 지역 내 건물을 매입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야 한다. 운영방식을 마련하는 데 있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래는 동자동 쪽방에 살고 계신 김성호님의 이야기다.

"사실 거리에서 벗어나 방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꾸준히 일 할 수 있는 일자리와 눈비 피할 수 있는 잠자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쪽방이 없었다면 지금도 저는 거리에서 꿈만 꾸고 있었을지 모릅니다.하지만 불편한 쪽방에서 계속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일자리를 얻어 돈도 모으고 쪽방에서 월셋방으로 월셋방에서 전세방으로 가고 싶습니다.그러려면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저렴 쪽방에서 복지상담도 받고 인생의 계획도 세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신 홈리스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함께 추모하며, 열악한 홈리스 복지 및 정책 개선을 요구한다.
 돌아가신 홈리스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함께 추모하며, 열악한 홈리스 복지 및 정책 개선을 요구한다.
ⓒ 홈리스행동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홈리스주거팀]에서 작성한 글로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성북주거복지센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홈리스행동' 단체로 이뤄져있습니다.



태그:#홈리스, #홈리스추모제, #노숙인, #쪽방, #도시빈민
댓글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