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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로 만든 콩나물시루, 한번에 4인 가족이 콩나물무침과 콩나물국을 끌여 먹을만큼 재배할 수 있다. 콩나물뿐 아니라 다양한 씨앗의 새싹을 키울 수 있다.
▲ 콩나물시루 도자기로 만든 콩나물시루, 한번에 4인 가족이 콩나물무침과 콩나물국을 끌여 먹을만큼 재배할 수 있다. 콩나물뿐 아니라 다양한 씨앗의 새싹을 키울 수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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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유품 중에 시루가 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간혹 말린 호박과 건포도니 콩을 찹쌀가루에 섞어 시루에 얹어 쪄내면 맛난 백설기를 맛볼 수도 있었다. 옥상 창고 한 편에는 시루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쌓인 먼지만큼 망각의 시간을 간직한 채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시루에 포를 깔고 검정쥐눈이콩을 넣은 후, 물을 주면서 정성을 들였더니만 일주일 정도 되는 시점부터 콩나물을 솎아 먹을 수 있었다. 한번 그렇게 솎아 먹으면서부터 사나흘 정도는 매 끼니마다 콩나물무침에 콩나물국을 먹어야만 했다. 양을 얼마나 할지 몰라서 500g 한 봉지를 한꺼번에 다 넣었더니만 양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콩나물콩을 물에 씻어 3시간 이상 불린 후에 시루에 넣고 이틀 정도 지나자 싹이 트기 시작했다. 땅콩도 서너개 함게 넣았더니 싹이 트고 있다.
▲ 콩나물콩 콩나물콩을 물에 씻어 3시간 이상 불린 후에 시루에 넣고 이틀 정도 지나자 싹이 트기 시작했다. 땅콩도 서너개 함게 넣았더니 싹이 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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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콩나물이 고소했다. 시중에서 사먹는 콩나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콩나물콩을 키워 먹을 생각에 거금(?)을 들여 도자기로 만든 예쁜 콩나물 시루를 구입했다.

지난 가을까지는 어찌어찌 화분에서라도 파나 상추 같은 것들을 심어 먹었고, 조금 먼 곳에라도 텃밭을 가꿔서 내가 먹는 음식 중 일부는 직접 가꾼 것들을 먹었다. 단순히 돈만 생각하면, 비용은 더 많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이니 뭐니 비교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전적으로 소비자가 된다는 것, 인간에게 붙여진 '소비자'라는 딱지는 대단히 유쾌하지 않은 것임에도 현대인들은 오히려 소비함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아이러니를 즐김으로 비인간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를 공고하게 하는 이런 물신숭배로부터 해방되려면 무엇보다도 '소비자'라는 딱지를 일부라도 떼어버리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한편으로 손해보는(?) 짓을 매년 반복한다.

콩나물콩이 싹을 내기 시작하니 '콩나물 자라듯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 콩나물 콩나물콩이 싹을 내기 시작하니 '콩나물 자라듯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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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서부터는 지난 가을에 거뒀던 고구마, 동지가 지나고 나면 쒀먹을 호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먹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콩나물기르기였고, 그런 생각에 불을 지핀 것이 어머니의 유품으로 남았던 시루였다. 그러나 그 시루는 너무 컸고, 우리 가족이 한번에 먹을 만큼만 키우려면 좀 작은 것이 필요했다.

다양한 제품이 있었지만, 자연을 닮은 재래식, 그래서 도자기로 만든 것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후 두 번 연달아 실패를 했다. 실패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지는 못했지만, 묵은 콩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시루를 구입한 후 연속으로 실패를 했으니 혹시라도 시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햇콩을 구입해서 다시 시도를 했다. 만일, 이번에도 실패하면 구입한 시루는 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실패를 거울 삼아 100g 정도의 콩을 씻어서 3시간 정도 물에 담가두었다가 시루에 깔고 콩 위에 얇은 천을 덮어주었다. 천을 깐 이유는 물을 줄 때 콩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혹시 콩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날땅콩도 서너알 함께 넣어주었다.

콩나물이 잘 자라주었다. 한웅큼 식탁에 올릴 콩나물을 다듬었다.
▲ 콩나묵수확 콩나물이 잘 자라주었다. 한웅큼 식탁에 올릴 콩나물을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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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었다.

잔뿌리 하나도 없이 죽죽 뻗은 콩나물, 맨처음에는 땅콩이 싹을 내었는데 이틀 사이 콩나물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땅콩은 저 아래로 묻혀 버렸다. 양도 적당했다. 4인 가족이 다른 반찬을 더해서 무침과 국으로 먹기에는 100g이면 충분했다.

일단은 시중에서 구입한 콩나물과는 고소함에 있어서 비교대상이 아닌듯 했다. 약간 콩나물 두께가 얇긴 하지만, 콩나물 길이는 적당했고, 무엇보다도 껍데기 외에는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직접 키운 것이다 보니 아까워서 콩나물 대가리 하나도 허투로 버리지 못한다.

별다른 양념없이 살짝 데쳐서 최소한의 양념으로 무쳐낸 콩나물, 콩나물대가리의 고소함은 시중에서 사는 콩나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 콩나물무침 별다른 양념없이 살짝 데쳐서 최소한의 양념으로 무쳐낸 콩나물, 콩나물대가리의 고소함은 시중에서 사는 콩나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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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한 일, 그러나 나는 이 작은 행위를 통해서, 내 식탁에 올라오는 것들에 내 손길과 정성을 불어넣어줌으로서 나의 식탁을 아주 특별한 식탁으로 만든다. 더군다나 100% 소비자가 아닌 삶을 살아가므로, 조금이나마 생태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종이 겸손하게 살아가야만 함을 깨닫게 된다.

로컬푸드, 심플푸드 등이 관심사로 떠오른지는 이미 오래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단순히 인간에게 좋은 먹을거리만을 제공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들이 있다. 인간은 생태계로부터 가장 많이 의존하면서 사는 존재다. 어쩌면, 이런 작은 일들은 소일거리나 불필요한 일들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먹을거리 중에서 하나라도 직접 키워서 먹는 것을 실천하면 건강한 식탁을 넘어서는 소중한 것들을 더 많이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그것들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손길들에 대한 감사와 그렇게 수고했음에도 늘 어려운 삶을 강요당하는 농민들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생각들을 건성 혹은 머리로만 아니라 좀더 깊게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봄이 오기 전까지 나는 식탁에 올릴 이런저런 것들을 시루에 키울 생각이다. 콩나물이 자라는 환경이라면, 필경 다른 것들도 재배가 가능할 것이다. 며칠 뒤, 이 기사의 후속편이 이어지길 바란다.



태그:#콩나물, #먹을거리, #심플푸드, #로컬푸드,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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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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