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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촛불혁명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과도기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추진함에 따라 동아시아 질서가 요동을 치고 있다. 미국의 영향을 받는 한국 정권에 대한 대중의 태도도 조금씩 싸늘하게 바뀌고 있다. 최순실 사태가 박근혜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정치제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로 연결되는 데는 이런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의 권력형 비리에선 볼 수 없었던 최순실 일가의 독특한 캐릭터와, 대통령은커녕 읍장·면장도 할 수 있을까 말까한 박 대통령의 공직수행 태도가 공개된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지배층인 재벌에 대한 반감이 심각해진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또 다른 요인이다.

여기다가 동아시아 질서의 변동과 미국의 약화라는 외부적 요소까지 한데 뒤엉켰다. 이 체제를 감싸는 최상위의 존재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권에 대한 내부의 도전이 훨씬 더 용이해지고, 그 도전에 대한 정권의 대응이 훨씬 더 무기력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처럼 외국과의 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나라에서 종종 나타난다. 자주성이 약해 부실한 체질을 가졌기에, 환절기에 기온이 약간만 떨어져도 면역력이 약해져 콜록콜록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국제질서 과도기의 기온 변화로 면역력이 떨어진 정치체제가 매주 수십만에서 백만 개 이상의 촛불이라는 내부적 도전에 시달리고 있으니, 박 정권 같은 무능한 집단으로서는 몸살을 앓지 않을 수 없다.   

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가 내부의 위기로 이어지고 국가의 존망에까지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 왕들이 있었다. 바로, 6세기 신라왕들이다. 19일에 새로 시작하는 KBS2 드라마 <화랑>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왕들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화랑제도가 창설된 배경에서도 그 시대 신라왕들의 위기대처법을 찾아낼 수 있다.   

 <화랑> 포스터.
 <화랑> 포스터.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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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이 된 신라, 체질개선 작업이 있었다

신라는 고구려·백제에 비해 체력이 약한 나라였다. 6세기 초중반까지도 경상북도에 국한된 작은 나라였다. 거기다가 소국 연맹체제로 운영되는 허약한 나라였다. 소국 연맹체제 그러니까 일종의 연방제나 국가연합체였다는 증거는, 그때까지도 지방 소국들이 독자적인 군대를 갖고 중앙의 병권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중앙 정부가 약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체질이 약했기 때문에, 신라는 주변 나라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랬던 나라가 6세기 중반부터 가야를 흡수하고 몸집을 불려 나가더니 7세기에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고구려까지 멸망시켰다. 신라가 이렇게 갑자기 강해진 데에는 6세기 초반부터 진행된 일련의 체질개선 작업이 밑바탕이 되었다. 

그보다 1세기 전인 5세기에 들어, 신라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외부적 시련에 직면했다. 그 전까지 한민족 최강인 고구려는 기본적으로 북중국 진출을 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상호 항쟁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다. 그런데 5세기 들어 북중국 최강인 북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자, 장수태왕(태왕이 정식 명칭)은 북중국보다는 한반도 쪽으로 창칼을 돌렸다. 그가 압록강을 건너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고구려가 한반도로 창칼을 돌리면서 한반도 정세는 한층 더 긴박해졌고, 이런 상황에서 백제는 신라를 한층 더 압박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여기에다가 동쪽 왜국은 신라한테 항상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신라의 존립이 한층 더 힘들어져 갔다.

그로 인해 위기가 가중되던 6세기 전반기에 등장한 신라왕들이 그 유명한 지증왕·법흥왕·진흥왕이다. 당시의 신라왕들은 외부의 위기가 내부의 도전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절박하게 인식했다. 신라처럼 체력이 약한 나라가 외부 추위에 장기간 노출되면, 내부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일반 백성들이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왕조가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인식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라왕들이 내린 판단은 나라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체질 개선을 통해 내부의 도전을 예방하고 외부의 추위에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체질 개선 방식 중 하나는 512년(지증왕 13년차)의 우산국(울릉도) 침공처럼 성공 가능성 높은 군사행동을 통해 중앙의 군사력을 강화시켜 가면서 지방의 병권을 빼앗고 이를 중앙으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법흥왕 집권 4년차인 517년에 있었다. 군사권을 통일함으로써 신라는 소국연합체제를 극복하고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군사권을 중앙으로 통합한 뒤에는 종교개혁이 있었다. 일단 칼을 쥔 뒤에 백성들의 의식을 개조했던 것이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 불교 국교화다. 종교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던 고대 국가에서, 국교를 바꾸는 것은 국가를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일이 군사권 통합 뒤에 벌어졌다.

그 이전에 신라인들은 단군 이래의 신선교를 신봉했다. 이것은 선녀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주로 산속에서 수행하는 종교였다. 샤머니즘과 도교가 복합된 이 종교를 중심으로 신라 사회의 지배체제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6세기의 신라 정권은, 인도에서 출현하여 중국을 통해 유입된 국제적인 외래 종교를 국교로 인정했다. 이때가 법흥왕 때인 527년이다.

해외에서 들어온 불교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함으로써, 신라인들은 새로운 정신세계로 무장하고 세계정세에 대응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신선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기득권 체제를 공격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을 갖추게 되었다. 지배층 개편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전국적 차원의 권력 개편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등장한 게 바로 화랑도다. 화랑은 귀족의 자제들 중에서 사회를 이끌 만한 청년들로 구성됐다. 전국적 차원의 지배층 개편이 이루어지던 상황에서 화랑들이 등장했으니, 이들은 구체제 귀족들의 자제이기보다는 신체제 귀족들의 자제들일 수밖에 없었다.

 화랑 기념우표. 세속오계가 적혀 있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의 우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화랑 기념우표. 세속오계가 적혀 있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의 우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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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 개선에 온 열정 기울인 신라 왕들

드라마 <화랑>을 시청하다 보면 더욱 더 실감할 수 있겠지만, 젊은 화랑들은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외모가 지도력의 결정적 요소가 돼서는 안 되겠지만, 이런 점은 신라 백성들이 화랑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추종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장군이나 관료가 되어 사회를 이끌었으며, 이를 통해 신라 정권은 수월하게 민심을 자기 쪽으로 묶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병권을 통합하고 지배층을 교체하고 국가의 사유체계를 바꾸는 한편, 유능한 귀족 청년들을 앞세워 백성을 지도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신라는 내부의 체질을 바꾸어 나갔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국제질서 변화에 대처했다. 신라가 6세기에 가야를 흡수하고 7세기에 백제·고구려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체질 개선도 한몫을 했다. 

물론 그런 체질 개선이 고구려·백제의 멸망으로 이어져 한민족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민족사의 관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신라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리고 6세기 신라왕들의 방식은 다른 나라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만약 그 시대 신라왕들이 나라의 체질 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섣불리 외세와의 동맹에 주안점을 두거나 국제정세에 정신없이 휩쓸렸다면, 신라의 체질은 더욱 더 약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찬바람을 마구 쐬고 다니면 독감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게 됐다면, 고구려·백제·왜국이 가하는 외부적 위협보다도 일반 백성들이나 귀족들이 가하는 내부적 도전 앞에서 신라는 일찌감치 무너졌을 수도 있다.

따라서 6세기의 체질 개선은 일차적으로는 내부의 도전으로부터 신라 왕조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화랑도 창설 등으로 대표되는 6세기 사건들은 신라판 촛불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6세기 신라는 그런 의미에서 행운이 따르는 나라였다. 이 시기의 신라왕들은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데 온 정열을 기울였다. 나라의 체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체질과 미용에나 신경 쓰고, 새벽부터 나라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백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 시간을 갖고 나라 일을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왕들이 출현했다면, 6세기 신라가 그런 행운을 누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태그:#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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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