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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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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랑짤랑~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페 주인장이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손님인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나는 헛기침으로 주인을 불렀다. "어서 오셔, 무얼 드릴까?" 카페 주인은 약간 귀찮다는 듯 물었다. "아메리카노 작은 거로 하나 하구요, 뜨겁게요, 경제학은 어떤가요?" 내가 대답했다. 그제야 바리스타는 책을 덮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맞았다. "이리 앉아요."

주인은 눈가에 주름이 깊은 남자였다. 눈은 쌍꺼풀이 있어 크고 선명해 보였다. 코는 오뚝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고 그는 입을 뗐다. "유시민이라고 합니다, 경제학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는 대학에서 전공이나 교양 과목으로 경제학개론 또는 경제학원론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추천한다며 이 메뉴를 소개했다.

"대학에서 쓰는 경제학 교재와 강의는 학생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요. 경제학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곧바로 미시적인 연습문제 풀이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죠. 경제학이 어떤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이 실제 경제현상을 어디까지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장점과 한계를 알면서 공부하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수학적 개념과 모형에서도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있어요." (9쪽)

나는 경제학 전공 학생이 아니다. 심지어 교양과목 하나도 수강한 적 없다. 다른 메뉴는 무엇이 있나 살펴보려고 눈을 돌리려던 차 이어지는 주인장의 말.

"또한, 경제현상을 이해하고 싶지만 경제학 교과서를 펼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분들에게도 추천하는 메뉴입니다. 정치와 교육에서 환경오염과 마약, 매매춘,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다룰 수 없는 문제는 거의 없어요. 한 마디로 인간의 행위 가운데 경제적 선택행위가 아닌 것은 없다는 말이죠.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이 카페를 자주 출입하다 보면 더 깊이 있는 책도 스스로 읽게 될 거예요."(10쪽)

그가 추천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유시민, 돌베게, 2002)는 이 카페의 베스트 메뉴 가운데 하나다. 2002년에 처음 선보였으니 거의 15년이 됐다. 이 메뉴는 크게 세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인간과 시장, 시장과 국가, 시장과 세계.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GNP의 허와 실', '자유무역의 수혜자와 피해자'와 같은 작은 주제들이 뒤따른다. 주인장의 메뉴 소개까지 들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경제학은 인간의 무한한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경제학 책을 봐도, 거의 모든 책이 이 한 문장으로 경제학을 정의하고 있다.

"이 문장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세 가지에요. 첫째, 인간의 물질적 욕구는 무한하다. 물론 이건 한물 간 생각이에요. … '인간의 물질적‧정신적 욕구는 무한하다', 또는 그냥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고 고치는 게 좋겠어요. 둘째는 '자원은 유한하다'는 메시지. 세 번째는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선택'이라는 걸 해야 한다는 것." (19쪽)

그렇다. 만약 내게 2만 원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면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두꺼운 경제학책을 한 권 사던지, 치킨을 한 마리 시키던지, 영화를 보던지, 구세군에 넣어 주던지 말이다.

그러나 경제는 경제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경제는 정치와 떨어질 수 없다. 옆 동네 칵테일바 주인인 경제학자 장하준은 '경제와 정치 사이에 선명한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의 경계 자체가, 특정 경제학 이론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장하준의 경제학강의>, 382쪽)라고 말한다.

성(性), 마약, 노예, 아동 노동, 의료 등 '무엇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가'와 같은 문제를 정치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정치는 경제에게 "여기까진 오케이, 이 이상은 안 돼"라며 울타리를 쳐 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모든 경제는 계획경제에요. 아무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국민경제는 있을 수 없죠. 1989년을 전후하여 벌어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은 '계획경제' 일반이 아니라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의 종말을 의미해요."(31쪽)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는 왜 무너졌을까? 소규모 집단에서는 그와 같은 계획경제가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도 분업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소규모 집단에서는 구성원에게 각각 역할을 지정해 줄 수 있고 그에 따른 결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고도로 분업화된 대규모 사회에선 그것이 불가능하다. 5천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경제적 역할을 쥐여주고, 생산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적절히 분배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를 경제적 기본질서로 삼았던 사회주의 체제는 파산을 맞았어요. 고도 분업사회에 어울리는 경제적 기본질서는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밖에 없어요. 시장경제가 숱한 결함을 안고 있는 질서임에는 분명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기본질서지요." (45쪽)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나서며

카페를 나서며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건강하게 이 메뉴를 즐길 수 있을지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해 본다. 우선 주인장 유시민은 바리스타일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카페를 찾아오면 방송에서 보이는 온화한 그의 모습보다 더 까칠하지만 재치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책 각 소주제의 마지막 문장을 기대하며 읽어 보길 권한다. 통계나 사례들이 모두 대략 15년 전 자료들이니 과거 경제 지표들과 최근 지표들을 찾아가며 비교해 읽다보면 이 메뉴를 더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빈부격차와 불황을 비롯한 온갖 경제적인 악을 제거할 것처럼 큰소리치는 정치가를 믿지 말아요. 무식한 돌팔이가 아니면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틀림없으니까." (248쪽)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다 마셨을 때쯤 다른 손님들이 몰려왔다. 내가 경제학을 주문한 것처럼 그들은 카페 주인장을 연신 불러대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나, <나의 한국근현대사>를 주문했다. 장사가 잘 되니 카페 주인은 싱글벙글한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돌베개(2002)


태그:#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경제, #경제학,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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