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낯선 이름, 그러나 그의 투구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많은 경기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잠재력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입단 첫 해 '깜짝 투구'를 펼친 두산 고봉재의 이야기다.

올시즌 고봉재는 퓨처스리그에서 출발했다. 18경기에 등판하면서 52.1이닝 동안 3승 5패 2홀드 ERA(평균자책점) 4.99를 기록, 표면적으로 봤을 때 썩 좋은 기록은 아니었지만 퓨처스 팀 내에선 구위나 제구 면에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5월 초 고봉재는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5월 7일 잠실 롯데전에서 1군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튿날 한 번 더 등판해 0.2이닝 1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고 이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사실상 점검을 위한 등판이었는데, 합격점을 받지 못한 채 2군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두 달여 동안 2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7월 말 1군에 올라온 그는 7월 31일 잠실 한화전에서 0.2이닝 1피안타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엔 한 경기 등판으로 그치지 않았다. 8월로 접어들면서 1군 경기에 나설 기회가 많아졌다.

갑작스러운 정재훈의 부상, 그리고 신예의 등장

 두산 고봉재는 2017시즌 두산 계투진의 한 축이 될 수 있을까.

두산 고봉재는 2017시즌 두산 계투진의 한 축이 될 수 있을까. ⓒ 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8월 2일 잠실 LG전에서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재훈이 부상을 당했고, 정규시즌 남은 경기에 등판할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위 NC의 맹렬한 추격으로 1위 자리가 위태로웠던 두산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시즌 초만 하더라도 안정감 있는 투구를 펼친 이현승의 구위도 조금씩 떨어지던 시기라 정재훈의 이탈은 굉장히 뼈아팠다.

그런 상황을 기회로 발판삼은 투수, 고봉재였다. 아무래도 필승조에서 공백이 생기다보니 추격조에서 누군가는 정재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야 했다. 그 역할의 일부를 고봉재가 책임졌다. 8월 한 달간 14경기 13.1이닝 1승 ERA 4.05를 기록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경기당 1이닝 정도를 소화한 것이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고봉재가 1군으로 올라올 당시 필승조로 활용될 것이라는 계획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활약이었다. 고봉재마저 없었다면 두산 계투진은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홍상삼과 이용찬이 가세한 9월 이후엔 등판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8경기 8.1이닝 2승 ERA 7.56, 8월에 비해 제구가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아쉽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승선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선 큰 의미가 있는 시즌이었다.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고봉재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구사했다. 패스트볼 비율은 54.5%, 슬라이더 비율은 29.2%, 체인지업은 9.5%, 싱커는 5.4%로 사실상 두 가지 구종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35.1km로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다.

올 시즌 우측 팔꿈치 인대가 좋지 않아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한 오현택이 있지만 내년 좋은 몸상태로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현역 시절 옆구리 투수로서 맹활약한 조웅천, 이강철 코치가 팀에 합류한 만큼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데 있어 고봉재가 많은 도움을 받는다면 올시즌보다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찬-윤명준 이용찬은 팔꿈치 수술, 윤명준은 군입대로 자리를 비웠다.

▲ 이용찬-윤명준 이용찬은 팔꿈치 수술, 윤명준은 군입대로 자리를 비웠다. ⓒ 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이용찬과 윤명준 없는 계투진, 젊은 투수들의 각성 필요하다

올 시즌 내내 활약해줬던 윤명준, 정규시즌 막바지에 합류해 포스트시즌까지 마무리 노릇을 톡톡히 해낸 이용찬 두 투수의 부재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이용찬은 복귀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고 군입대한 윤명준은 2018년까지 볼 수 없다.

사실 고봉재뿐만 아니라 이용찬, 윤명준 없이 시즌을 맞이하는 두산으로선 젊은 투수들의 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올 시즌 부진했던 이현호와 '안식년'이나 다름없는 시기를 보낸 함덕주 두 좌완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크다.

두산 왕조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은 불펜보다 선발진의 힘이 컸다. FA로 이적한 장원준, 2년 연속으로 15승을 달성한 유희관은 물론이고 니퍼트, 보우덴이 버티는 원투펀치가 제 몫을 다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

내년에도 선발진의 활약에 기댈 수는 없다. 이제는 계투진이 받쳐줘야 할 때가 됐다. 안정감 있는 선발진이 중요한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과 달리 144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에선 계투진이 든든하다면 선발진의 과부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곧 팀이 가을야구를 하는 데까지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든 게 완벽한 두산에게 흠이 있다면 비교적 약한 계투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려는 매년 반복됐고, 올시즌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이 점을 걱정한 시선이 많았다. 완벽한 왕조를 위한 계투진의 활약, 특히 젊은 투수들의 각성을 2017년에는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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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기록 참조 : KBO, 스탯티즈
프로야구 KBO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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