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재킷 이미지. 지인이 뮤지션이 되다니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졌다.

앨범 재킷 이미지. 지인이 뮤지션이 되다니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졌다. ⓒ ANALOG INC.


인생을 살다 보면 꼭 모든 것이 시간에 비례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낄 때가 있다. 20대 후반에 만나 누구보다 가까워진 친구이자 형인 'Jong'은 좀 특별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사회적 경력은 작곡가로서 쌓아왔다. 그런 형이 12월 초 문자 하나를 보내왔다.

"앨범 냈어. 한 번 들어봐, 'Analog INC.'야."

검색을 해서 앨범 재킷을 확인했더니, 익숙한 얼굴이 하나 더 보였다. 바로 '맹추', Jong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최근 가까워지게 됐는데, 이 형 또한 대학 전공은 철학인데 음악을 하고 있다. 다만 Jong과는 달리 회사에 다니며 음악을 하고 있다.

음악을 들어보자는 생각에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제목은 '신곡', 심오한 듯 섬뜩하기도 해서 묘한 궁금함이 커졌다. 음악 장르는 록이라고 들었는데, 필자는 해당 장르에 식견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다. 헤드뱅잉이 잘 어울릴 음악을 기대했지만, 사뭇 다른 음악이 흘러나온다.

노래를 듣던 중 호기심이 생겼다. 나에겐 친하기만 한 두 사람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자리 잡았으면서도 어떤 열정과 사연으로 앨범까지 냈을까. 내가 아는 친한 형들이 음악가라고 생각하니 낯선 기분도 들었다. 조금 뒤 전화를 걸었다.

"형들 나랑 인터뷰 한 번 하자."

그렇게 지난 14일 늦은 오후,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첫 곡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되는 'Analog INC.'를 만나 사적인 인터뷰를 가져 보았다.

아는 형님이 음악하는 형님으로

 인터뷰 중 촬영한 사진. 30대 사회인으로서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중 촬영한 사진. 30대 사회인으로서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고범중


- 못 본 지 한 달 정도 됐네. 그 사이에 '음악 했던 형'에서 '앨범 낸 형'이 됐는데 어떻게 지냈어?
Jong "우선 Analog INC.라는 팀을 결성한 건 2007년이야. 당시에는 둘 다 학업을 하는 상황이어서 간단하게 합주 같은 것만 하고 나중에 앨범 내자는 말을 했었어. 그러다가 어느새 30대가 되면서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음악, 하고 싶은 일을 꼭 해봐야 후회 없겠다 싶더라. 앨범 작업은 올해 4월부터 작업을 해왔고 다만 발매가 12월에 된 거야. 한 달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웃음)."

- 팀 이름이 Analog INC.인데, 무슨 뜻인지 알려줘.
Jong "내 생각에 음원 제작 과정이 디지털화되면서 예전의 음악들과는 소리의 성향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어. 물론 디지털 음악의 장점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순수한 소리라는 면에서 따뜻함을 잊었다는 점은 단점이라고 봐. 이러한 따뜻함을 Analog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걸 잃지 말자는 취지로 Analog를 선택했고 INC.는 iNCorporated(주식회사)의 약자야."
맹추 "덧붙이자면, 요즘 아날로그라고 하면 어쿠스틱 음악을 많이들 떠올리잖아. 근데 우리는 록 음악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

- 노래 제목이 '신곡(神哭)'이더라고. 그래서 무서운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어. 본인들이 직접 제목 지은 거야? 또 작업하면서 에피소드는 없었어?
Jong "우리가 지은 제목이야. 모티브는 단테의 '신곡'인데, 무엇보다 가사 내용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 여러 감정적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을 겪는 가사 속 인물이나 몽환적인 곡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봐."
맹추 "에피소드라면 내가 혼자서 길을 걷다가 신곡의 스토리를 구상했어. 이후 바로 작사를 했고 그 가사를 Jong에게 보냈더니 이 친구도 하루 만에 작곡해서 다시 나한테 보내주더라고(웃음). 우리의 직관적 성향이 매우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네."
Jong "곡 작업 여러 번 해 봤는데 이런 경우 처음이었어. 가사 분위기가 좋아서 기타로 코드 연주하면서 멜로디 흥얼거리고 있는데 초반에 마음에 드는 노래가 만들어져서 바로 완성하게 됐어."

- 노래 제목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귀신의 곡소리잖아.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까? 혹시 노래 만든 사람들로서 제목에 드러나지 않는 의도가 있어?
종원 "우선 노래의 제목과 가사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아. 제목의 경우는 가사에 등장하는 누군가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신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 즉,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이 갑작스레 자신의 삶을 낯설게 느끼고, 그래서 너무도 혼란스러워하고 고통받는 그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전지적 관찰자의 입장인 거지."
맹추 "제목하고 다르게 가사 내용은 1인칭 시점을 사용했어. 현대 사회에 사는 특정되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이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 가사의 내용을 서사적으로 구성했어. 자세히 말 하면 주인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가사 속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과 변화를 표현했는데 특히 1절과 2절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낯섦'과 '혼란스러움' 등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지. 다만 마지막 엔딩 부분에 가서는 그래도 '삶'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고 긍정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내용의 반전이 있어. 이 부분이 뭘지 노래를 들으면서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한 흥미로운 포인트가 될 거로 생각해."

- 개인적인 질문인데 두 사람 다 음악만 하면서살아오진 않았잖아. 한 사람은 작곡가인데 활동이 뜸한지 몇 년 됐고,다른 한 사람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고. 특히 둘 다 대학 전공은 음악과 멀고. 그래서인지 왜 앨범까지 내가며 음악을 할까하는 궁금함이 들어.
Jong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밴드였어. 중학교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밴드활동을 했거든 근데 이후에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20대초부터 여러 분야의 음악 일을 하게 됐어. 게임 음악도 만들었고 대중음악도 작곡했지. 거기다 학업까지 병행하다보니 정작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음악을 할 기회가 없었어. 또 최근 내가 하는 일에 복잡한 감정을 갖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생각 끝에 내가 좋아하는 것, 추구하던 음악을 해보지 못 하고 눈을 감는다면 후회스러워서 두 번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앨범 작업 본격적으로 하게 됐고 현재는 Analog INC. 활동이 가장 주된 일이야."
맹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 사실음악은 내 삶에서 단 한번도 뒷전이었던 적이 없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음악을 들었고 Jong보다는 음악인으로서 짧게 생활했지만 평생 음악은 내 곁에 있었다고 생각해.나의 생각과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늘 있었기 때문아닐 때 싶은데, 결국이 앨범을 낸 것은 나의 현재상황이나 위치와는 관계 없이 내 삶을 사는 나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 두 사람 고등학교 동창이고 오랜 친구 사이잖아. 둘 사이에 '음악'이 중요한 매개체였다고 생각해?
Jong "물론이야. 처음 친해지게 된 계기가 음악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짝을 하게 되면서 각자 좋아하는 음악 얘기를 나누게 됐고 음악적 교류를 하기 시작했어. 20대에 들어서는 맹추가 베이스를 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창작을 꿈꿨지."
맹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게 서로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너무 비슷했다. 보통 록 좋아한다고 하면 '미국의 하드코어'를 좋아하는 부류와 '일본 록'을 좋아하는 부류로 나뉘거든? 근데 우리는 둘 다 좋아했어. 그러다 보니 음악적 성향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고 그 외의 취향도 유사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친구하고 있다고 봐."

- 둘이 좋아하는 밴드 중 소개해주고 싶은 밴드있어? 롤모델 같은?
맹추 "좋아하는 밴드나 아티스트들이 많아서 롤모델이 누굴까 고민이 되네. 가장 좋아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은 밴드는 일본의 '더 필로우스(The Pillows)'가 아닐까 싶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들의 멜로디, 사운드 등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그 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밴드들의 밴드'로 유명하다는 점 때문이야. 대중적이기보다는 동종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정받는 밴드들이라는 의미인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The Pillows'의 경우 자신들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음악적 실험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시도해. 이런 부분에서 음악적으로 본보기라기에 충분하지."
Jong "저렇게만 얘기하면 우리가 우리 좋은 음악만 하려고 하는 줄 아실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니고 'The Pillows'처럼 확실한 우리의 음악적 개성을 확립하면서도 듣는 분들도 편안해 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 그렇게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밴드가 되었으면 하는 게 궁극적인 꿈이야."

음악으로 '개똥 철학'을 한다는 것

 Analog INC.의 앨범 재킷으로 데뷔곡인 '신곡'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Analog INC.의 앨범 재킷으로 데뷔곡인 '신곡'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 ANALOG INC.


- 인터뷰 전에 참조하려고 다른 뮤지션들 인터뷰를 봤는데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가 '추구하는 음악'에 관한 질문이더라. 우리 사이에 진부한 질문 던지기 싫지만 안 할 수가 없네.
맹추 "Analog INC. 음악의 기초는 철학이라고 생각해. 철학과를 나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세상에 다양한 일들에 관해서 나름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워낙 좋아해. 예를 들어 밤에 만나서 이야기 한번 시작하면 4~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해. 그렇게 쌓인 세상을 향한 우리의 시선과 아이디어를 음악에 녹여내고 싶어."
Jong "대부분의 가사 작업이 그런 '개똥철학'을 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어. 추구하는 음악이라면 너무 거창하지만 난 언제나 예술인들이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래서 음악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심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나도 과거에 심적으로 아주 힘들 때 많은 훌륭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상처를 달래고 힘을 얻었거든."

- 개똥철학이라니까 관심이 가네. 예를 들면 어떤 것이 그런 거야?
Jong "보통의 사람들은 삶의 구체적인 사안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 정치·경제 등이 되겠지. 근데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예컨대 존재론이나 인간의 인식 등에 관해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즐겨 하고 이걸 우리는 개똥철학이라고 불러. 이런 얘기를 하면 보시는 분들이 오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가 고상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이런 데에 재미를 느끼는 특이한 사람들일 뿐이지. 우리 음악을 들어보시면 잘 느끼실 수 있으니 꼭 한 번 들어보시면 좋겠네(웃음)."

- 향후 뮤지션으로서 어떤 활동계획 가졌는지 궁금해.
Jong "이제 첫 앨범 그것도 싱글을 냈을 뿐이야. 거시적인 목표는 좋은 곡을 최대한 많이 음원으로 세상에 선보이는 거야. 곧 다가올 2017년도엔 싱글 앨범을 여러 장 발매해서 향후 정규앨범에 들어갈 곡들을 쌓아가고 싶고 이게 단기적인 목표야."
맹추 "어차피 우리는 시작이 늦은 사람들이잖아? 그러니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 또 서두르려 해도 아직 완성된 곡이 많지 않아서 공연 같은 걸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아. 차근차근 쌓아가고 우리도 더 단단해지면 그땐 우리의 이름을 걸고 많은 분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

- 이제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네. 친구로서, 같이 음악 하는 뮤지션들로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Jong "맹추는 다른 프로베이시스트들에 비해 시작이 늦은 편이야. 그리고 지금은 여건상 다른 직업 활동도 하고 있지. 근데 그런 상황에서도 특유의 체력으로 남들 몇 배의 노력을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왔단 걸 잘 알아. 앞으로도 그러한 열정과 노력으로 꾸준히 발전해 나가는 베이시스트이자 음악인이 되었으면 해. 또한, 닭살 돋지만 세상이 변하고 우리도 변하지만, 이 관계는 변함없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네."
맹추 "이 한 곡을 만들기 위해서 특히 'Jong'이 고생을 많이 했어. 그 부분에 대해서 고생했다는 말 꼭하고 싶고 앞으로 하게 될 많은 작업에는 나의 역할을 더 키워서 그 짐을 좀 덜어주고 싶네. 마지막으로 Jone은 허리가 참 약한 사람인데 관리 좀 잘해서 우리의 원활한 활동을 보장해 줬으면 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저녁이었던 시간이 새벽이 돼 있었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느꼈다. 그만큼 많은 생각과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30대 입장에서 저들만큼 무언가를 오랜 시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또 좋아하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취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믿음이 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음악이라니 어떨지 기대가 된다. 지금의 모습처럼 '균형'을 잃지 않고 삶 속에 음악이라는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다만 지금보다 더 자신들의 개성으로 단단한 음악을 해 나가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아가 설득할 수 있는 뮤지션이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시대를 사는 30대로서 꿈을 향해 자극적이지 않지만 꿋꿋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Analog INC.의 삶과 음악이 마음을 움직이는 '음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30대 청춘 꿈과 열정 뮤지션 ANALOG IN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