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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에서 가까운 공자 살던 동네 중국 곡부시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 살다 보니, 벌써 세 번이나 공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곡부시라는 동네를 다녀오게 됐습니다. 사실 제가 특별히 공자 동네를 여행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중국 친구가 가자고 해서 두 번이나 가게 되었고, 지난달에는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단체로 놀러 가는 바람에 얼떨결에 또 갔다 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중국 제남시에서 곡부시는 가깝습니다. 고속전철로 30분이면 곡부시에 도착하고, 곡부시 고속전철역에서 시내버스로 20분이면 공자를 기념하는 건축물 공묘(孔廟)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남시에서 1시간이면 공자 고향 기념관 건축물 공묘(孔廟)에 갈 수 있는 거지요. 한국 인천시에서 이곳 중국 제남시까지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니, 중국 공자 동네는 한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오전 중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중국 공자 기념관 공묘 입구
 중국 공자 기념관 공묘 입구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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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영원하다

1999년 한국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나라는 한국입니다. 그만큼 한국에도 공자 사상과 유학이 알게 모르게 한국 사람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겠지요.

마찬가지로 공자 사상과 유학은 알게 모르게 중국 사람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지금도 주위 중국사람이 생활하는 모습에서 공자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중국에서 공자는 영원합니다.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니고, 공자 기념관 건축물 공묘(孔廟)에 있는 말입니다. 중국 청나라 황제 중 한 사람이 공자 기념관 공묘(孔廟)를 방문하고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글을 써서 건물에 붙여 놓았는데 '공자는 영원히 배울 걸 알려 주시는 스승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공자 사상과 유학은 이미 수명을 다해서 중국사람 실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하는데, 제 주변 중국 친구들은 하나같이 철저히 공자 사상을 기반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공자를 좋아하는 중국사람만 사귀어서 이렇게 말하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제 주변 중국 친구는 지극히 평범한 중국사람들입니다. 시장 난전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도 있고, 열 명 규모의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고, 교통경찰 친구도 있습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세계 여러 나라에 공자학당을 세우는 걸 보고 구시대 사상으로 중국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공자 사상을 다시 살리려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보기에 공자학당은 장삿속 밝은 중국사람이 중국 브랜드를 또 하나 만든 거로 생각됩니다.

공묘 대성전에 있는 만세사표(萬世師表)
 공묘 대성전에 있는 만세사표(萬世師表)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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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늘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배우고 늘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가 살아 있을 때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정리한 '논어'책 맨 처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람이 많이 배워 많이 알고 있으면, 당연히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논어'에 나오는 배운다는 말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보다는 '논어'책에 나오는 글귀와 사상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더 맞을 겁니다. 어쨌든 공자는 살아생전 삼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니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인 같습니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공자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상과 생각을 가르치려고 했는지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공자가 교장으로 운영하던 학교, 그 중에서 공자가 직접 제자를 가르쳤던 교실을 소개합니다.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치다

공자 기념관 건축물 공묘(孔廟)에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장소를 알려주는 행단(杏壇)이라는 글자를 쓴 비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거지요. 아마도 공자는 교실을 벗어나 야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업하기를 좋아했나 봅니다. 중국어 행단(杏壇)에서 행(杏)은 살구나무이고 단(壇)은 교실 교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 교단을 만들고 그 단위에 올라서 수업을 한 거지요.

중국 공자 기념관 공묘에 있는 살구나무 행단 비석
 중국 공자 기념관 공묘에 있는 살구나무 행단 비석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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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행단(杏壇)이라는 단어는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교육하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다른 도시에 있는 공자 기념관 문묘(文廟)에도 하나같이 살구나무를 심어 이곳이 공자 사상과 유학을 가르치는 장소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한국에서도 행단(杏壇)이라는 단어는 공자 사상과 유학을 교육하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학을 상징하는 최고 건물인 성균관에도 행단(杏壇)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성균관에는 중국과 달리 은행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한국 성균관 은행나무 역시 이곳이 공자 사상과 유학을 교육하는 장소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400년 이전에도 한국 성균관에 다른 은행나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있지만, 현재 한국 성균관에 있는 은행나무 수령은 400년이나 됩니다. 그러니까 400년 전 조선 시대 유학자인 누군가가 공자 사상과 유학을 가르치는 장소라는 걸 기념하려고 은행나무를 심은 거지요.

중국에서는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는데, 한국에 전해지면서 살구나무가 왜 은행나무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1700년 중반 조선 시대 화가 심사정이 유학의 가르침을 표현한 연비문행(燕飛聞杏) 그림에는 살구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조선 시대 사람들도 공자의 야외수업장소인 행단(杏壇)이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이미 은행나무가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상징하는 나무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게 아니라 살구나무가 맞으니 성균관에 심은 은행나무를 파버리고 원래 오리지날인 살구나무로 바꾸자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겁니다. 성균관 은행나무는 현재 한국에서 천연기념물 5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조선시대 화가 심사정이 그린 연비문행(燕飛聞杏)에 있는 살구나무
 조선시대 화가 심사정이 그린 연비문행(燕飛聞杏)에 있는 살구나무
ⓒ 출처: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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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생각하는 공자 사상과 유학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 옷을 입고 공묘를 관광하는 중국사람들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 옷을 입고 공묘를 관광하는 중국사람들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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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공자 사상과 유학을 상징하는 살구나무가 한국에서 은행나무로 바뀐 것처럼, 원래 문화란 전래하면서 전래한 지역 풍토에 맞게 어떤 때는 조금 어떤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중국사람은 공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논어' 책과 '위대한 스승'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한국사람은 공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유학'과 '삼강오륜'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사실 제 주변 중국 친구 중에는 삼강오륜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알고 있더라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중국에서 유학이 이미 수명을 다한 사상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공자 사상과 유학 그리고 중국사람이 생각하는 공자 사상과 유학은 많이 다릅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도 많이 다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공자 사상과 유학이 어떻게 다른지는 다음 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태그:#중국, #중국여행, #공자, #유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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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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