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목숨 건 연애>에서 허당추리소설가 한제인 역의 배우 하지원이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액션, 로맨틱코미디, 공포 영화에 이르기까지 하지원은 그 쓰임이 전천후다. 비슷한 느낌을 남기지 않고 매작품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게 그의 장기다. ⓒ 이정민


'황진이', '길라임', 그리고 '기승냥' 등. 하지원을 수식하는 대표 캐릭터들이다.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평생 기억에 남는 캐릭터 하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이 말에 비추면 하지원은 참 행복한 경우다. TV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을 통해 사랑받고, 지금까지 스타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최근 이 정국이 가만두질 않았다. 국가의 수장이 한 피부과에서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대리 진료 및 처방을 받았다. 한 배우의 아이콘이 의도치 않게 훼손되는 순간이었다.

마침 하지원은 1년여 만에 새 영화로 대중과 만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간 진지하고 무거웠던 역할에서 벗어나 한결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추리소설 작가로 분했고, 중화권 스타 진백림과의 만남도 화제가 될 수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길라임'이 회자 중이다. "저도 참 애착이 가는 캐릭터다. (<목숨 건 연애>의 캐릭터 이름인) 한제인은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재치 있게 생각을 밝혔지만, 이렇게 된 이상 좀 더 묻기로 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하지원을 만났고, 그는 흔쾌히 답했다. 짧고 굵은 시간을 통해 그에게 배워야 할 덕목을 추려봤다.

[하나] 작품을 대하는 자세

 영화 <목숨 건 연애>의 한 장면.

영화 <목숨 건 연애>의 한 장면. 한제인은 작품 속에서 철저히 망가지며 웃음을 만드는 인물이다. ⓒ 오퍼스픽쳐스


사회 이슈로 강제 소환됐지만, 작품, 특히 영화에 대한 갈증은 누구보다 강한 하지원이다. 드라마로 인기를 구가했고,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 영화에 도전했다. <7광구>에선 강한 여전사였고, <코리아>에선 국민의 마음을 울리는 탁구선수였으며, <허삼관>에선 남편을 지고지순 사랑하면서 강한 내면을 지닌 지혜로운 아내이자 엄마였다.

이 모든 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하지원의 인생관과 관련 있다. "주어진 여건 안에서 다른 생각하지 않고 해내려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일종의 영웅적 면모까지 느껴진다.

<목숨 건 연애>도 그에겐 새로운 영역이다. 대기만성형 추리소설 작가가 연쇄살인 사건을 실제로 쫓게 되며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그렸다. 영화 속 한제인은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고 있고, 호기심이 매우 강해 잦은 실수를 하는 인물. 그만큼 보다 철저히 망가져야 했다.

"(웃음) 액션 장르를 많이 했지만, 몸이 근질거리진 않았어요. 어찌 보면 평소의 제 모습이 많이 담긴 캐릭터였죠. 한제인이 정의감 있고, 호기심도 많은데 호기심 많은 게 저와 비슷해요. 근데 실제로 빈집에 막 들어가고 그러진 않겠죠(웃음).

선택에 왜 후회 안 하냐고요? 비겁하잖아요. 내가 고민해서 선택해놓고 남 탓하는 거요. 일단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러면 후회도 적더라고요. 흥행 결과는 안 좋더라도 그건 제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니 겸허히 받아들이려 해요. 결정하기 전에 숙고하는 편이고, 아쉬웠던 작품도 있죠. 하지만 어쨌든 제가 하는 작품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후회 없이 하는 편이에요. 나중에 좋은 작품으로 더 잘하면 되니까요."

[둘] 꿈을 대하는 자세

 영화 <목숨 건 연애>에서 허당추리소설가 한제인 역의 배우 하지원이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양한 표정의 하지원. 어느새 그도 인터뷰에서 더욱 편하고 능숙하게 기자를 대하고 있었다. ⓒ 이정민


데뷔 18년 차로 프로 중 프로지만 하지원은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를 꿈꿨던 첫 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청소년 드라마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타인을 대하고 낯선 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낯은 가렸을지언정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뭘 원하는지에 대해선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연기 외적인 매니지먼트 사업에서도 수준급 이상의 전문가 냄새가 난다. 중견 연예기획사에서 독립한 이후 5년이 지났고 별 탈 없이 회사를 꾸려오고 있다. 대형 기획사의 스카우트 제의에 혹시 옮길 생각이 있는지 짓궂은 질문이 있었지만 "아껴서 운영하는 게 이제 습관이 됐다"며 하지원이 웃어 보였다. 그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묵묵히 걷겠다는 의미다.

"회사는 작고 아기자기한데 뭔가 좋아요. 매주 월요일에 회의하는데 저도 일정이 없으면 꼭 참석한답니다(웃음). 전문 경영인은 물론 따로 계세요. 돌아보니 벌써 5년을 했네요. 장단이 있겠지만 일단 회사 일은 이제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제 일이라 일하면서도 재밌어요.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걸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건드릴 때 스스로 이 일을 참 잘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배우가 됐거든요. 학생 때 고두심 선생님의 연기를 봤는데 소름이 돋고 막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대체 이 분은 어떤 힘이 있기에 이렇게 사람 마음을 움직일까 궁금했죠. 그때 제가 숫기가 너무 없어도 입 밖으로 배우 하고 싶다는 말을 전혀 안 했어요. '내가 어찌 감히 배우를 해?'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그 동경이 이뤄졌고, 이후 관객분들이 절 보고 울고 웃고, 공포영화에선 놀라고 하실 때 마음이 참 좋아요."


[셋] 각성한 시민으로서

 영화 <목숨 건 연애>에서 허당추리소설가 한제인 역의 배우 하지원이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라임이란 이름으로 의도치 않게 사회면에 이름을 올렸지만 하지원은 그에 대한 걱정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각성해 정치 및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닐지. ⓒ 이정민


영화와는 조금 떨어진 질문이었지만 하지원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정부가 작성한 거로 추정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돼서 거침이 없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도 사랑해 마지않은 '길라임' 차용 사태에 대해 하지원은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고, 나 역시 큰 사랑을 받은 거였구나 한 번 더 실감했다"며 "요즘 아시아권에서 재방송을 계속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저도 밥 먹으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룸>을 보다가 본 거였어요. '응? 길라임이 뉴스에 나오다니' 생각했죠. 그전엔 사실 뉴스를 잘 안 봤는데 요 근래부터 관심 있게 보고 있거든요(웃음). 국민들이 촛불집회 하시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국민 자체가 희망이라는 걸 느꼈어요. 참 대단하죠."

정치, 사회 이슈를 일상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움직임, 그러니까 일종의 정치 혐오에 대해 하지원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듯 보였다. '일련의 상황을 보며 정치와 일상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임을 느끼지 않나?'라는 질문에 "그렇죠"라고 그는 짧게 답했다.

그런데도 희망. 하지원은 희망을 얘기했다. "참 어려운 시대지만 많은 분이 힘을 내기 위해 희망을 갖고 살잖나"라고 되묻던 하지원은 "그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 내 안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오늘도 나아가서 내년 2017년을 또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목숨 건 연애>에서 허당추리소설가 한제인 역의 배우 하지원이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하지원, 그도 한 사람의 시민이었다. 배우로서의 꿈도, 시민으로서의 꿈도 모두 하지원 자신의 것이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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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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