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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사] 어머니에 대한 소망이 어그러진 채 왜곡되면?

나 : "제가 조카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한 번 보실래요?"

내가 가지고 다니는 조카의 5살 때 사진을 보여줬다. 똑깍인형의 아빠는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사진 속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 "너도 많이 불안한가보구나. 표정이 밝지 않네."
나 : "아~ 표정이 밝지 않나요?"
아빠 : "어떻게 엄마가 없는데 애 표정이 밝겠어요. 그럴수는 없지요."
나 : "왜 그럴수는 없나요?"
아빠:"엄마가 언제 자기를 버리고 갈까봐 늘 불안한데 어떻게 밝을 수 있겠어요."

똑깍인형의 아빠는 내 조카가 이미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들었음에도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나 : "그렇겠네요. 하긴 저 또한 어렸을 때 학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안 보이면 집안 곳곳을 다니며 찾았었으니까요. 똑깍인형의 아버님도 어머님이 떠나실까봐 늘 불안하셨을 것 같아요."

이런 내 질문에 다행히도 친모에게 지녔던 분노는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 : "이런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러우나... 저는 똑깍인형의 할머님과 아빠의 관계를 여쭙고 싶네요. 물론, 원하시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시다면 안하셔도 좋습니다."
아빠: " 제가 모친과의 관계를 이야기 해야 하나요?"
나 : "사실 많은 분들이 상담소를 처음 방문하실때는 아이 문제로 오시지만... 부모님과 같은 가까운 어른들의 평소 말과 태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맺는 방법이 아이에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아시게 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 편이에요.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면 저 또한 그에 맞는 반응과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말씀드리게 되죠. 그러면 첫 방문 때보다 훨씬 편안해 하세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지금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고요."

아빠 :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고요?"
나 : "그렇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존재하지 않거나 병원에 있지 않을까요?"
아빠 : "하긴 그러네요."
나 : "그리고 아직(2005년) 한국의 아버지들께서는 자녀의 성장발달 과정이나 특히 인성에 큰 관심이 없을 수 있는데도 아버님은 이렇게 내방해 주신 점을 볼 때 기꺼이 똑깍인형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까지도 하실 분으로 보이십니다."

아빠 : "그렇지는 않지만... 똑깍인형을 행복하게 키우고 싶어요. 저 처럼은 절대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
나 : "'저처럼'이라면?"
아빠 : "부모에 대한 불신이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꽉 차 있었으니 늘 불안하고 외롭고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 하고는 말도 섞기 싫어하니까요?"
나:"머리에서 발바닥까지 꽉 차 있으셨나요? 지금도 그런가요?"

아빠:"모르겠습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이 지금도 용서가 안 돼요."
나 : "어떤 점이 용서가 안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빠 :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사건들이 있어요. 술마시고... 아마 내가 5살 때였을거예요. 새벽에 들어와서 토하고 소리지르고 그리고..."

내가 "남자를 집에 들였나요?"라고, 그런 인은 다른 사람드레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질문했다. 그러자.

아빠 : "(깊은 한 숨을 쉬더니) 예..."
나 :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몹시 혼란스럽고 화가 났었을 것 같은데."
아빠 : "그렇지요. 그러니까 어린 저는 술취한 남자가 절 보고 귀엽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해서 남자의 손을 물어뜯었어요."
나 :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아빠 : "그죠. 나는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나 : "그럼요. 그럴 수밖에 없으셨겠지요. 어린 5살짜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똑각인형의 아빠는 온몸이 딱딱한 얼음이 되듯 얼굴마저도 창백해졌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아주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빠 : "정말 싫었어요. 한두 번이 아니였지만 그때마다 죽고 싶었어요."
나 : "동네 사람들이 볼까봐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아빠 : "그렇지요. 밖으로 어떻게 나가요. 주위 사람들이 다 나만 보는 것 같고, 모친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동네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였어요."

나 : "저런... 그 어린아이가 의지할 사람도 딱히 없으셨을 것 같은데..."
아빠 : "없었지요. 아무도요. 친척도 없고."
나 : "외가쪽은 없으셨나요?"
아빠 : "나라도 그런 자식이나 그런 형제가 있으면 아는 척 안할 걸요?"
나 : "'그런 자식'이라면 외가에서 볼 때 친모를 두고 말씀하시는건가요?"

아빠 : "네. 그런 일들이 한두번이 아니였어요.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집에 연탄이 없고 추운 겨울이였는데도 이불이나 내가 입을 옷, 먹을 것을 챙겨주지 못했어요. 밤새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오후까지 자고... 그러니 밤새 내가 얼마나 추위에 떨고 지냈는지도 그 사람(모친)은 모르지요. 그리고 술마시고 들어왔으니 추운 줄도 모르는지 잠만 잘 잤어요."

나 : "그 어린아이가 추운 겨울밤에 혼자서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요?"
아빠 : "말로 다 못하지요. 그렇다고 동네 누구 한사람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 : "동네 누구 한 사람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내가 이렇게 묻자 똑깍인형의 아빠는 바로 알아차린 듯 말했다.

아빠 : "하긴... 내가 동네사람들이 알까봐 만나지도 않았었고, 말도 걸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몰랐겠죠."
나 : "그럴수록 그 어린 아이는 점점 더 괴롭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랬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똑깍인형의 아빠는 자연스럽게 모친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말해줬다. 죽고 싶은 심정부터 현재(2005년) 한 집에서 함께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류상으로라도 모자지간으로 지내고 있는 근황까지 다 말해줬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똑깍인형의 아빠가 본인과 모친에 대하여 중요한 내용들을 다 털어놓고 내게 "내 편을 한 분 만든 것 같아서 좋네요"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이 분은 사람을 구분하면서 살아온 패턴을 내게도 적용하고 있었다. '내 편'이라는 믿을 만한 사람 과 믿지 못할 사람으로. 

지금까지 부모의 외도에 대한 자녀의 반응과 자녀의 심리적인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된 논문을 찾아 참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자녀가 부모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분노를 지닐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외도인 것 같았다.

부모가 자녀를 방임하거나, 독재적으로 키우거나, 또는 책임감이 약하거나, 경제력이 없는 경우에는 자녀 또한 그런 상황이 불편하고 누리지 못한다. 그러면 소통이 안 돼 답답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불만을 품고 대든다. 하지만, 부모의 외도를 알고 자랐던 사람들만큼 부모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지니진 않는다.

왜 적개심과 분노를 강하게 지니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이런 식이었다. 부모의 사랑이 다른 대상에게 갔을 때 자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게 자라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부모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위험한 생각과 행동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태그:#외도, #성적 부도덕, #연탄, #추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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