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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메탄올, 노조파괴, 일터 괴롭힘, 화학물질 알 권리, 산안법 개악, 화학 공장 폭발 사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삼성 에어컨 설치기사 추락사, 현대중공업 노동자 산재 사망. 그리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거나 죽어갔을 노동자들. 노동자들의 일상이 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노동자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올 한해 전국에서 고군분투했던 이들에게 2016년은 어떠했을까? - 기자말

노동자의 삶과 미래를 빼앗은 '위험의 외주화' -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구의역, 그 현장.
 구의역, 그 현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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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2016년 노동안전보건의 이슈는 '위험의 외주화'다. 메탄올 중독사고로 청년 노동자 7명이 중독되고, 6명이 실명 위기에 빠졌다. 5월에는 구의역에서 19살 청년 하청 노동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삼성, LG 등 재벌 대기업이 2차 3차 하청을 주고, 공기업인 서울 메트로에서 남발한 외주화로 노동자들이 삶과 미래를 빼앗기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2016년이 더욱 중요한 것은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노동자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와 분노의 물결이 더욱 거세졌다는 것이다.

구의역 참사는 시민 대책위 구성과 진상조사단 활동까지 이어졌고, 7개 안전 업무직은 무기 계약직의 제한성은 있으나, 직접 고용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메탄올 중독사고 피해자는 삼성과 LG의 책임회피로 제대로 된 보상조차도 어려운 실정이다.

구의역 참사 시민대책위 활동을 함께하면서,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구의역 고 김군은 민주노총 여성연맹 조합원이었고, 서울 메트로에는 서울지하철노조가 있었다. 여성연맹 조합원들의 현장 실태에 대한 고발과 서울지하철 노조, 도시철도공사 노조의 지하철안전시스템과 승강장 안전문의 위험성에 대한 적극적인 증언이 없었다면, 이 문제는 그 이전의 사고처럼 개인과실로 정리되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고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의 지하철은 수많은 위험업무를 외주화하고 있으며, 전국의 지하철, 철도 역시 마찬가지다.

구의역 참사 때 뻔질나게 사진을 찍어대던 국회의원들과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겠다며 줄줄이 발의했던 입법안들은 지금은 완전한 찬밥 신세다.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답이라는 분노와 또 다른 다짐을 하는 2016년이었다.

죽음 부르는 일터 괴롭힘 - 송홍석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노조파괴가 고 한광호 열사를 죽였다
 노조파괴가 고 한광호 열사를 죽였다
ⓒ 유성범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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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7일,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인 유성기업에서 마흔두 살 한광호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은 2011년 직장 폐쇄 이후 깡패를 동원한 폭력과 무차별적인 고소 고발과 징계로 조합원들을 경제적·정신적으로 탄압하며 삶을 파괴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고 한광호 열사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11차례 고소를 당했고, 2건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3번째의 징계를 위한 사실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 자본은 검·경을 비롯해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2011년 이후 조합원 1인당 많게는 50여건, 보통의 경우 수십 건에 이르는 고소 고발로 조합원들은 수시로 경찰 조사와 재판에 시달리고 경제적·사회적으로 끊임없는 고통을 가했다.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같은 정신질환 고위험 군으로 노동부는 임시건강진단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 유성자본은 이미 산재 승인된 5건의 정신질환에 대해서 산재 승인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파렴치한 짓까지 저질렀다. 실로 노동자 죽이는 '살인 기업' '살인 자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016년 5월 7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외식업체 ○○○에 조기 취업했던 열아홉 살 청년노동자가 일터에서 뛰쳐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는 일이 욕 먹기'라며 심한 욕설과 폭행에 괴롭힘당하고, 42번의 오마(오픈과 마감) 벌칙으로 2시간 조기출근에 밤 11시 넘어서까지 초장시간 노동에 수면 부족을 호소하며 체중이 10kg이 빠졌다.

2도 화상을 입었음에도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청년노동자는 이런 괴롭힘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계속 근무를 강요당했다. 그리고 그는 5월 7일 물류창고 근처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야 괴롭힘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가학적 노무관리와 일터 괴롭힘은 살인적인 자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터 곳곳에서 노동자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뭉개고 자본의 힘에 굴복시키려는 행위들, 노동자 간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는 조직 환경들은 노동자의 힘을 약화해 파편화하려는 '일터 괴롭힘'의 양태들이다.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하여,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남영전구 수은중독사건 그리고 스타케미칼 폭발사고 - 송한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남영전구 집단 수은중독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이 지났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환경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수은 노출 위험 철거작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광주지방검찰청은 남영전구 광주공장 관계자 2명과 공사현장 책임자 1명을 구속했다. 생산설비 철거작업에 참여했던 21명 중 12명은 산재보상을 받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수은중독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었다. 아직도 10명은 불면증, 피로, 불안, 감각이상, 통증과 같은 증상으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중 3명만이 겨우 직업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일하고 나면 심한 몸살을 앓았다. 불면증과 피로는 그들을 계속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 경북 칠곡군 구미국가산업단지 스타케미칼 공장의 폭발사고로 한 분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들었다. 다음날 외래에 오기로 했던 박영복(가명)씨는 오지 않았고, 또 다른 수은중독 피해자로부터 스타케미칼 폭발사고로 박영복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사건은 우연히 발생했을까? 화학 공장의 설비를 철거하는 업무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대부분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1년 중 평균 8개월 정도 근무하고, 4개월 정도는 일을 구하지 못해 실업상태로 지낸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험하더라도 그런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철거과정은 많은 잠재적 위험요소를 내포하지만, 안전한 철거를 위한 비용은 법과 제도로 강력하게 강제되지 않는다. 위험작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고, 위험작업을 방치하는 사회적 조건이 있는 것이다.

군산에서 배를 만드는 목수였던 박영복씨는 새만금 사업으로 포구가 없어지면서 철거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설비철거를 하던 중 수은에 중독됐다. 그는 수은중독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보상을 병원을 방문한 날로 제한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그는 무리하게 일하러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박영복씨의 동생을 외래에서 만났다. 짐작되는 바가 있어, 동생분에게 폭발사고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었다.

"2명씩 2개 조가 일했었대요. 2명이 아래, 2명이 위에서 일했는데, 아래쪽에 사람이 필요해서 1명을 불렀대요. 그런데 형이 위에 남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대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위험의외주화, #구의역, #유성기업, #수은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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