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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이 한마디를 입에 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합니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로 직무 정지 상태에 놓인 박근혜 정부 4년차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유행어입니다. 적어도 '헬조선'이라는 말에는 그 밑바탕에 '나라'가 존재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뿌리부터 의심받고 있습니다. 마침내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묻습니다. 이게 나라가 맞느냐고요.

개성공단, 서울대병원, 성주... 곳곳에서 쏟아진 울분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지난 2월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 가동 중단 조치에 철수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지난 2월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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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북한의 핵실험에 남한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 통보로 응수하며 긴장 속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돈줄 차단'을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대북제재가 아닌 '대남제재'라는 비판도 흘러나왔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124개 입주 업체와 5000여 개 협력업체에게 고스란히 전가됐습니다.  

정부의 일방 발표로 피해를 본 시민들은 또 있었습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통보받은 경북 성주 군민들은 올해 농사를 포기했습니다. 일부 주민은 혈서까지 쓰며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지팡이를 짚은 노인까지 여름 내내 촛불을 들었습니다. 성난 민심을 수습하고자 황교안 국무총리가 뒤늦게 찾아갔지만 군민들의 답은 물병과 계란 세례였습니다.

사드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군으로 확정을 앞둔 지난 7월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명이 참석해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드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군으로 확정을 앞둔 지난 7월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명이 참석해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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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은 잃은 백남기 농민은 결국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의식불명에 빠진 지 317일 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서울대학교 병원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외부 충격으로 인한 사망을 뜻하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기록했습니다.

정부는 유가족에게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강제 부검'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부검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였고 유가족도 크게 반발해, 결국 경찰은 부검을 포기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은 그가 사망한 지 37일 만에 이뤄졌습니다. 한 시민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 만에 사망한 직후인 지난 9월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출발해 장례식장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민, 학생들이 경찰의 강제부검에 대비해 운구차량을 에워싼 채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시민들이 보호하는 백남기 농민 운구차량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 만에 사망한 직후인 지난 9월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을 출발해 장례식장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민, 학생들이 경찰의 강제부검에 대비해 운구차량을 에워싼 채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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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지난 11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리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지난 11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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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벌어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처음 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숨진 여성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애도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과 국화꽃이 출구 외벽을 가득 메웠습니다. 곳곳에서 쏟아진 여성들의 목소리는 하나였습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슬픔과 분노였습니다.

지난 4월 총선은 이변 그 자체였습니다. 많게는 230석까지 차지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이 참패했습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습니다. 야권에서는 국민의당이 호남 의석을 석권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는 31년 만에 야당 후보(김부겸 더민주 의원)가 당선했습니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민주 의원의 국회 입성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사건의 절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빅이슈가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지난 7월 7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며 회견문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지난 7월 7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며 회견문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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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노골적으로 보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폭로됐습니다. 전국언론노조 등이 공개한 음성파일에서 이정현 대표는 세월호 관련 정부 비판 보도에 항의하고, 특정 뉴스 꼭지를 언급하며 내용을 바꿔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파문 이후에도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끝내 당선한 것도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7월에는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공개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보도 직후 삼성은 '개인의 사생활'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서는 영상이 촬영된 고급 빌라가 김인 삼성SDS 고문 명의로 돼 있던 점 등을 이유로 그룹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대국민담화 마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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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범 및 사기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최순실씨가 지난 11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범 및 사기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최순실씨가 지난 11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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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일어난 사건사고 중 '절정'은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공모해 정체불명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고 대기업에 774억 원을 강제 출연하도록 강요했고, 최씨의 딸이 졸업한 초등학교 학부형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대기업에 납품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며 특혜를 주었다는 등의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 주변인을 채용하도록 대기업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사인에 불과한 최순실씨가 광범위하게 국정에 개입했다는 것도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최씨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수십 차례 받아봤으며,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청와대가 '태반주사' '백옥주사' 등 영양미용을 목적로 한 주사제를 대량 구입했으며, 대통령에게 처방했다는 사실도 밝혀져 논란이 됐습니다.

그사이 시민들의 분노도 점차 커졌습니다. 10월 29일 3만 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11월 5일 20만, 11월 12일 100만, 11월 19일 전국 포함 100만(서울 60만 지역 35만), 11월 26일 전국 190만(서울 150만, 지역 40만), 12월 3일 전국 232만(서울 170만 명, 지역 62만 명)으로 번졌습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지난 10일에도 전국에서 104만 명(서울 80만, 지역 24만)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100만 이상의 시민이 운집한 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2016년 올해의 인물을 뽑아주세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지난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지난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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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16년 올해의 인물을 뽑아주세요. '올해의 인물' 추천은 오는 12월 27일까지 받은 뒤 내부 논의를 거쳐 12월 31일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추천하는 인물의 이름과 간단한 사유를 적어 댓글, <오마이뉴스> 메일(edit@ohmynews.com), 공식 페이스북, 공식 트위터로 알려주세요. 또한 카카오톡에서 오마이뉴스 공식 옐로아이디를 검색해, 의견을 보내주세요.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지난해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나선 중·고등학생들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습니다. 2000년 <오마이뉴스> 창간 이후 '올해의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문정현 신부(매향리 공대위 활동)
2001년 화덕헌(이문열 도서 반환운동)·박경석(장애인이동권연대 상임공동대표)·덕성여대 총학생회 및 교수협의회
2002년 행동하는 누리꾼
2003년 문규현 신부(새만금 및 부안핵폐기장 투쟁)
2004년 국보법 폐지 여의도 천막농성단 1000명
2005년 노충국 부자
2006년 평택 대추리 사람들
2007년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전 <시사저널> 기자들)
2008년 촛불소녀
2009년 용산참사 유가족
2010년 천안함 북풍 이겨낸 6·2 지방선거 유권자들
2011년 송경동 시인
2012년 김효원(왕복 40시간 버스 타고 투표 참여)
2013년 권은희
2014년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부모들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나선 중·고등학생


태그:#올해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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